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캐피탈사 벌벌 떨며 슬그머니 금리인하

평균 30% 초반대의 높은 대출 금리를 운용하고 있는 제2금융권(이하 캐피탈사)이 정부의 철퇴를 맞았다. 지난 7월 22일 한 미소금융지점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캐피탈사의 고금리는 사채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불호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이 대통령의 직접 타켓이 된 롯데 캐피탈뿐만이 아니라 타 금융사들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재계는 강한 후폭풍을 대비해 후속 조치를 강구하고 있고, 금융위는 해결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캐피탈사의 고금리 문제가 해결될 것인지, 한 때의 바람으로 그칠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지난 7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화곡동 까치산 시장에 위치한 ‘포스코 미소금융지점’을 방문했다. 신용이 낮은 서민들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을 해주는 ‘미소금융’ 제도의 운영 실태를 직접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소금융 대출을 신청하러 온 한 여성에게 친절하게 상담해 주는 등 ‘미소금융 일일 전도사’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옷가게를 운영하는 정모(42·여)씨의 대출 기록을 꼼꼼하게 살펴보던 중 모 캐피탈사의 대출 기록을 발견하고 질문했다.
“캐피탈사 이자율이 얼마인가” 정씨가 40~50%이라고 답변하자 이 대통령은 “대기업이 하는 캐피탈 이자율이 사채이자와 똑같지 않느냐”며 “큰 재벌에서 일수 이자 받듯 이렇게 (이자를) 받는 것은 사회정의상 안 맞지 않느냐”고 진노했다. 또 그는 “신발가게를 운영해 근근히 살아가는 서민이 어떻게 이렇게 높은 이자를 내며 살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더불어 이 대통령은 정씨에게 “(기존에 대출받은 캐피탈이 소속된) 모 그룹이 미소금융도 하지 않느냐, 이 그룹 미소금융에서 돈을 빌려서 이 그룹 소속 캐피탈에 갚은 것으로 해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한편 미소금융 활성화와 관련, 이 대통령은 “이게 대기업이 하는 일 중 작은 일이어서 소홀히 할 수 있지만 대기업들이 더욱 애정을 갖고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날 정씨는 이 대통령이 캐피탈사의 금리를 물었지만, 등록한 대부업체의 이자율로 잘못 대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캐피탈사와 등록 대부업체로부터 대출을 받았는데, 모 캐리탈사에서 35%의 금리로, 대부업체에서는 종전 최고 이자율인 49%대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캐피탈사의 신용대출 금리가 평균 30%대 초반인 점을 생각할 때 캐피탈사의 대출금리도 서민인 정씨에게는 지나치게 높은 금리라고 여겨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높다. 이것을 계기로 캐피탈사의 고금리 대출영업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캐피탈사 금리 대부업체 못지않아
기존 대출고객은 신용등급에 따라 1~10등급으로 분류된다. 3등급 이내이면 제1금융권인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4등급부터는 제2금융권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8등급 이하의 저신용등급자라면, 그들은 제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받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신용등급 분류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제2금융권과 대부업자들의 대출 이자율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캐피탈사의 평균 금리는 현재 30% 초반대이고, 저축은행의 신용 6~10등급 신용대출 금리도 32.6%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신용등급이 낮은 대출자의 경우, 40%가 넘는 이자율이 적용되기도 한다. 사채 시장의 주축을 이루는 대부업자들의 평균 대출금리가 40% 초반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의 ‘재벌 캐피탈사들 사채놀이(?)’ 발언은 무리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캐피탈사 고객의 신용등급이 대부업체 고객들에 비해 신용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캐피탈사의 고금리 정책은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은행, 캐피탈사, 대부업체를 막론하고 모든 대출업체들은 ‘이자율∝승인률’의 공식을 가지고 있다. 이자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고객의 신용 등급이 낮더라도 대출 승인이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A 캐피탈사 관계자는 “캐피탈업체들은 미상환 위험을 감수하고 대신 금리를 높여 운용하는 것”이라며 “이자율을 낮출 경우 대출업체들은 역으로 미상환 위험을 지지 않기 위해 대출 승인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미 대부업체들이 상환금리를 44% 수준으로 인하함에 따라 캐피탈업체들도 실제 금리를 30% 안팎의 수준으로 조정했다”며 “하지만 그만큼 고객의 대출 심사 조건도 더욱 엄격하게 변경됐다”고 말했다. 캐피탈사의 대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서민들이 대부업을 이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다. 그는 더불어 “(등록)대부업체들도 금리인하가 이어지면 더 높은 이자율을 받을 수 있는 무등록 대부업체로 변경해 서민들의 피해는 더욱 극심해지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대부업체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현재 41%대이다. 대부업계에서 무등록 대부업체의 비율은 60%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주로 운영하는 캐피탈사들의 대출 이자율이 턱없이 높다는 사실을 뒤따르는 도덕성 논란을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박모(44)씨는 “큰 자본으로 돈을 쉽게 버는 대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은커녕 높은 이자율로 서민들의 등골만 빼먹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캐피탈사, 재계, 금융위 전전긍긍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캐피탈사에 대한 여론이 거세지자 캐피탈사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이끌어낸 정씨가 대출받은 롯데 캐피탈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롯데 캐피탈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과도한 이자를 받는 곳으로 지목됐다는 소식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일요서울]이 이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롯데 캐피탈과 롯데그룹 측에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연결이 되지 않았다.
캐피탈사를 보유한 타 대기업들과 은행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언급한 회사가 어디인지 분주한 모습을 보이다가 해당 그룹이 밝혀지자 안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똥이 튈까 몸을 낮추고 있다.
현대 캐피탈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적극적이고 빠른 대책을 강구하도록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며 “8월 2일부터 8월 1일자 대출 확정자를 대상으로 39.9%에서 35.99%로 5% 금리인하 예정이다. 취급 수수료 면제까지 하면 실질적으로 7.5% 인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정부가 점차 강도 높은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강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외치며, 친재계 정부 수장으로 거듭나던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정책’으로 회심한 증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기업을 타켓으로 본보기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귀뜸했다.
더불어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이후 금융위원회도 분주해졌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3일, 미소금융 사업자들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저신용자와 저소득자 지원에 전력을 다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캐피탈사 금리가 여전히 높은 게 사실이라며, 이 대통령이 금융권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이에 따라 후속 조치로 캐피탈사의 금리 구조나 여신 현황 등을 점검할 예정이다. 더불어 지나친 고금리 영업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금리 인하나 해당업체 처벌, 수수료 조정 등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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