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家 ‘창업 정신’의 승계 향방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생전에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견인하면서 신화적인 ‘창업 신화’를 일궜다. 이러한 선대의 업적을 아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승계할지 여부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99년 현대그룹이 내분을 겪으면서 소그룹으로 분할되자, 당시 재계에서는 “이제 현대그룹의 성장신화는 끝났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2000년 현대차그룹을 상속받은 범 현대家의 장남은 11년 만에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따라서 일각에선 창업 1세대인 정 명예회장과 故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듯이 최근에는 정 회장이 ‘정몽구 vs 이건희’라는 신 라이벌 체제를 부활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에 [일요서울]이 뚝심의 승부사인 정 회장이 정 명예회장의 ‘창업 정신’을 계승해 새로운 성장신화를 써 나갈지에 대해 집중 조명해본다.
현대家의 ‘창업 정신’은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이다. 정 명예회장이 남긴 불굴의 ‘뚝심 경영’의 실체이기도 하다. “해봤어? 해봐” 이는 정 명예회장이 한국 기업사에 남긴 유명한 어록이다.
정 회장은 고교 시절 럭비선수를 한 바 있다. 빠르고 힘이 장사였다고 알려진다. 또한 정 회장의 별명은 스크램을 짜고 밀어붙이는 럭비선수에 비유해 일명 ‘불도저 총수’라고 부른다.
정 명예회장을 그대로 닮은 듯 강한 추진력으로 사업을 밀어붙이는 정 회장 역시 임직원들에게 “해봤어? 해봐"라는 말을 자주하곤 했다.
현대차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임원들이 경영환경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한 자릿수 성장률의 매출목표라도 보고하면, 오히려 이의 2~3배 달성을 지시하며 독려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정 회장이 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에게 배운 ‘뚝심 경영’을 일선에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지난 10년간 국내 산업은 IT혁명을 토대로 반도체 분야와 LCD 및 휴대폰 등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들의 성장세에 가려졌지만 이들 못지않게 가장 빠르고 역동적으로 성장해온 산업 분야가 자동차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중심에는 현대차가 있었다.
정 회장은 2000년 현대차그룹 출범 당시에 현대차를 글로벌 톱5에 등극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10년 뒤에 약속을 지켰다. 정 회장의 ‘뚝심 리더십’과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과거에는 ‘덤핑 브랜드’ 또는 ‘싸구려 자동차’라는 오명에 시달리던 현대차를 품질경영·현장경영을 통해 ‘글로벌 톱5’ 위치에 올려놨다.
지난 2008년 불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도 현대차의 성장을 막지는 못했다. 또한 올해 8월초부터 다시 불거지고 있는 경제침체 위기 우려 속에서도 현대차의 성장세는 꺽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편, 정 회장은 지난해 4월 8일 정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일관제철소의 꿈을 이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충남 당진 일관제철소 준공식에 참석해 “지금 대한민국은 철강산업의 제2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남들이 멈칫할 때도 미래를 내다보며 과감한 투자를 통해 오늘을 만들어 낸 정 회장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1995년 말 현대차그룹 회장 취임 후 미래 신수종사업으로 철강을 선택했다. 2000년 강원산업과 삼미특수강을 잇달아 인수했고 2004년에는 한보철강까지 흡수했다. 2년 후인 2006년에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그해 10월 공사에 들어갔다. 정 명예회장이 1978년 인천제철을 인수했을 당시와 같이 시장에선 공급과잉과 과당경쟁 논란이 있었으나 보란 듯이 시장의 예상을 뒤엎은 것이었다.
수시로 CEO 교체해 ‘럭비공 인사’ 비판도
한편, 정 회장은 때를 가리지 않고 ‘수시 인사’를 하는 동시에 이미 퇴임시켰던 인사를 다시 요직에 중용하기도 하는 일명 ‘패자부활 인사’로도 유명하다.
이로 인해 ‘공포정치’, ‘인사전횡’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인사 성향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활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정 회장 특유의 용병술이라는 긍정적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정 회장은 ‘2인자’로 평가받는 CEO를 곁에 오래 두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현대차그룹에는 장수하는 2인자가 없다. 박정인, 김동진 부회장 등 한때 현대차그룹의 2인자로 평가받던 CEO들이 예상보다 일찍 회사를 떠났다.
현대차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 당시 ‘가신’으로 불리던 측근들이 저지른 폐해를 몸소 겪었기 때문에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측근으로 평가받던 임원이 갑자기 퇴진하게 되면 ‘저런 사람도 집에 가는데’ 하는 생각에 더 긴장하게 된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의 ‘럭비공 인사’의 핵심이 임원들의 강력한 충성도를 확보하는 카리스마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성장세를 지켜보면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정 회장의 ‘뚝심 리더십’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진우 기자> voreolee@ilyoseoul.co.kr
이진우 기자 voreole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