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김태호 대항마 부상… 9룡 다자 구도 형성

친박 진영이 안팎으로 무기력증에 빠졌다. 내부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이라는 인사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곁을 떠나면서 분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친이 진영은 박근혜 대항마를 만들면서 결속력을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반박 진영에선 박 전 대표의 주된 지지층인 전통적인 보수 세력과 갈등 관계를 형성시키며 영남 후보로 고립화시키려는 의도마저 내비치고 있다. 특히 친이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차기 대권의 후계자로 보지 않는다’는 소문을 내면서 두 인사의 틈을 벌리기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나라당에서는 박 전 대표가 “김영삼 정권의 ‘제2의 이회창’이 될 수 있다”, “DJ 정권에서 ‘제 2의 이인제’처럼 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호, YS와 이인제 관계가 새삼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대통령이 8·8 개각을 통해 40대 김태호 총리 내정자를 발탁하면서 YS 정권 당시 ‘깜짝 놀랄 후보’로 이인제 지사를 지목한 것과 정치적 상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YS는 당내 유력한 차기대권 후보였던 이회창 총재에 맞서 40대 젊은 경기도지사를 낙점한 바 있다. 때문에 48세의 김 내정자가 총리로 낙점되면서 한나라당 차기 대권 구도는 YS때처럼 9룡의 잠룡들이 다자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MB가 ‘박근혜 대항마’로 낙점한 김 내정자를 비롯해 정몽준, 정운찬, 이재오, 오세훈, 김문수, 임태희, 원희룡, 나경원 등이 자천타천으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였던 이 의원이 특임장관으로 내정되면서 직접 ‘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여기에 이상득 의원이 지지하고 있는 50대 임태희 대통령 실장의 경우 MB 정권 후반기 ‘총리 내정설’이 퍼지면서 ‘임태희 대망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40~50대 인물군이 부상하면서 원희룡 사무총장과 나경원 최고위원 역시 차기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MB가 낙점한 김태호, SD의 ‘황태자’ 임태희 각축
상황이 이렇다보니 2012년에 60대인 박근혜(58) 전 대표를 비롯해 김문수 경기지사(59), 정몽준 전 대표(59), 정운찬 전 총리(64) 등은 ‘세대교체 바람’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특히 박 전 대표를 제외한 여타 후보가 친이 후보라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외로운 싸움’이 예상될 수밖에 없다. 친박 인사들이 이번 8·8개각을 ‘박근혜 죽이기’로 보는 배경이다.
박 전 대표의 차기 대권 행보에 있어 가시밭길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언론에 터진 ‘박근혜-동교동계’ 물밑접촉설이나 박근혜-김정일 회담을 담은 방북 동영상 역시 친박 진영에서는 ‘박근혜 흠집내기’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친박 진영에선 두 사건 모두 ‘누군가 조직적으로 박근혜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친박 진영의 한 인사는 “박 대표의 주된 지지층이 보수진영인데 이 보수층은 DJ와 손을 잡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며 “영호남 화합이라는 명분은 좋지만 실리가 없는 게임”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영남이나 호남에서 영호남 통합을 위한 행사를 몇 번 해봤지만 왔던 손님들이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다 나간다”며 “허울 좋은 명분일 뿐 유권자의 표를 움직이지는 못한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그는 “비호남권 비영남권 지역에선 관심을 보일 수 있지만 정작 영호남에선 사람이 모이질 않는다”며 “정치인들끼리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는 것으로 박 전 대표에게는 자충수”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그는 “호남 사람들이나 호남 성향의 유권자들은 기본적으로 5·18 사건으로 인해 ‘전두환, TK 세력’이 용서가 안된다”며 “개인적으로 박정희, 박근혜를 좋아할 수 있지만 정당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권노갑, 한화갑 등 인사가 아닌 호남 신진 정치세력이 손을 내민다면 모르지만 동교동계는 아니다”며 “박 대표 역시 잘 알고 있어 동교동계와 손을 잡을 일이 없다”고 단언했다. 결론인 즉 이를 잘 아는 반박 세력들이 ‘박근혜 흠집내기’위한 모종의 언론플레이가 아니냐고 내다봤다.
‘박근혜 흠집내기’ 의도적으로 진행중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최근 갑작스럽게 인터넷에 유포된 ‘박근혜-김정일 회담’을 담은 동영상 역시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는 “보수진영이 또 싫어하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박 전 대표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다”며 “이미 2002년도에 있었던 일이고 2008년에 인터넷 올라와 많은 사람이 봤다”며 “왜 최근에 재차 같은 동영상이 올라왔는 지 모르겠지만 특정세력이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 마디로 박 전 대표에 대한 보수 세력의 거부감을 확산시켜 차기 대권에 악영향을 주기위한 작업이라는 해석이다.
한편 박 전 대표 대리인으로 동교동계와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된 이정현 의원은 ‘소설같은 얘기’라며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교동계 역시 ‘박근혜-동교동계 물밑접촉’을 보도한 해당 언론사에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박 전 대표의 측근들이 하나둘씩 전향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박 전 대표를 비롯해 친박 진영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친박 좌장역할을 했던 김무성 원내대표가 최근 박 전 대표 리더십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결별선언을 했다. 또한 이번 8·8내각에서도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했던 유정복 의원이 농림수산부장관으로 내정된 것과 관련해 친박 진영에선 ‘아쉽다’는 모습이다. 친박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유 의원에게 장관 제의를 했을 때 과감하게 거절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박 전 대표가 장관행에 동의를 했다고 할 지라도 ‘박 전 대표는 가라고 했지만 MB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아 안가겠다’고 고사했다면 친박 내에서 유 의원의 위상은 상당히 높아졌을 것”이라고 입맛을 다셨다.
무엇보다 친박 내에서 우려하는 것은 MB를 대변할 친이 인사들은 많아지고 있는 반면 박 전 대표를 대신할 인물군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에 입성한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나 안상수 당 대표, 나경원 최고 위원 등 즐비하지만 친박 진영은 그에 대항해 ‘맞짱’을 뜰 중량감 있는 인사가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박 전 대표의 ‘입’ 역할을 하는 이정현 의원이나 한선교 의원은 약하다는 평이고 6선의 홍사덕 의원은 최근 박 전 대표와 틈이 벌어져 조용하게 지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가까스로 지도부에 입성한 친박 서병수 최고위원의 경우 ‘저격수’나 ‘싸움꾼’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무기력증 빠진 친박’ 박근혜 대세론 ‘흔들’
이렇듯 친박 진영이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친박 진영에서조차 ‘차기 대권구도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냐’는 불안한 시각을 표출하고 있다. 친이 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YS 정권의 이회창 후보나 DJ 정권의 이인제 후보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마저 내놓고 있다.
YS와 갈등관계에 있었던 이회창 후보의 경우 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됐지만 야권의 DJP 연대에다 당내 경쟁자였던 이인제 후보가 경선불복 후 탈당해 대선에 출마함으로써 40만표차이로 아깝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또한 DJ 정권하에서 이인제 후보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대세론’을 앞세워 민주당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예견됐지만 DJ가 지지한 ‘깜짝 인사’인 노무현 후보가 국민경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중도탈락해야 했다. 이래저래 두 인사 모두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됐지만 대권을 거머쥐는 데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 전 대표가 두 인사의 정치행보를 따를지 아니면 고난의 길을 헤치고 청와대행 티켓을 손에 넣을지 정치권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pot.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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