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승패의 예언자
투수, 승패의 예언자
  • 이창환
  • 입력 2011-11-08 14:31
  • 승인 2011.11.08 14:31
  • 호수 914
  • 4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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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가 던진 숙제, 오승환을 데려오거나...구단 전용 ‘끝판대장’을 키우거나

<뉴시스>
‘삼성 라이온즈’가 2000년대 최강팀 ‘SK 와이번스’를 꺾고 ‘2011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준우승을 설욕하고 5년 만에 꿰찬 성과다. 삼성은 철벽 마운드를 중심으로 체력이 소진된 SK를 연승으로 제압했다. 지난달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삼성은 SK와의 숨 막히는 투수전 끝에 1-0 승리를 거뒀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날 강봉규는 솔로 홈런으로 유일한 득점을 기록해 영웅이 됐다. 한국시리즈가 1점 홈런하나로 판가름 난 경우는 이번이 처음. SK 또한 갑작스런 감독교체와 에이스의 부진을 딛고 선전한 점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SK는 삼성 못지않은 막강 투수들로 타자들을 꽁꽁 묶었다. 투수 자원이 월등한 두 팀의 결승 진출로 인해 내년 야구는 투수 보강이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전통 명문 구단들은 자신의 팀을 ‘투수 천국’으로 만들 것을 예고했다.

‘투고타저’는 올해 한국시리즈를 가로지르는 키워드다. 삼성이 8-4로 승리한 4차전을 제외하면 2-0(1차전), 2-1(2차전), 1-2(3차전), 1-0(5차전)까지 투수 싸움과 ‘물방망이’ 현상이 뚜렷했다. 삼성과 SK가 수년 전부터 공들인 ‘공포의 투수진’ 만들기가 올 시즌 꽃피우게 된 것.

이 같은 특징 때문에 한국시리즈 최소 실점 기록도 경신됐다. 지금까지는 2008년 SK가 두산에게 10점을 내준 것이 최소 실점이었지만 삼성은 SK에 단 7점만 내주면서 패권을 거머쥐었다.

삼성의 자랑이자 정상에 오르게 한 원동력은 단연 ‘막강 불펜’이다. 한국시리즈 5경기 동안 삼성 투수진이 기록한 팀 평균자책점은 감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1.43이다. 삼성 투수들은 44이닝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1점대의 방어율을 유지했다.

맞수 SK 또한 4차전 실패를 제외하고는 4경기 6실점이라는 호성적을 기록했다. 불펜 전력에 의지하면서 전술을 짜낸 덕분이다.

삼성 마무리 투수 오승환은 정규 시즌 때부터 그 정점에 서 있었다.

생애 두 번째로 한국 시리즈 MVP로 뽑힌 오승환은 삼성의 우승이 코앞에 다가왔던 지난달 31일 5차전에서 8회 등장해 상대 타자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오승환은 1-0으로 앞선 8회 2사 1·2루에 구원 등판했다. 한 점차 였기 때문에 SK 타선 또한 독기를 품고 타석에 들어섰지만 오승환의 ‘돌직구’ 앞에 모두 범타 처리됐다. 

오승환은 5차전이 치러지는 동안 팀이 이긴 4경기에 모두 등판해 3세이브와 방어율 0을 기록했다. 뒷문을 완벽히 틀어막은 것.

시리즈 MVP 투표 또한 66표 중 46표를 쓸어 담는 인기로 2위 차우찬(18)을 훨씬 압도했다.

오승환은 프로에 데뷔했던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1승 1세이브를 거둬 한국시리즈의 주연이 된 적이 있다.


조연, 단역으로 밀려난 타자들

몇몇 구단으로부터 괴물 투수들이 배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프로야구는 ‘타고투저’ 현상이 앞서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에 비해 경기가 투수전으로 흘러가는 양상이 적었던 것. 상위 팀들은 국가대표 급 에이스를 보유하긴 했지만 대부분 투수들은 타자들의 꾸준한 분석과 정교한 타격에 난타를 허용할 때가 많았다.

당시 전문가들은 “투수의 경우 새로운 구위를 장착하고 ‘마구’를 개발해 사용하려면 몇 년까지도 걸린다”면서 투수의 불리함을 이야기했다. 반면 타자들은 정밀 데이터 기록과 비디오 분석 등으로 단 시간 만에 투수의 공을 적응해 나갔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수준이 한 차원 더 높아지면서 알고도 못 치는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늘어났다. 이는 각 구단들로 하여금 투수 싸움이 곧 우승을 위한 고지 선점, 순위다툼의 절대조건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계속 점수 안 나도 흥행되려나

포스트 시즌 결승에서 맞붙은 삼성과 SK가 좋은 본보기다. 류중일 현 감독 뒤에는 선동렬 ‘KIA 타이거즈’ 감독이, 이만수 감독 뒤에는 김성근 전 감독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10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 선 감독은 삼성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매김한 지키는 야구의 창시자였다. 선 감독은 “방망이는 믿을 게 못 된다”며 막강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한 수비 야구를 지향했다.

선 감독의 지도 아래 삼성은 8개 구단 중 최고의 투수진을 보유한 팀이 됐고 차우찬, 장원삼, 윤성환 등 스타 투수들을 발굴했다. 이러한 추세는 선 감독이 부임한 2005년부터 지속됐다. 삼성은 배영수, 윤성환, 장원삼, 오승환, 권혁, 권오준 등을 활용한 ‘자물쇠’ 전술로 프로 야구를 호령했다.

SK 역시 준 플레이오프 때부터 ‘야신’ 김 전 감독의 아우라가 보였다. 시즌 3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을 당시 SK는 상대팀 KIA보다 객관적인 전력평가에서 뒤지고 있었다. 플레이오프에서 혈전을 펼쳤던 ‘롯데 자이언츠’와의 전력 평가 때도 마찬가지. 시즌 중반까지 1위를 달리다가 연패를 거듭해 포스트 시즌 진출마저 불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성적 난조에 대한 책임으로 김 전 감독까지 경질되자 SK는 이대로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김 전 감독의 ‘이기는 야구’는 위기 속에서 되살아 났다. 그리고 기어코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2000년대 프로야구는 SK(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가 주름 잡았음을 각인시켰다.

SK는 박희수, 정우람, 정대현의 필승 불펜으로 삼성을 줄곧 불안하게 만들었다. 점수차를 벌려 마운드의 안정을 꾀하려는 시도가 SK 투수진들의 활약 때문에 번번히 무산됐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의 ‘불펜 야구’는 내년 프로야구의 유력한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새로운 사령탑으로 2012 시즌을 맞는 KIA, 두산, LG, SK 등은 마운드 강화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두산 김진욱 신임감독은 “마운드를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라고 했고, KIA의 선 감독 역시 “투수진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고 선언했다. 

우수한 코치진을 영입해 투수 조련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완성된 해외 용병을 데려와 쓰는 것도 모두 구단의 몫. 타자들의 부활 여부도 내년 주목해야 할 요소가 되고 있다.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이창환 ho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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