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로 떠난 ‘무쇠팔’
선동열 “나의 롤모델 동원형 떠나 슬퍼”한국 프로야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의 별세에 야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선동열 전 삼성 라이온스 감독, 허구연 MBC 해설위원, 김경문 NC 다이노스 초대 감독, 이광환 전 LG 트윈스 감독과 국회의원 정동영 등은 지난 14일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선동열(48) 감독은 고인이 된 최동원 감독과의 긴 추억을 떠올렸다. 선동열은 “프로에 와서 라이벌 관계가 됐지만 어렸을 때 동원이 형을 보며 투수가 돼야겠다는 꿈을 꿨다”며 고인과의 각별한 관계를 드러냈다. 이어 “항상 나에게 힘이 되는 말을 많이 해줬다. 그중에 ‘마운드에서는 본인이 최고다라는 생각으로 공을 던져라’는 말은 잊혀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선동열은 최동원과 벌인 경기 중에서 87년 펼쳤던 맞대결을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로 꼽았다.
선동열은 “87년 선배와 맞대결했던 롯데와의 경기를 잊을 수 없다. 200개 이상의 공을 던지는 경기를 함께했다”며 “그런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니 비통할 뿐이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빈소를 찾았던 허구연(60) MBC 해설위원도 애석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허 위원은 “한국 프로야구 30년사에 그만큼 다이내믹하게 경기를 하던 선수는 없었다”며 “팀을 위해 몸을 던진 그야말로 불세출의 투수였다”고 기억했다.
이어 “최동원 감독은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1군 감독을 못해 보고 떠난 게 아쉽기만 하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NC 다이노스의 초대 감독인 된 김경문(53) 감독 또한 “야구계에 큰 별이 졌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선배다. 팬들도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최동원 전 감독은 지난 14일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7년 최초로 대장암 진단을 받은 최 전 감독은 한 때 병세가 호전돼 200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감독관으로 복귀하기도 했지만 최근 건강이 다시 악화돼 사망하기 전날 일산병원에 긴급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별세했다.
故 최동원 주연의 1984년 쇼
세상을 떠난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1984년 한국 시리즈다.
당시 후기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롯데 자이언츠의 강병철 감독은 최동원 카드를 꺼내들었다.
파트너 고르기 논란까지 일어날 정도로 당대 최고 기량을 자랑하던 삼성 라이온즈를 꺾기 위해서는 최동원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깨가 강한 투수라도 이틀 간격으로 매일 선발로 나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최동원은 페넌트레이스에서의 연투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최동원은 강 감독의 제의를 수락했다. 최동원은 고향팀 롯데와 부산팬들에게 첫 우승의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최동원은 1차전에서 김시진 현 넥센 히어로즈 감독을 상대로 4-0 완봉승을 이끌어냈다. 한국시리즈 첫 번째 나온 완봉 역투였다.
예상대로 롯데가 2차전을 내주자 최동원은 3차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틀을 쉬고 나온 최동원은 이번에는 12개의 탈삼진을 곁들이며 완투승을 챙겼다.
이때까지는 롯데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
4차전에서 패한 롯데의 5차전 선발은 역시 최동원이었다. 하지만 9회까지 삼성 타선을 3점으로 막은 최동원은 타자들이 2점을 내는데 그쳐 패전의 멍에를 썼다.
계획이 어긋난 롯데는 다급해졌다. 절실해 질수록 최동원에게 기대는 방법 밖에 없었다. 최동원 역시 이미 어깨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만을 바라보는 팀을 외면할 수 없어 다시 공을 집었다.
5차전에서 9이닝을 혼자 책임진 최동원은 하루 뒤 6차전에 등판했다. 강 감독은 4회말 팀이 3-1 리드를 잡자 바로 최동원을 올렸다. 최동원은 또다시 5이닝을 틀어막고 6-1 승을 견인하며 승부를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
10월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7차전. 당연히 롯데 선발은 최동원이었다.
최동원은 2회에만 3점을 내주며 휘청거렸다. 그 사이 해외파 출신 김일융이 버틴 삼성은 6회까지 4-1로 앞서며 우승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최동원의 호투에 힘을 낸 롯데는 7회 3-4까지 추격하더니 8회 잠잠하던 유두열의 극적인 역전 스리런포로 6-4로 승부를 뒤집었다.
롯데의 첫 우승과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4승 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훗날 강 감독이 언론 인터뷰에서 미안함을 표할 정도로 최동원은 온 몸을 다바쳤다.
비록 한국시리즈 MVP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그해 한국시리즈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최동원이었다.
갑작스런 비보에 현장 지도자들도 탄식
현직 프로야구 사령탑들도 최동원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을 떠나 보낸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4일 잠실구장에서 맞대결을 치른 LG 트윈스 박종훈(52) 감독과 두산 베어스 김광수(52) 감독대행은 경기 전 기자들과 만나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함께 선수시절을 보낸 탓에 슬픔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1년 후배인 박 감독은 “장효조 전 감독에 이어 부음이 들려오니 멍해진다. 야구계의 두 별을 보냈다. 투타에서 한 획을 그으셨던 분들이 떠났다”며 비통해 했다.
대학교 대항전 뿐만 아니라 프로에서도 수차례 고인과 대적했던 박 감독은 “예전에는 빠른 직구에 좋은 변화구만 장착해도 공략하기 어려웠다”며 “동원이형은 그때 벌써 145~150㎞를 던졌다. 변화구의 각도 컸고 빨리 떨어졌다”고 극찬했다.
이어 “멘탈도 굉장히 좋았다. 도망가지 않고 항상 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다”고 기억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맞대결을 펼쳤다는 김 감독대행은 “시기를 잘 만나 관리를 했으면 더 큰 획을 그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대학 시절 고인으로 인해 겪었던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건국대 출신인 김 감독대행은 “매번 최동원에게 지니 한 지인이 최동원만 이기면 선수단에 양복을 돌린다고 약속했다. 최동원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한 번 이겨서 양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전해 고인의 위용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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