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상급자나 상급부대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
기 교수 “조직 생리상 독자적 판단으로 해킹 저지른 것 납득 안돼”
‘민간인 사찰’ 논란은 지난 9월 기광서 조선대 교수가 “누군가 이메일 ID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학교 포털사이트 이메일에 접속한 뒤 자료를 가져가고 이메일을 훔쳐봤다”며 광주 동부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면서 불거졌다. 경찰과 헌병대가 합동 수사하던 이 사건에 조직적 사찰 정황이 포착되면서 국방부 조사본부가 수사에 나섰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기 교수 이메일을 해킹한 하위직 기무사 요원 4명을 구속하고 ‘윗선 개입은 없었다’며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 이 같은 국방부 조사본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전력자 조직적 사찰 가능성’ ‘꼬리 자르기’ ‘수사 축소’ 등의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미 2차례나 민간인을 불법 감시하다 들킨 기무사가 기 교수 해킹 사건에도 연루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논란’이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기 교수도 “기무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기 교수의 개인자료를 해킹한 혐의(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으로 광주지역 기무부대 한모(47) 원사와 김모(37) 군무원, 장모(35) 중사, 서울 송파지역 기무부대 한모(35) 군무원을 구속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달 31일 “군무원 개인이 기초자료 수집을 위해 동료에게 부탁한 것이 인접 동료와 연계되면서 범법 행위로 과도한 수집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며 “(사찰을 지시했을 만한)상급자나 상급부대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히려 기무사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에 의혹은 일파만파 더 번지고 있다. 구속된 기무사 요원 모두 증거인멸 등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나 기무사는 부실 수사 의혹과 함께 하급직 4명을 구속하는 선에서 꼬리 자르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기 교수 해킹 전모
기 교수 사찰과 해킹의혹은 공군대학 전임교수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보도되면서 시작됐다. 한 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을 가진 기 교수가 군 부대기에서 강의하는 것과 관련해 2009년 경찰청 신원조회를 통해 신원조회를 했다. 또 같은 부대의 김 군무원에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넘기며 기 교수와 관련한 자료 수집을 부탁했다.
김 군무원은 통신·감청 전문인 한 군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한 군무원은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기 교수가 가입한 포털 사이트에 수차례 접속을 시도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문자 메시지로 기 교수의 아이디와 비번을 건네받은 김 군무원은 9월 2일 장 중사와 광주 북구 PC방에서 고정 IP로 기 교수 이메일과 웹하드를 해킹해 개인정보 689건을 빼냈다. 이 같은 기무사 해킹사실은 기 교수가 지난 9월 초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계속되는 의혹들
국방부는 이번 사건에 윗선 개입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국방부는 “김 군무원이 이메일 계정을 삭제해 자료가 없어졌으며, 상부보고 자료 및 결재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구속된 기무사 요원 4명 외의 관련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 군무원과 장 중사는 구속 전 이메일 계정을 삭제하고 휴대전화 기록을 지웠으며, 한 군무원은 자수 직전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노트북 사용 기록을 삭제한 것으로 국방부 조사결과 드러났다. 노트북에 사용기록을 자동 삭제하는 프로그램인 BC와이프를 설치해 놓아 기록 복구가 어렵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또 “문서상 지시·보고 증거는 없지만 구두상 지시·보고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해킹과 관련된 해당 부대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지휘계통 관련자 조사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수사축소’ ‘부실 수사’ 의혹이 일고 있다. 위계질서가 강한 기무사에서 윗선의 지시나 개입 없이 하위직 기무요원이 모의해 해킹했다는 국방부의 발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또 군 안팎에서도 조사본부의 늦장구속을 두고 헌병 수사관들이 기무사를 수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끝까지 파헤쳐야”
이번 국방부의 기무사 해킹·사찰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기 교수는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기 교수는 “개인 메일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메일들이 재차 수신돼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정보 전산원에 문의해 해킹이 됐다는 답변을 받고 신고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 교수는 이번 수사결과를 두고 “국방부 조사본부의 수사가 축소된 느낌이 있다”며 “철저히 위계에 따르는 기무사라는 조직의 생리상 하위직 기무요원 공명심 때문에 독자적 판단으로 해킹을 저질렀다는 것은 납득가지 않는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기 교수는 또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과 군 교육기관이 있는 전남 상무대를 출입하고 있어 해킹을 벌였다는 것인데 이는 견강부회로 말을 갖다 붙이는 식이다”라며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은 굉장히 오래된 일로, 이제 와서 급박하게 진행 된 것은 무슨 동기가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과 러시아 전문가인 기 교수는 25년 전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다.
그는 “전화기록이나 노트북 기록 등이 삭제되는 등 수사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며 “수사를 철저하게 해서 권력기관의 불법 사찰이 근절되어야 한다.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기 교수는 “법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며 “여러 대응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현재 결정 된 바는 없으나 상황을 봐가면서 대응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최은서 choie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