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 아쉬움 속 명장의 마지막 인사 폭풍 감동

[이창환 기자]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53)이 지난 13일 팀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사퇴했다. 8년 간 두산을 곰처럼 뚝심 있게 지도한 것 치고는 너무나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구단은 김 감독의 사퇴를 극구 말렸지만 그의 결심은 단호했다. 최근 두산은 최악의 부진을 겪으며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때문에 김 감독의 부담은 어느 때보다 심했다. 팀 부진을 이유로 사퇴한 김 감독이지만 선수들과 두산 팬들은 깊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감독은 야구 공부와 재충전을 위해 조만간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김 감독은 사퇴서를 통해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팀과 선수들에게 좋을 것”이라며 사퇴배경을 밝혔다. 이어 “두산 유니폼을 입고 더그아웃에 앉아 있었던 것이나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생활한 것은 큰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두산에서 2004년부터 올해까지 8시즌을 보냈다. 김 감독 외에 한 구단에서 7시즌 이상 지낸 감독은 김응용 전 삼성 감독(18시즌), 김재박 전 현대 감독(11시즌), 김인식 전 두산 감독(9시즌)밖에 없다.
7번이나 우승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 탓인지 개막 전 김 감독은 “올해는 꼭 우승해 못 다한 한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우승 목표는 끝내 좌절됐다.
올 시즌 우승을 향한 두산의 열망은 대단했다. 고액 선수 영입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구단도 우승을 위해 투수진에만 30억 원 가까이 투자했다.
두산은 넥센으로부터 10억 원을 주고 이현승을 데려왔고 일본에서 돌아온 이혜천 역시 11억 원을 주고 받아들였다. 또한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영입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화끈한 공격야구로 매년 우승후보
이 같은 전력 강화로 시즌 개막 전에 두산은 SK와 함께 양강구도를 펼칠 유일한 팀으로 꼽혔다.
기대에 부응하듯 두산은 4월 한 달 동안 2위를 달리면서 시즌 초반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팀 성적은 5월 들어 추락했다. 니퍼트와 김선우 등 선발 투수진들이 부진했고 타자들도 힘을 쓰지 못했다. 두산 특유의 화력과 기동력은 사라졌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임태훈 스캔들까지 터져 팀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침체는 계속 이어졌고 지난 9일에는 1175일 만에 리그 7위로 떨어지는 수모까지 겪었다.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김 감독은 4개월의 잔여임기를 내주면서 부진에 책임을 졌다.
비록 팀 부진을 이유로 하차했지만 프로야구에 역사에 있어서 김 감독이 세운 업적은 대단했다.
김 감독은 두산에서 8년 동안 통산 512승을 달성했다. 우승을 하지 못한 점을 제외하고는 나무랄 데 없는 성적이다. 김 감독은 5년 동안 네 차례나 두산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고 준우승을 3회 기록했다. 우승 전력이 없음에도 두산이 매 시즌 강력한 우승호보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수 발굴 능력 역시 탁월해 김현수, 고영민, 손시헌 등 수많은 스타선수들을 키워냈다.
2008년에는 국민감독으로 추앙 받기도 했다. 김 감독은 베이징 올림픽에 야구대표팀 감독으로 출전해 9전 전승으로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당시 올림픽 금메달 여파는 엄청났고 야구팬들은 “야구에 관심 없던 이들, 심지어 주부까지도 야구에 관심을 갖게 만든 원동력 이었다”고 기뻐했다.
야구 전문가들 또한 “2000년대 들어 침체기에 빠져있던 프로야구가 김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 덕분에 다시 한 번 국내 제일의 스포츠가 됐다”고 말했다.
경기 개입 최대한 자제하는 ‘신뢰’ 돋보여
베이징올림픽 우승은 김 감독 특유의 뚝심이 빛났던 순간이었다. 특히 올림픽 내내 슬럼프에 빠져있던 4번 타자 이승엽을 끝까지 중용한 믿음은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결국 이승엽은 마지막 2경기에서 극적인 결승 홈런의 주인공으로 부활했다.
김 감독은 이후에도 선수를 위한 기다림의 야구를 선보였다. 김 감독 덕분에 몇몇 선수들은 뒤늦게 만개해 자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제 김 감독은 제2의 야구인생을 위해 조만간 미국 연수 길에 오른다. 시기는 7월 초로 알려져 있다.
김 감독은 1991년 현역선수를 은퇴 했을 때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바 있다. 그는 명장 보비 콕스가 이끄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미국에서의 배움은 김 감독을 파워와 세밀함을 겸비한 감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같은 장점은 그만의 스피드 야구로 변모했다. 2007년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던 김 감독은 “스피드 야구는 앞으로 한국야구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자신했다.
이번 미국행은 오랜 시간 달려온 김 감독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가 될 예정이다. 그리고 김 감독은 또 한 번의 발전을 통해 현장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김 감독이 언젠가 국내 프로야구 우승을 달성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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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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