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아, 지성이형만큼만 해”

2011-1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가 시작되면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이 주목받고 있다. 팬들은 오전 3~4시에 열리는 해외파 선수들의 경기를 챙겨보는가 하면 경기 소식과 하이라이트 영상을 빠짐없이 보면서 많은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이슈는 박주영의 ‘아스날’ 이적이다. 등번호 9번으로 아스날에 입성한 박주영은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동국, 김두현, 조원희, 이청용, 지동원에 이은 아홉 번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클럽 유명세로 따지면 박지성 다음이다. 박지성과 박주영은 지난 21일 나란히 칼링컵 경기에 출전했다. 박주영은 무난한 출발을 했고 박지성은 2도움을 기록했다. 프리미어리거를 비롯한 해외파 국내 선수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박지성처럼 되는 것. 팬들은 박지성과 이청용이 안겼던 흥분을 박주영이 이어가길 바라고 있다.
박주영(26)의 아스날 행은 지난달 30일 최종 확정됐다. 갖가지 추측과 여러 구단과의 긴 협상 끝에 나온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간판 공격수를 의미하는 9번 유니폼 배정은 아스날 내에서의 박주영 위치를 설명해줬다.
세계 최고 리그에서 뛰게 된 박주영은 “영광이다.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또한 “통화할 때 벵거 감독이 나를 많이 생각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주영은 ‘AS모나코’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주전 경쟁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프랑스 리그앙 또한 프리미어리그 못지않은 수준의 리그라는 게 이유다. 이전 소속팀이던 AS모나코에서 박주영은 한 시즌 12골을 뽑아내면서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가장 편한 포시션으로 최전방 공격수를 꼽은 박주영은 “시즌 준비를 많이 하지 못했지만 경기를 치르다 보면 몸 상태가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스날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클럽
프랑스 리그앙 우승팀인 ‘릴OSC’로부터 박주영을 가로챈 아르센 벵거 감독은 박주영 영입 이유를 활발한 움직임과 멀티 플레이어 기질로 꼽았다.
벵거 감독은 박주영에 대해 “어디에서나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다. 공중볼에 강할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 좋다”고 평가했다. 또한 “최전방 공격수를 뒤에서 받쳐줄 수 있는 셰도 스트라이커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스날이 추구하는 기본전술과 맞아떨어진다는 것. 일본 J리그에서도 지휘봉을 잡아본 벵거 감독은 박주영을 아시아 축구의 강점인 팀플레이에 능한 선수로 여기고 있다. 물론 벵거 감독의 안목이 정확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박주영은 지난 21일 출전한 데뷔전에서 조금은 밋밋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아스날은 런던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슈루즈버리 타운’을 상대로 ‘2011~2012 칼링컵’ 32강을 치렀다. 박주영은 3주간의 팀 적응 후 고대했던 공식 경기에 출전했다.
아스날은 16분 만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3-1로 역전승을 거뒀다. 박주영은 셰도 스트라이커로 71분을 뛰다 일본 선수인 미야이치 료와 교체됐다.
벵거 감독은 박주영의 첫 경기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주영과 교체된 미야이치 료를 칭찬하면서 “미야이치가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좀 더 빨리 넣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에 대한 평가는 국내 언론 사이에서도 상반됐다. 공간 창출과 공중볼 경합이 뛰어났다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잦은 패스미스와 미비한 존재감으로 실망을 줬다는 평가도 있었다. 대다수 언론은 “팀원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았으며 몸이 무거워 보였다. 한 차례 코너킥과 슈팅을 제외하고는 성과가 전혀 없었다”는 내용으로 보도했다.
박주영은 이날 경기 후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박주영의 득점으로 ‘빅4’ 위상 되찾길
이에 몇몇 축구 팬들은 “이제 한 경기를 마쳤을 뿐”이라며 ‘최악’으로 평가절하한 언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 팬은 “슛 타이밍도 빠르고 후방에서의 침투도 좋았다”며 박주영의 기량을 칭찬했다. 다른 팬 역시 “박주영의 경기를 보고 기사를 쓴 게 맞을까”라며 “아스날은 전체적으로 부진했고 공격수의 경우 박주영보단 샤막이 못했다”고 말했다.
미야이치 료의 경기력에 대해서도 논란이 오갔다. 한 축구팬은 “감독의 인터뷰는 박주영의 분발을 위해서 일 것 같다”면서 “미야이치 또한 드리볼과 돌파에 있어서 실수가 많았다. 박주영이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같은 날 경기를 치렀던 ‘세개의 폐’ 박지성은 2도움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승리를 이끌었다.
맨유는 잉글랜드 리즈 앨런로드에서 ‘리즈 유나이티드’와 칼링컵 3라운드를 가졌다.
올 시즌 두 번째로 선발 출전한 박지성은 최고참 라이언 긱스와 중앙 미드필더로 호흡을 맞췄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활약한 박지성은 마이클 오웬의 선제골과 긱스의 쐐기골을 이끌어내는 날카로운 패스를 선보여 수비 못지않은 공격력을 자랑했다.
박지성의 노련함은 경기 중 나왔던 ‘폭풍 드리볼’을 통해서도 증명됐다. 박지성은 전반 43분 리오넬 메시를 방불케 하는 드리블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중앙선 근처에서 공을 받은 박지성은 4~5명의 리즈 선수가 감싸고 있는 상황에서도 골문 앞까지 돌파 했다. 리즈 선수들은 박지성을 막기 위해 위험한 태클을 날리기도 했지만 헛수로고 돌아갔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신구 캡틴 간의 경쟁은 박지성의 승리로 돌아갔다.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하는 프리미어리거들이지만 더 나은 활약을 위해서는 서로 경쟁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하는 아스날로서는 앞으로도 박주영을 계속해서 기용할 수밖에 없다. 박주영이 과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낼 것인지 꾸준히 지켜보자.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