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제일은행(은행장 리차드 힐)의 내분이 계속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최근 사측과 노조 측의 대립으로 인한 은행권 최장기 파업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이에 사측은 ‘스탠다드차타드’로의 행명 변경 등 대외적인 이미지 개선에 힘쓰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새다. 행명 변경이 단순히 ‘제일’이라는 글자 지우기가 아닌 ‘제일맨’ 명예퇴직과 연결됐다는 은행권의 눈초리 때문이다. 아직 사측과 노조 측의 협상이 결렬돼 있는 상태에서 희망퇴직은 다소 강압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지만 사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그 현황을 알아본다.
SC제일은행은 지난달 28일 리차드 힐 행장과 김재율 노조위원장이 만나 노사 대표자 면담을 가졌으며 면담의 주요 내용을 임직원들에게 알렸다고 같은 달 31일 밝혔다.
SC제일은행에 따르면 사측은 연내 실시할 은행의 명칭 변경과 관련, “새로운 행명과 함께 한국 시장에서 리더가 되고자 하는 당행의 강력하고 긍정적인 의지”라고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스탠다드차타드’로의 행명 변경은 SC제일은행이 금융권의 도마 위에 오르게 만들었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SC제일은행이 굳이 이 시기에 행명을 변경한다는 것은 장기 파업으로 인한 대외 이미지 하락을 수습하려는 요행”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SC제일은행은 사측과 노조 측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지난 6월 27일부터 두 달 간에 이르는 파업으로 국내 은행권 최장기 파업 기록을 세웠다.
당시 SC제일은행은 파업 기간 동안 인력 부족으로 전국 394개 지점 중 43개 지점을 폐쇄했다. 이로 인해 해당 지점 고객들의 불평은 끊이질 않았고 일부 이용자들이 예금 전액을 인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금융권에서는 “SC제일은행의 행명 변경은 그동안 SC제일은행이 주장해 온 ‘한국 현지 토착화’에 실패했다는 것의 반증”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상 지난 2005년 제일은행 인수 시부터 지금까지 내걸어 온 ‘SC제일은행’이라는 명칭은 전 세계적으로 통일한 ‘스탠다드차타드’ 행명에 어긋나는 사례다.
SC제일은행은 ‘한국 현지 토착화’를 천명하며 ‘스탠다드차타드’의 약자인 ‘SC’와 ‘제일은행’을 함께 행명에 반영해 한국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만약 초기 입장을 뒤엎고 행명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변경한다면 제일은행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제일은행은 조흥·상업·한일·서울은행 등과 5대 은행으로 불리며 국내 경제발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면서 “이제는 외국계로 넘어갔을 뿐더러 이름에서조차 국내 은행의 자취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평했다.
또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사실 SC제일은행이 한국 현지 토착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불발로 끝났고 이로 인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면서 “행명 변경은 한국 현지 토착화 실패를 인정하고 늦었지만 본래 외국계 은행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분석했다.

명칭 변경해도 ‘문제은행’오명 계속되나
하지만 행명 변경으로 SC제일은행의 문제를 모두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지 [일요서울 제904호 - 출구 없는 SC제일은행 노사협상]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지난 SC제일은행 파업의 원인은 사측이 개별차등 성과급제 시행, 상설명예퇴직제도 및 특별퇴직금 폐지, 후선발령제도 확대 등을 제시했고 노조 측에서는 이를 강력히 반대하며 양측이 팽팽하게 맞섰던 것이다.
현재까지도 SC제일은행은 사측과 노조 측의 의견 차로 인해 2010년 임금단체협상(임단협)을 결의하지 못한 상태다.
또한 SC제일은행은 최근 대규모로 실시하는 임직원 명예퇴직과 관련해 금융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SC제일은행의 90명의 임원 중 20명이 명예퇴직을 신청했고 12명은 지난달에 퇴직 절차를 밟았으며 나머지 8명 역시 연내에 퇴직한다. 특히 부행장 15명 중 제일은행 출신은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일반 직원들 역시 앞으로 있을 대규모 명예퇴직에 대해 불안한 눈초리다. 한 SC제일은행원은 “말로는 (이번 명예퇴직이) 희망에 따라 진행된다지만 행원들 사이에서는 분명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할 것이라며 눈치를 보고 있다”면서 “아무리 (명예퇴직의) 조건이 좋더라도 당장 직장을 잃는 것은 솔직히 두렵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SC제일은행은 “SC제일은행의 ‘제일 지우기’는 행명 뿐만이 아니라 임직원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냐”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한편 SC제일은행은 ‘24시간 영업’에 대한 리차드 힐 행장의 발언과 관련해서도 구설수에 올랐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 김문호, 이하 금융노조)에 따르면 리차드 힐 행장은 지난 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SC제일은행의) 24시간 근무체제를 만들고 주말에도 문을 여는 거점 점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금융노조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24시간 및 주말 근무는)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가능한 부분이며 당연히 사전 노사합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이를 두고 ‘한국은 노사관계 부문에서 국제적 기준과 많이 다르다’며 불평한 리차드 힐 행장이야말로 ‘진출국의 상응 사용자가 준수하는 기준보다 불리하게 근로조건 등을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는 노사관계의 국제적 기준을 모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SC제일은행 관계자는 “24시간 근무 도입은 방향성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이지 적극적으로 검토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결과적으로 오래 있던 제일은행 출신 임원들이 대거 희망퇴직한 상황이 됐지만 자발적이었으며 강압은 없었다. 직원 퇴직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