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노무현, 산 이명박 ‘잡았다’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을 접고 다음 달 정부부처 이전 고시와 함께 원안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지난 10개월여 동안 국론 분열의 핵심이었던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종식됐다. 세종시 법안은 지난 2004년 10월 이 법안의 전신 격인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결정 이후 우여곡절 끝에 안착하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세종시 원안 플러스 알파 논란이 그것이다. 세종시 논란 10개월을 정리해봤다.
국회는 지난 6월 29일 본회의를 열고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킴에 따라 그동안 정국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세종시 수정안을 폐기처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국론 분열로 인한 지역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종시 수정안 논란은 여당내에서도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계라는 모호한 계파 경계를 명확히 하는 계기가 됐다. 세종시 문제는 지난 2002년 9월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청와대를 포함한 중앙정부기관 충청권 이전을 골자로 하는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세종시 논란의 출발점이었다.
수도이전 법안 헌재서 위헌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됨에 따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마련됐고, 2003년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수도 서울은 관습헌법’이라는 해석과 함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이 문제는 위기를 맞게 됐다. 이에 참여정부는 곧바로 후속조치에 착수했고 여야 협상 끝에 ‘12부4처2청’을 충남 연기·공주로 이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이 지난 2005년 3월 2일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세종시는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2007년 대선에서 당선하면서 또 한 번 고비를 맞게 된다.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 것은 지난해 9월 개각 부터다.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는 개각 직후 “세종시는 경제학자인 내 눈으로 볼 때 효율적인 모습은 아니다”라며 세종시 원안 수정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세종시 수정론에 불을 지폈다. 이때부터 정 전 총리는 세종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총대를 맺다. 정 총리는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세종시 수정 방침을 거듭 밝히며 이 문제는 또다시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야당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특히 충청권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의 반발은 더욱 거셌다. 여기에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여당 내 계파 분류 지침서 탄생(세종시 수정안 국회 본회의 찬반 의원명단)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 터진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 원안+알파’를 요구한 것. 박 전 대표가 당시 세종시 수정 문제를 당 존폐 문제로 규정하면서 친이-친박 간 계파 공방은 확대되기 시작됐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이 대통령은 작년 11월 27일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세종시 수정안의 역사적 당위성을 역설하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정부는 같은 달 16일 세종시 민관합동위를 발족시키는 등 수정안 마련에 속도를 냈고, 정 총리는 충청 지역을 10여차례에 걸쳐 순방하면서 직접 충청민심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 올해 1월 11일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베일을 벗었다. 세종시의 성격을 행정도시에서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변경하면서 삼성, 한화, 롯데, 웅진 등 대기업을 유치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다 정부는 3월 23일 세종시 수정 관련 법안 5개를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올해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함에 따라 야권은 거센 공세를 퍼부우며 세종시 수정안 폐기를 요구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수정안의 ‘출구전략’ 필요성이 제기됐다. 결국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인 국토해양위에 상정됐고 표결을 통해 부결됐다. 하지만 한나라당 친이계 일부는 세종시 수정안 본회의 재부의를 요구하면서 의원 66명의 서명을 받아 본회의에 제출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세종시 수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표결 처리하기로 합의하고 6월 29일 본회의 상정 및 표결을 통해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면서 세종시 수정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결국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에게 승리한 것이다.
‘플러스 알파’ 또 다른 논란 시작
세종시 수정안은 종식됐지만 이후 또 다른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그동안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종시 조성 계획’에 따라 세종시에는 당초 계획대로 9부2처2청의 행정부처가 이전하게 된다. 다음달로 예정된 정부부처 이전 고시를 하면 이전 기관이 확정되고 원래대로 행정부처 이전이 추진된다. 하지만 정부부처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이전하도록 돼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수정안 추진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기도 한 만큼 정부부처 이전 시기가 다소 지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수정안 논란은 종식됐지만 정치권에서는 또 다른 논란거리가 남아있다.
세종시 수정안 찬반을 놓고 정치권이 날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정부가 원안의 자족기능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또 다시 불거지자 한나라당 친박계를 비롯한 야권은 ‘원안 플러스 알파’를 주장하면서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기업 등의 유치방안이 없어 원안에 자족기능이 부족하다면 이를 보완할 대책을 추가하면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국회 표결 이전에 ‘수정안이 아니면 원안’을 주장하면서 원안에 다른 보완책을 추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재완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도 재임 당시 “(국회에서)부결되면 원안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정”이라며 “중간점이 되는 안으로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박 전 수석은 절충안 등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세조정 차원이라면 모르겠지만 원안이 지향하는 행정중심도시와 수정안이 지향하는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를 절충해 섞어버리면 소규모에 너무 많은 것을 집어 넣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체불명의 절충안이 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이 때문에 앞으로 정부가 소극적인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고수할 경우 또 다시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 등 야당 및 여당 친박계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원안대로만 추진할 경우 수정안에 들어있던 과학비즈니스벨트는 부지나 예산 등이 포함돼있지 않아 그대로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또 세제혜택이나 원형지 공급 등의 혜택도 기존 원안에는 포함돼있지 않고, 기업이나 대학들의 유치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 원안에 ‘나몰라라?’
따라서 이 같은 정부의 입장이 유지될 경우 야권에서는 수정안을 내걸 때는 자족기능의 문제점을 주장했지만 원안으로 유턴하게 되자 ‘나몰라라 한다’며 공세를 퍼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플러스 알파’ 문제가 불거지면 또다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각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이미 세종시 수정안 역시 다른 지자체에서 유치할 기업을 빨아들인다는 이른바 ‘블랙홀 논란’이 일면서 타 지자체에서 거세게 반발한 바 있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도 “만약 충청권에 (다른 혜택 등을) 주면 가만 있을 수 없지 않겠느냐”며 “새로 또 다른 다툼이 생길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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