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구원 투수 임창용

임창용(35·야쿠르트 스왈로스)이 올 시즌 활약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임창용은 올 시즌 목표로 한일 통산 300세이브를 꼽았다. 현재 264세이브를 기록 중인 임창용은 36세이브만 추가하면 통산 300세이브에 도달하게 된다. 임창용은 “올해는 팀도 우승하고 나도 세이브왕에 올랐으면 좋겠다”며 “일본 프로야구 단일 시즌 최다세이브 기록도 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본 진출 첫 해 33세이브를 거둔 뒤 2009년 28세이브, 2010년 35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일본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자리매김한 바 있지만 아직 구원왕 타이틀은 차지하지 못했다. 임창용의 활약상을 알아본다.
임창용이 시속 150㎞에 도달했다.
지난달 29일 요코하마에서 치러진 원정 연습경기에서 임창용은 1이닝을 맡아 첫 두 타자를 플라이로 처리한 뒤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임창용의 에이전트 박유현씨는 “공 8개로 깔끔하게 이닝을 마치자 코칭스태프가 만족스러운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임창용은 포심패스트볼 구속이 149~150㎞까지 나왔다. 임창용이 일본에서 기록한 최고 구속은 160㎞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몸이 풀리기 이전인 시점에 벌써 150㎞를 기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오프시즌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다는 뜻이다.
같은 달 6일 소프트뱅크와의 시범경기에서 1이닝 2실점을 하며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외의 경기에선 무실점을 이어갔다. 소프트뱅크전의 경우 1-6으로 뒤진 상황에서 컨디션 점검차 마운드에 올랐고, 구질을 실험하는 차원에서 공을 던지다 3안타를 허용했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야쿠르트와 3년간 총 14억2000만 엔(약 190억 원)에 재계약한 임창용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년 동안 너무 빨리 컨디션을 끌어올리다보니 시즌 중반에 페이스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올 시즌부터 사용되는 통합 공인구에 대해서도 “잡는 느낌이 좋아 나는 괜찮다. 공이 더욱 살아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무시무시한 뱀직구의 위력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임창용의 최고 무기는 시속 160㎞에 육박하는 ‘뱀직구’다. 정통파 투수와는 달리 볼이 어깨 약간 아랫부분에서 나오는 사이드암인 그의 직구는 볼이 앞뒤 방향보다는 좌우 방향으로 많이 돌기 때문에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흔들림이 심하게 느껴진다. 워낙 구속이 빠른 데다 움직임이 많은 이 공에 정교한 일본 타자들의 방망이가 수없이 헛돌았다. 특히 일본에 진출한 뒤엔 원래 투구 폼인 사이드암 뿐 아니라 드문드문 오버스로나 스리쿼터로 공을 던져 타자들이 공의 궤적을 따라잡기 어렵게 만들었다.
‘뱀직구’뿐 아니라 슬라이더, 포크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임창용은 올 시즌 새구종으로 ‘너클커브’를 집어넣었다. 일반 커브보다 낙차가 훨씬 큰 너클커브는 손가락 하나를 세워서 걸어 던진다. 자신이 구사하는 볼이 모두 빠른 볼이어서 상대 타자들이 타이밍을 잡기 쉽다고 생각해 시도한 변화다. 임창용은 “너클커브를 결정구로 사용하기보다는 정말 필요할 때 상대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하는 유인구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창용은 사이드암 투수답지 않은 빠른 직구로 타자를 일축하는 스타일의 투수다. 오버스로 투수보다도 더 빠르고 묵직한 공을 구사하는 만큼 투구폼을 기본으로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동시에 포수 미트에 공이 꽂히는 순간 묵직한 파찰음으로 타자에게 더 큰 위력을 발산한다.
실망스런 성적, 일본에서 만회
임창용이 160km에 육박하는 공을 던질 수 있었던 이유로 팔꿈치 수술이라는 설이 있다. 그는 삼성 시절의 혹투로 2005년 10월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흔히 ‘토미존 서저리(Tommy John Surgery)’라 불리는 이 수술로 2006년 단 한 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다. 한때 바닥까지 추락했던 구속이 일본 진출 직전 해인 2007년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다. 임창용이 일본 진출을 결심하게 된 자신감의 근거 중 하나였다.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투수들은 일반적으로 재활을 잘 마쳤을 경우, 수술 전보다 구속이 빨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시즌, 그는 자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실망스런 성적을 내면서 뭔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과 동기 부여를 찾게 됐다. 고민 끝에 그는 일본 리그 진출을 시도했다. 2004년 시즌 후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과 맺었던 2년 FA 계약이 끝나는 시점인데다 삼성 구단은 그가 해외 진출을 원할 경우 조건 없이 풀어 주기로 미리 합의해 놓았었기 때문에 일본 진출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007년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가 끝나자마자 그는 일본 진출을 하고 싶다고 구단측에 말했고, 흔쾌히 동의를 받았다. 2005년부터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을 뿐더러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단 새로운 리그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더 중요했기에 “인생의 황금기는 한 번이 아니라고 들었다. 정체된 나를 깨우고 싶었다”라는 말을 남기며, 몸값이 낮더라도 상관없이 어떻게든 일본에 진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일본 프로 야구단 중 센트럴리그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그에게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2007 시즌이 끝난 뒤 야쿠르트는 에이스 투수 2명, 용병 세스 그레이싱어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좌완 이시이 가즈히사가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하면서 투수진이 크게 약화되었기에 임창용 영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임창용은 결국 야쿠르트와 2년 계약, 연봉 1500만 엔(약 1억 2400만 원)에 합의함으로써 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했다.
수술효과 일본에서 나타나
야쿠르트로 이적한 임창용은 팀의 간판 마무리 투수로서 2008년 첫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임창용은 마무리투수 이가라시 료타의 부상으로 팀의 마무리로 등판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상적인 피칭을 보여줌으로서 현재까지도 팀의 주전 마무리로 2009년에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도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팀이 진출 할 수 있었던 것에 일조했다. 팬들로부터 야쿠르트 “수호신”이라는 말과 함께 “미스터 제로”, “이무(임)타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 최초로 올스타전 팬 투표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본 진출 2년 만에 스스로 퀼리티를 높여, 실력을 인정받아 2010년에는 200% 증가한 기본 연봉 160만 달러(약 17억 원)에 재계약을 했다.
메이저리그 도전은 계속
하지만 임창용의 도전은 일본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임창용은 메이저리그 도전에 한 차례 아픔을 겪었다. 2002년 프로 7번째 시즌을 마친 임창용은 해외진출 자격을 갖추고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포스팅 시스템에 따라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지만 1개 구단만이 영입의사를 나타냈고, 해당구단도 65만 달러라는 기대 이하의 금액을 제시했다. 임창용은 미국 진출을 포기했다. 2004시즌 뒤 FA 자격을 얻은 임창용은 또 다시 메이저리그행을 노렸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삼성 잔류를 선택했다. 그의 일본행은 돈과 명분보다는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의 하나였다.
지난해 임창용의 재계약 협상 초반 가장 큰 변수는 3년째 시즌 계약의 우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이었다. 2+1년에는 양측이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3년째 되는 해에 계약 우선권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임창용은 야구인생 마지막 꿈인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 계약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3년 후면 38세가 돼 선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의 메이저리그행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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