야권 ‘박연차 게이트’ 재점화…지뢰 터지나

8·8 개각의 핵심은 정운찬 국무총리의 후임을 맡게 될 차기 총리직이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후임으로 내정됐다. ‘40대 젊은 총리’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오는 8월 24일과 25일 이틀간 열리는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도 청문회에서 추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정치권에서는 김 내정자의 총리 내정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내정자는 지난 1월 기자회견을 열고 돌연 6·2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권과 사전 ‘딜’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김 내정자의 총리 인사청문회를 미리 따라 가봤다.
8월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김태호 총리 내정자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김 내정자에게는 반드시 넘어야할 악재가 존재한다.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이다.
김 내정자는 2007년 4월 미국 뉴욕의 한국식당인 강서회관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수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지난해 6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소환돼 조사받았다. 김 내정자가 식당 주인 곽모 씨를 통해 박 전 회장의 돈을 받고 골프장 인허가와 관련한 편의를 봐 줬다는 혐의 때문이다.
검찰은 박 전 회장의 진술에 근거해 곽 씨를 불러 조사했다. 곽 씨가 직접 김 내정자에게 돈을 전달한 게 아니라 식당 여종업원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으로 파악하고 그 종업원의 신병 확보에 나섰다. 미국에 있는 종업원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사건이 발생한 후인 그해 6월 12일 ‘참고인 중지’ 조치를 내리고 사건 처리를 유보했다.
그 후 6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 검찰은 “충분한 조사를 했다”면서 김 내정자를 무혐의 처분하고 내사를 종결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미흡했다. 김 내정자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뉴욕 한인식당의 여종업원에 대한 수사가 부실했다. 검찰 무혐의 처분과는 별개로 청문회에서 후보자의 도덕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추궁할 것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는지 여부가 핵심이 될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김 내정자를 낙마를 시키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청문위원들은 지난해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청문회 과정에서 스폰서 의혹 등을 제기해 낙마시키며 국정의 주도권을 행사했던 ‘전과(戰果)’를 재연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여권에서도 야당이 벼르고 있어 의외의 ‘지뢰’가 터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수차례 선거와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거친 인물이라는 점에서 별 문제없이 통과될 것이라는 기대이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김 내정자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 김 내정자와 박 전 회장의 구체적인 친분관계가 거론되면서 사소한 실수라도 이슈화되면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박 전 회장이 노무현 정권과 친분이 깊은 인물이다. 이 점도 여권을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
박 전 회장은 구속 직후부터 검찰에서 “김태호 (당시) 경남지사와 몇 번 골프를 함께 쳤다”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연차 게이트’ 연루의혹은 검찰에서 무혐의를 받았지만, 김 내정자에겐 최대 약점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에 김 후보 측은 이미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야권에 ‘STX비자금’제보
김 내정자에 대한 제보가 야권에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김 내정자가 경남지사 시절 경남 창원시에 공장이 있는 STX엔진의 비자금 조성 및 사용에 관련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올 3월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위성통신단말기를 방위사업청에 납품하면서 원가정산 자료를 조작해 98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STX 회사관계자를 구속 기소했다.
민주당의 의혹 제기는 현재로선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STX 측의 관계자에 따르면 “창원 공장은 엔진 제조공장이다. 검찰에 적발된 문제의 방위산업 공장은 경기 용인시에 있다. 김 내정자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사청문특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STX와 김 내정자의 관계에 대한 제보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며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할 것임을 시사했다.
김 내정자가 호화 관용차량을 구입했다는 보도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판세에 영향을 줄 만큼 핵심 이슈는 아니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김 내정자 청와대와 빅딜설
이번 총리 인사청문회에 앞서 또 다른 관심사는 김 내정자의 내정 배경이다. 김 내정자는 지난 1월 재선 도전이 확실시 되던 분위기에서 돌연 6·2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치권에선 김 지사가 청와대로부터 장관제의를 받았다는 ‘장관제의설’, 대권 도전을 위해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하려 한다는 ‘중앙정치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또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소환조사까지 받은 뒤 무혐의 처분 된 것과 관련, 검찰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검찰과의 빅딜설’도 제기됐다.
불출마 선언 이후 최근까지 이슈거리를 만들지 않고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이다 갑자기 총리로 내정되자 의문점들이 수면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당시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궁금증에 대해 “청와대쪽과 어느 정도 말이 오갔으니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겠냐”면서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 예측했다.
‘빅딜설’ 청문회 영향은?
하지만 김 후보자의 청와대와의 ‘딜’ 설이 청문회의 인사검증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권이 김 후보의 총리 내정 배경에 대한 궁금증은 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측 한 관계자는 “청와대든 검찰이든 (딜 설의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 어렵고 내부적인 문제라 특별히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면서 야권 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 밖에도 김 후보자를 기다리는 청문회 악재는 람사르 총회와 유엔사막화방지총회 등 큰 행사 유치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였다는 ‘이벤트성 도정’, 2006년 관내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실 폐쇄를 감행해 불거진 노조 ‘강경 대응’ 논란 등이 있다. 하지만 법적 테두리 내에서 지사의 권한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이 문제도 무난히 비켜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이번 총리 인사청문회 쟁점을 종합해 보면 논란은 있었지만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이슈가 대부분이다.
청문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병역과 재산 문제도 김 후보자에게는 호재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결국 이번 인사청문회의 최대 변수는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한 규명이 될 공산이 높다. 김 후보자 입장에서는 이 문제만 무난히 넘어가면 앞으로는 말 그대로 ‘탄탄대로’인 셈이다.
김 내정자는 40대의 젊은 총리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40대 기수론’ 등장
이명박 대통령도 김 내정자의 성장과정이 “내 분신 같다”면서 호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내정자가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음을 시사하고 있다.
김 내정자에게 대권의 첫 관문은 이번 총리 인사청문회다.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청문회에서 말끔히 해소시켜야 뒷말이 없다. 정운찬 총리도 청문회에서 병역 문제와 서울대 교수 시절 겸직 의혹을 해소하지 못해 상처를 떠안고 총리직을 수행했다.
일단 김 내정자의 경우 군수와 도지사 직을 수행한 지역 행정가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치인 출신인 여타 후보들 보다 검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또한 신고한 재산 목록이 4억 원 미만이라 친 서민 이미지로 다가설 수 있다는 점도 인사 검증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010년 4월 2일자 관보에 게재된 김 내정자의 재산총액은 모두 3억 938만 5000원. 세부 제산 내역을 보면 경남 창원시 용호동에 본인 명의의 4억 2700만 원 상당의 아파트와 거창군 거창읍에 배우자 명의로 가액이 6480만 원인 복합 건물이 있다. 예금은 본인과 배우자, 두 자녀를 합쳐 1억 4314만 원을 신고했다. 채무는 모두 3억 3643만 5000원으로, 2006년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 때 신고한 재산 2억 8991만 4000원보다 1947만 1000원 증가했다.
따라서 김 내정자의 재산은 이번 청문회에서 야권의 추궁을 피해갈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의 단골 메뉴인 병역 문제도 김 내정자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 내정자는 육군 병장 만기 제대로 병역을 마쳤다. 육군 53사단에서 신병훈련을 받은 뒤 천안 203 특공대를 거쳐 광주 상무대에서 전역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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