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로 ‘의료주권’ 빼앗길 판
한미 FTA로 ‘의료주권’ 빼앗길 판
  • 전수영 기자
  • 입력 2011-11-08 14:37
  • 승인 2011.11.08 14:37
  • 호수 914
  • 4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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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약산업 붕괴 후 동남아처럼 된다

정부가 한미 FTA의 효용성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산업이 붕괴돼 결국 동남아처럼 자국 제약사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내년부터 시행되는 약가인하로 인해 제약사들은 1조7000억 원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이는 제약사들이 현재의 제품생산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약한 약품을 생산 중단할 경우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장의 매출 감소가 문제가 아닌 주가 하락으로 인해 기업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글로벌제약사의 적대적 M&A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단순히 일부 제약사들의 폐업이 문제가 아닌 제약산업 전체의 존립 바탕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약가인하 대상 품목 7500개를 발표했다. 인하율은 17%에서 14%로 줄어들었다. 예상했던 품목수와 인하율보다는 적지만 이는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은 아니고 잠깐의 숨 돌릴 여유라고 제약업계 전체는 얘기하고 있다.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약업계의 의견을 반영하고 제약산업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인하 대상 품목을 줄였다”고 밝혔다.

정부의 발표처럼 피해액은 당초 2조1000억 원에서 1조 7000억 원으로 400억 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조7000억 원도 실제로는 엄청난 금액으로 GDP의 1.5%에 그치는 제약산업에서는 큰 수치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제네릭(복제약)을 통해 매출을 일으키고 있는 중소제약업체의 경우 ‘동일 성분 동일 가격’으로 약이 판매될 경우 오리지널 의약품 판매가 늘어나 그 피해는 결국 존폐 위기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제약업계는 정부의 이번 약가인하 발표 이후 추가적인 약가인하는 단계별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차피 한시법으로 지정된 기등재목록정비로 인한 약가인하는 2014년까지 유지하고 그 후에 시간을 두고 점진적 약가인하를 진행해야만 제약업계 전체가 이에 대한 대응방안과 함께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제약사도 적대적 M&A 대상

시장경쟁 논리로 보면 경쟁력이 낮은 기업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쟁력이 높은 기업들로만 시장이 재편돼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체적인 시장규모와 경쟁력을 비교했을 때 대형 글로벌제약사와 매출과 R&D 투자규모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국내제약사의 경우 시간이 문제일 뿐 위기에 맞닥트릴 것은 뻔하다는 것이 제약업계의 분석이다.

물론 의약품 가격인하가 국내제약사들에게만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제약사들도 가격이 인하되면서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피해가 국내제약사보다는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국내 상위제약사들도 당장 내년에 매출이 줄어들게 될 것으로 예상돼 주가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국내제약사에 지속적으로 자금을 댈 주주는 없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미 FTA로 제네릭 생산도 어려워질 것

결국 주가는 계속해서 하락하게 되고 기업가치가 낮아지면서 국내제약사들은 글로벌제약사에 의한 적대적 M&A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글로벌제약사들은 많은 돈을 들여 국내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M&A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국내제약사들의 몸부림이 이어지겠지만 획기적인 신약개발 없이는 기업을 유지하기가 쉽지만은 않게 된다.

국내제약사들이 한미 FTA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다.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는 의약품 특허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특허기간 동안 제네릭의 시판을 금지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를 따르면 특허 기간 도중 제네릭 시판 허가를 신청한 기업은 그 신원을 특허권자에게 통보해야 하고, 특허권자는 이에 대해 제네릭의 생산·판매를 허용할지 결정하게 된다. 만약 특허권자가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게 되면 제네릭 생산자는 그 순간부터 생산과 판매를 중단해야만 한다.

특허권자의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특허권자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권한이 돌아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생산·판매되고 있는 의약품에 많은 특허권을 가진 글로벌제약사의 경우 지금보다 더 큰 힘을 가지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 말은 곧 국내제약사들에게는 커다란 족쇄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

현재 제약업계에서는 약가인하와 함께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로 인해 8만 명 정도가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수치는 직접고용에서 8만 명이 감축되는 것으로 원료와 기타 부자재를 납품하는 간접인원까지 합치면 4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문제 남 얘기 아냐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 제약사가 없다. 이들은 흔한 감기약마저도 비싼 돈을 들여서 사먹고 있다.

우리나라도 당장은 아니겠지만 국내제약사들이 제네릭 생산을 포기하게 되면 머지않은 장래에 의료주권을 글로벌제약사에 넘겨줘야 할 판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보재정안정화는 불가능해 진다. 또한 국민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의 조헌제 실장은 “정부가 약가인하 추진을 통해 건보재정의 건정성을 확보하고자 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가기 어렵다”며 “당장 몇 년간은 의약품에 대한 수가가 낮아져 효과가 있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글로벌제약사들의 의약품 가격 인상으로 건보재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글로벌제약사들의 입김이 커지게 되면 결국에 가서는 인도네시아처럼 의료주권을 넘겨줘야 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며 정부의 약가인하에 반대했다.


국민들에게 어떻게 알릴 것인가 중요

사실 정부가 약가인하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을 때 제약업계는 당장 정부와 대척점에 서며 날선 공방을 이어갔다. 국회 차원에서도 논의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이렇게 약가인하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못한 것은 우선 국민들이 약가인하로 인해 자신에게 혜택이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짐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리베이트로 인한 제약사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의약품 가격이 인하되면 예전에 비해 주머니가 가벼워진 중산층 이하 국민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거기에 제네릭보다는 효과가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오리지널 의약품을 같은 가격에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제약업계는 초반에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당장 약가인하를 하게 되면 자신들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며 산업에 큰 피해를 주게 될 것이라는 그들의 호소는 국민들이 봤을 때 밥그릇이 줄어들어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으로만 비춰졌다.

실제로 의료주권이 상실하게 돼 머지않은 미래에 더 비싼 약을 사먹어야 할 것이며, 이를 국가에서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을 제대로 알리지 못해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

또한 리베이트라는 관행으로 인해 지금까지 제약사들의 이익이 막대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의혹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리베이트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약품명처방에서 성분명처방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조헌제 실장은 “현재의 약품명처방을 성분명처방으로 바꾸게 되면 수많은 동일성분 약 중에서 선택되기 때문에 리베이트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후의 수단 ‘생산 중단’ 결정

벼랑 끝까지 몰린 제약협회는 지난 2일 긴급 이사장단 회의를 열고 보건복지부의 약가인하에 반대하는 뜻으로 이달 중 하루 동안 의약품 생산중단을 결정했다.

215개 회원사로 구성된 제약협회는 생산중단과 아울러 복지부 고시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총궐기 대회도 마련해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할 계획이다.

제약협회가 생산중단이라는 극한 처방까지 내리게 된 것을 보면 제약업계 전체가 위기를 공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야당에서는 한미 FTA에 따른 문제를 제기하고 제약산업에 대한 폐해가 막대하다고 주장하며 이 부분에 대한 별도의 워킹그룹(working group)을 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과 정부는 공식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어 최악의 상황은 벗어날 가망성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넘어야 할 산이 크게 줄어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약업계 전체의 목소리와 함께 명확한 위기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oe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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