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이승엽 보러 경기장 갔다간 …

[이창환 기자]= 한국야구의 투타를 대표하던 박찬호와 이승엽이 소속팀 오릭스 버팔로스(이하 오릭스)에서 나란히 2군행을 통보 받았다. 오릭스에서 제2의 야구인생을 열겠다는 포부와 달리 성적부진을 면치 못하며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특히 박찬호는 메이저리그(MLB)에서 동양인최다승(124승)을 세운 다음 벌어진 일이라 아쉬움이 크다. 올 시즌 개막 후 두 달도 버티지 못한 박찬호와 이승엽. 야구팬들은 이들이 절치부심해 한국야구의 자존심을 세워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오릭스는 선발 투수 보강을 위해 박찬호를 4,5선발투수로 영입했다. 박찬호는 비록 2군으로 내려가긴 했지만 현재까지 4,5 선발투수 치고는 나쁘지 않은 투구내용을 보였다.
특히 시즌 초반에는 3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면서 기대 이상의 역할을 했다. 박찬호의 1승4패 중 3패는 박찬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오릭스 타선 탓이 컸다. 지난달 박찬호가 선발 등판한 4경기 내내 오릭스 타선은 5점을 지원했다. 경기당 2점 이상의 점수도 뽑아내지 못한 것이다. 이는 9이닝을 2실점 이하로 잡아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박찬호는 완벽한 피칭으로 경기를 잡아야겠다는 마음에 실투를 던져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에 오릭스 관계자는 “지금까지 고군분투 하긴 했지만 아직 시즌 초반이고 타선이 살아난다면 더 강력한 공을 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박찬호는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일본 무대 진출, 오점으로 남나
전문가들은 “전성기에 비해 떨어진 패스트 볼과 벨로시티(구속)가 박찬호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찬호의 구위가 톡톡 끊어 치는 타격에 능한 일본 타자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 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제구력 역시 일본무대에서 살아남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증명하듯 박찬호의 직구는 일본 무대 데뷔 후 145km를 넘기지 못했다. 다양한 변화구 역시 컨트롤이 되지 않을 때는 연속 홈런포를 허용하기도 했다.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는 박찬호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부터 줄곧 제기됐던 문제점 중 하나였다. 팀이 어렵게 역전을 시켜놓았을 경우, 1,2이닝 정도 그 점수를 지켜줘야 하는데 다음 이닝에서 곧바로 대량 실점 하는 것이다.
오릭스 코치진은 지난 11일 경기를 두고 “박찬호의 승부가 빨랐다”며 박찬호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를 질타했다. 승리를 너무 의식한 탓에 베테랑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경기에서 오릭스는 6회 초 홈런과 2루타 등을 묶어 3점을 뽑아내 경기를 3-1로 역전했다. 그러나 박찬호는 곧바로 3점을 내주며 재역전을 허용했다.
만약 박찬호가 점수를 지켰다면 오릭스는 모처럼 역전승을 거둬 팀 분위기에 반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날 오릭스가 상대한 투수는 최근 3연승을 거두며 평균자책점 1.57을 기록하고 있는 데니스 홀튼이었다. 박찬호가 버텼다면 오릭스가 필승 계투진을 가동해 승리를 따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박찬호는 개인적인 승수와 일본 무대에서의 자신감을 쌓을 기회를 모두 날려 버렸다.
휴식을 위한 강등과 좌절의 강등
오릭스는 “박찬호의 경우 인터리그를 대비한 2군행”이라면서 “1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것이며 조만간 다시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승엽의 상황은 좀 더 심각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부터 밀려나기 시작해 지금까지 꽤나 오랜 세월 실망감을 안겼지만 올 시즌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
올 시즌 20경기에 출장하는 동안 이승엽은 1할4푼8리를 기록했다. 오카다 감독은 이승엽의 부진에도 꾸준히 기회를 줬지만 팀 성적이 여의치 않자 점차 출장 기회를 줄였다. 그리고 지난 9일, 결국 이승엽에게 2군행을 지시했다. 대타로 나서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 더 이 상 이승엽을 기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2군으로 강등되기 전까지 이승엽은 27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퍼시픽리그 최다 개수다. 거포들의 삼진 개수는 홈런과 비례하기도 하지만 이승엽은 홈런 한 개가 전부였다.
특히 떨어지는 공에 속수무책이었던 이승엽은 투수들의 변화구에 여지없이 헛스윙을 했다. 심지어 배트와 공의 차이가 현저할 때도 많았다. 타격 폼까지 바꾸며 자존심 회복을 노린다는 포부치고는 초라한 시즌 초 성적이었다.
정신적인 문제인지 실력탓인지 헷갈려
몇 년간 이승엽은 몸 쪽 공과 포크볼에 대한 약점을 철저히 공략 당했다. 몸 쪽 공에 대한 부담감은 바깥쪽 변화구에 대한 약점으로 이어졌고 포크볼 배합은 ‘이승엽 공식’으로 까지 불리며 이승엽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일본 투수들은 이승엽을 상대할 때 일종의 공식이 있다. 몸 쪽으로 빠른 직구를 연달아 붙인 뒤 바깥쪽 포크볼 또는 체인지업 등이다. 이승엽은 바깥쪽 변화구에 대처할 때 타격폼이 와르르 무너지는 현상을 곧잘 보였다. 몸쪽 공을 잔뜩 노리고 있다가, 변화구가 스트라이크 존으로 오다 떨어지면 타격 폼이 무너졌다.
이승엽의 타격 자세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승엽의 장기인 밀어치기가 실종됐다”면서 “2003년 300홈런을 달성할 당시의 밀어치기 타격이 살아나야 한다”고입을 모았다. 밀어치는 것에 익숙해지면 떨어지는 볼에 대한 대처가 자연스럽게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 이후 밀어치기 타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밀어치기의 부재는 일본 투수들의 포크볼 등에 여지없이 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박찬호와 이승엽에게 내려진 2군 강등 지시는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이다. 박찬호와 이승엽이 이를 딛고 변화를 일으킬지 야구팬들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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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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