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구 자존심을 세워라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지난달 19일부터 개최된 ‘제26회 국제농구연맹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본선에서 3위를 차지했다. 올해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는 ‘2012 런던올림픽’의 본선진출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1위를 기록한 중국은 본선진출이 확정됐고 2, 3위를 기록한 요르단과 한국은 올림픽이 임박하는 내년 7월 최종예선을 치른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성적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이길 수 있는 팀에게는 이기고 전력상 힘든 팀에게는 패배했다. 그러나 경기 내용을 들춰보면 상대팀 분석, 전술, 팀플레이 등에서 실망스러웠다. 선수들의 투지나 정신력 부재 때문은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상대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주전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만이 강호들과의 최종예선에서 선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대회로 드러난 대표팀 전력을 살펴봤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농구대표팀은 지난달 25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3, 4위전에서 필리핀에 70-68로 역전승을 거뒀다. 하지만 경기내용 면에서는 기대 이하였다.
이날 대표팀은 양동근과 하승진이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초반부터 필리핀에 고전했다. 경기시작 5분 동안 무득점에 그칠 정도였고 2쿼터까지도 실마리를 찾지 못해 17-24로 뒤졌다.
대표팀의 경기력이 점차 살아난 것은 3쿼터부터였다. 강병현과 이정식 등은 3점 슛과 돌파를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필리핀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필리핀 장신 센터들의 골밑 장악 때문에 뒤진 점수 차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결국 38-47로 뒤진 채 4쿼터를 맞았다. 김주성의 5반칙 퇴장은 대표팀의 분위기를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김주성은 이때까지 14점 9리바운드로 궂은일을 도맡았다.
다행히 조성민이 4쿼터에서 폭발했다. 조성민은 과감한 외곽 슛을 득점으로 연결했고 20점을 내리 득점하면서 역전을 이끌었다.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따낸 한국은 동메달과 런던올림픽 최종예선 진출권을 확보했지만 결과는 새로운 희망보다는 해결해야할 과제만을 남겼다. 중국전에서 부각된 단점을 그대로 이어갔기 때문이다.
3, 4위 결정전 전날인 지난달 24일, 대표팀은 중국과의 준결승에서 43-56으로 패배했다. “어느 때보다 심한 텃세 때문에 경기를 준비하기 힘들 지경”이라는 허재 감독의 말도 맞지만 홈 텃세 탓만 할 수 없는 실력차가 보였다.
막판 역전으로 올림픽 행 불씨 살려
필리핀 전과 비교했을 때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한국을 경계한 중국은 수비 일변도로 1쿼터를 진행했고 한국도 공격보다는 수비에 집중했다.
2쿼터까지는 균형이 유지됐다. 양 팀 모두 주전 선수들이 득점을 생각처럼 해내지 못했고 시간에 쫓겨 무리수를 남발하기도 했다. 한국은 적극적인 압박으로 중국의 공격을 봉쇄했고 컨디션이 좋은 양동근, 김주성, 문태종을 앞세워 점수를 쌓았다.
하지만 후반전에 접어들자 대표팀의 경기력은 감소했고 순식간에 19-27로 뒤지게 됐다. 김주성과 양동근의 분발로 4쿼터 한 때 43-48까지 추격했지만 김주성의 5반칙 퇴장과 뒷심 부족으로 패배했다.
필리핀 전과 중국전을 통해 주로 지적 받은 사항은 대표팀 개개인의 실력보다는 감독과 선수들의 호흡내지는 전술 적응도였다.
런던올림픽 직행 티켓을 꿈꿨던 허 감독은 소속팀 ‘전주KCC’를 등한시하면서까지 정성을 쏟았지만 2009년 대회의 7위 굴욕을 만회했을 뿐 목표달성에 실패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번 대회 부진 원인을 전임감독의 부재로 돌리고 있다. 대표팀 전임감독제는 예전부터 종종 거론됐던 이야기다. 기용한다면 중국, 필리핀처럼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자는 목소리도 있다.
아마추어만도 못한 협회의 정보수집
사실 한국 남자농구는 2008년 전임감독제를 도입해 김남기 전 연세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그러나 김 전 감독이 사임을 선언하면서 흐지부지됐다.
전임감독제는 감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표팀을 운영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술적인 면에서도 일관성과 연속성을 둘 수 있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조직력을 키우는데도 좋다. 감독이 매번 바뀌는 현 체제에서는 먼 이야기다.
이번에 대표팀을 맡은 허 감독과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의 유재학 감독은 스타일에서 큰 차이가 있다. 1년 만에 소집된 선수들은 완전히 다른 농구를 단시간 내에 받아들여야했다. 감독은 감독대로 전술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일 잘하는 방식대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취약한 정보 수집력의 경우 전임감독제와 이상으로 시급한 과제다.
허 감독은 이번 대회의 예선전 때 레바논과의 일전을 앞두고 “상대팀 정보가 적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영상과 기록으로 간신히 파악했다”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반면 이란, 중국 등은 아시아 랭킹에서 한국보다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수집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한국과의 결선리그를 앞뒀던 베셀린 마티치 이란대표팀 감독은 “한국이 두렵고 존경스럽지만 많이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농구협회는 대회를 앞두고 마티치 감독에게 4명의 전력 분석팀을 지원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고 대회 3연패를 노리던 이란이었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한국은 전력 분석팀은커녕 분석원도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DVD영상과 기록 정리파일이 전부다. 이마저도 협회가 아닌 일부 농구전문가들이 공들여 모은 것이다.
대한농구협회 조직을 보면 실무진은 5~6명 수준이다.
남녀 연령별 대표팀 지원은 물론 각급 아마추어대회 개최, 평소업무 등 일이 넘쳐나지만 5~6명으로 과부하가 걸린 지 오래여서 전문적인 전력분석은 꿈도 못 꾼다.
게다가 일부 임원들은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하는 게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반 기업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실 단체가 대한농구협회라는 것.
다가오는 올림픽 최종예선에서의 생존도 중요하지만, 중국, 이란 등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정책부터 꾸려나가야 할 상황이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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