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숙하게 끝맺음을 한 박영석 원정대의 합동영결식은 3일 내내 애도와 다짐이 뒤섞여 눈물바다를 이뤘다. 첫 ‘산악인 장’으로 치러진 이번 영결식에서 조문객들은 식장을 가득 메웠고 들어가지 못한 산악인들은 바깥에 줄지어 묵념으로 조의를 표했다.
마지막 날에는 박 대장의 생전 마지막 동영상을 영결식장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 흘려보냈다. 이를 시청한 조문객들은 깊은 슬픔에 휩싸였다.
동영상에서 박 대장은 산을 오르는 감동을 고백하려는 듯 벅찬 소감을 이어갔다.
박 대장은 “같이 등반하다가 다른 곳으로 멀리 간 사람들도 많은데,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다. 그렇지만 산악인은 산으로 가야 산악인이라고 생각한다. 탐험가가 탐험을 가야 탐험가이듯이. 도시에 있는 산악인은 산악인이 아니다. 죽는 그날까지 탐험을 할 것이다. 항상 감사하면서”라는 내용을 이어갔다.
조문객들은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의 등반 모습이 담은 영상과 음악이 흐르자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실종 수색작업을 지휘했던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박영석 원정대가 안타깝게도 설산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말로 조사를 시작했다.
이 회장은 “우리는 박영석 대장의 끊임없는 도전을 기억해야한다”면서 “항상 등반 선두에 섰던 신동민 대원과 궂은일을 도맡아 해온 강기석 대원 역시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세 사람의 고귀한 도전정신은 역사로 남아 새로운 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떠난 이들의 뜻을 이어받아 굴하지 않는 탐험과 도전 정신을 실현하자”고 전했다.
영결식장을 찾은 산악인들은 “산이 생명이라고 웃던 그 친구 어이해 눈보라 속 사라졌나” 하는 가사의 조가를 불렀다. 끝으로 원정대 가족과 안나푸르나 등반에 동참했던 이한구, 김동영 대원의 헌화가 진행되며 고인들을 하늘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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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로 국내 산악회는 3개의 큰 별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사의 기로에 선 마지막 순간까지 고고한 빛을 잃지 않았다.
안나푸르나 남벽의 ‘인류 최초 루트 개척’은 처음부터 위험요소가 큰 작업이었다. 세계 3대 난벽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 하지만 박 대장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한다”는 신념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몹시 추운 안나푸르나의 특징 때문에 원정대는 옷을 벗어 몸에 매달아 등반했고 박 대장은 아예 방한복을 입은 채 올랐다.
원정대의 일원이었던 이한구 대원은 사고 직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 대원은 “30m밖에 되지 않는 직벽을 처음 오르는 데 엄청난 시간을 보냈다”며 험난한 환경을 설명했다. 이어 “안나푸르나 남벽은 무섭고 상황도 안 좋았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그는 “판단을 잘했기 때문에 당시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타푸르나의 변덕은 원정대를 도와주지 않았다. 기상예보는 속수무책으로 빗나갔다. 날씨가 급격히 나빠지거나 예보를 뒤집고 눈이 쏟아졌던 것. 아예 안개 사이로 돌덩어리가 굉음을 내며 떨어지기도 했다.
이 대원은 “암벽에 매달려 걱정하지 말라고 손을 흔들던 세 사람이 눈에 선하다”면서 슬퍼했다.
지난 3일 영결식의 조사를 맡았던 이인정 회장은 원정대가 해발 5370m의 전진캠프까지 250m만을 남겨 두고 눈사태를 만났다고 밝혔다.
카트만두로 떠났다 지난 1일 돌아왔던 이 회장은 “암벽 30m 지점에 로프가 정리돼 있었다는 것은 암벽을 모두 내려온 것을 의미한다”며 “캠프까지 250m만 가면 되는데, 눈사태를 만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험 때문에 들어가지 않는 크레바스 밑까지 찾는 열의를 보였던 구조대는 30cm 이상 뒤덮인 눈사태 참사를 어찌할 수 없어 수색을 멈췄다.
이 회장은 “해마다 수색대를 꾸리겠다”면서 “내년에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도전하겠다”고 전했다.
생전의 박 대장은 아시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해 명성을 쌓아나갔다.
2006년에는 8년 2개월 만에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올라 세계 최단기간 14좌 등정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남극, 북극 탐사를 무보급 보도로 정복했다. 세계 3극점을 등반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룩했던 것. 2009년 5월에는 5번의 지치지 않는 도전 끝에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루트’ 개척했다.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