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자진신고감면제’라고 불리는 리니언시(leniency)제도는 기업이 담합 또는 카르텔을 자진신고 했을 때 과징금을 완전 면제하거나 경감시켜주는 제도이다.
1997년 도입돼 2005년과 2007년 개정된 리니언시제도는 내부고발자 없이는 파악하기 어려운 기업 간 담합 또는 카르텔을 막기 위한 것으로 1순위 신고자는 과징금 100% 면제, 2순위 신고자는 50%를 감면시켜주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담합을 주도한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얻은 후 자진신고를 통해 과징금마저 안 내거나 적게 내게 돼 이중의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정부당국도 늦장조사로 인해 대기업 봐주기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어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법률 개정의 요구가 높아져 가고 있다.
리니언시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시장 선도기업들이 오히려 제도 악용
피해 입은 소비자들 집단소송 통해 권리 행사
공정위는 지난달 14일 삼성·교보·대한생명을 비롯한 16개 보험사에 예정이율과 공시이율 담합행위를 적발해 시정명령과 함께 365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다.
삼성생명은 가장 많은 금액인 1578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으며, 교보생명 1342억 원, 대한생명 486억 원 등 빅3에 부과된 과징금이 전체 규모의 93%나 됐다.
하지만 이들 빅3는 리니언시를 통해 100%에서 30%까지 과징금을 적게 내도 된다.
수천 억 원대의 과징금이 부과된 지 열흘 정도 지난 25일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 등 3개 생명보험사가 변액보험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리니언시를 신청했다. 삼성생명이 가장 먼저 신청했고, 뒤를 이어 대한생명, 교보생명이 리니언시 신청을 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과징금을 부과 받지 않게 되고, 대한생명은 부과될 과징금의 50%만 내면 된다.
문제는 삼성·교보·대한생명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이 50% 넘는 상황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회사가 오히려 과징금 감면 혜택은 가장 많이 받게 돼 중소 생보사들의 불만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TFT-LCD 시장도 담합
담합은 국내 생보사들 간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공조 속에서도 일어났다.
지난달 30일 공정위는 국내의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를 비롯 일본, 대만의 LCD 제조업체들에 대해 담합을 통해 공급량과 가격을 조절한 것을 적발해 20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2001년부터 진행돼 온 LCD업체들 간의 담합은 치열한 경쟁으로 매월 매출액과 공급량에서 업체별로 들쑥날쑥이었다. 하지만 2001년 9월부터는 모든 업체가 담합을 통해 가격을 올렸다.
공정위는 2006년이 돼서야 유럽연합(EU)의 공정거래당국과 담합여부에 대한 공동조사에 착수 해 담합행위 적발을 눈 앞에 뒀다.
이를 눈치 챈 삼성전자는 곧바로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하며 과징금을 피했다.
LCD패널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던 삼성전자는 리니언시제도를 통해 961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게 됐다.
결국 삼성전자는 전 세계를 상대로 LCD패널을 판매해 이익을 취함과 동시에 과징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이중혜택을 고스란히 누렸다.
현행 리니언시제도가 가지고 있는 악점을 파고든 대기업의 뻔뻔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업의 뻔뻔함에
소비자들 ‘뿔났다’
리니언시제도로 기업이 이중혜택을 입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에 대해 공정위가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개인들은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개인이 거대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많은 불리함을 안고 있어 결국 개인 하나 하나가 소송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집단소송으로 이어질 가망성이 높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오욱환, 이하 서울변회)는 개인보험 예정이율과 공시이율 담합행위를 한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공익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변회는 “생명보험사의 담합행위는 국민의 생명 및 삶과 관련된 분야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면서, 오히려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로써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행위”라며 “이에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들의 담합행위로부터 피해를 본 국민들을 위해 공익소송을 수행하기로 했다”고 밝히고는 지난달 30일까지 담합행위로 피해를 본 국민들을 상대로 원고를 모집했다.
서울변회 이외에도 보험소비자연맹 홈페이지에서는 (가칭)생보사이율담합피해자공동대책위원회가 생보사 이율담합으로 발생한 17조 원의 부당이익 반환에 대한 공동소송을 진행하면서 올해 말까지 피해자들을 모집하고 있으며 11월 2일 현재까지 170여 명이 이에 참가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리니언시제도 개정
필요 요구 잇달아
현재 리니언시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전 세계적으로 40여 개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1순위로 자진신고를 하더라도 과징금을 면제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1순위로 신고한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과징금 액수를 조절하고 있다.
이렇게 했을 때만이 리니언시제도를 두고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이 이중혜택을 받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도를 악용하기 위한 기업들의 또 다른 담합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생보사 빅3를 두고 순위를 정해 자진신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정위도 리니언시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한 듯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성실하게 협조하지 않거나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 담합행위를 자진신고 하더라도 과징금 감면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또한 ‘부당한 공동행위 자진신고자 등에 대한 시정조치 등 감면제도 운영고시’를 개정해 자진신고 감면 대상자 지위를 취소할 수 있는 사유를 구체화해 자진신고 기업에 대한 잣대를 강화할 예정이다.
다만, 공정위는 리니언시제도를 도입한 이유가 담합행위를 자진신고 해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므로 1순위 자진신고기업에게 100%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업 간 담합행위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아야 할 상황에서 리니언시제도의 개선을 통해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함과 동시에 기업의 이중특혜라는 문제점을 제대로 풀어나가야만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jun6182@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