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의 ‘코리안 듀오’ 박찬호·이승엽

올 시즌 프로야구는 일본 퍼시픽리그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의 활약에 관심이 쏠릴 듯하다. 특히 오릭스 버펄로스(이하 오릭스)에 입단한 박찬호(38·투수)와 이승엽(35·내야수)의 투타에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코리안 특급’과 설움을 딛고 명예회복을 작심한 ‘국민타자’에 대한 기대가 대단한 까닭이다.
오릭스는 퍼시픽리그 6개 구단 중 2009년 꼴찌, 지난해에는 5위에 그친 중하위권 팀이다. 하지만 리그 홈런왕 T-오카다(23·외야수)와 다승왕 가네코 치히로(28·투수)가 있는 팀이기도 하다. 그런 오릭스가 순위상승을 위해 메이저리그 아시아 최다승(124승) 경력을 갖고 있는 박찬호와 단일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56개)을 보유한 이승엽 등 한국의 두 베테랑을 선택했다. 오릭스는 한국 투톱 선수 영입으로 비인기 구단에서 인기 구단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와신상담’ 이승엽이 친정팀 요미우리를 상대로 3점타를 터트렸다. 이승엽은 지난 2월 22일 스프링캠프지 오키나와 오노야마구장에서 열린 오릭스-요미우리의 시범경기에서 요미우리의 주전투수 도노의 시속140km 직구를 받아쳐 우측담장을 넘기는 3점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이승엽은 이에 그치지 않고 9회 좌익선상에 큼지막하게 떨어지는 2루타를 날리며 4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 맹활약을 펼쳤다. 일본의 주요 스포츠지는‘거포의 부활’을 대서특필했다.
주전선수로 출장기회 보장
지난해까지 5년간 몸담았던 요미우리는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승엽에게 방출을 통보했다. 한때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2007년을 끝으로 매년 하향 곡선을 그렸기 때문. 손가락 부상 후유증으로 타격감각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부상을 딛고 일어섰지만 좀처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그를 하라 요미우리 감독은 좀처럼 신뢰하지 못했다. 타격면에서도 부진한 성적을 보여 지난해에는 시즌 대부분을 2군에서 보내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팀을 물색하던 그는 결국 오릭스와 계약해 일본 프로야구리그에 잔류, 재기를 선언했다.
이승엽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출장기회다. 자신을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구단이 이승엽에게 필요했다. 한 야구관계자는 “이승엽이 요미우리 2군에 머물렀던 이유는 타격에 특별한 결점이 있어서만은 아니다”라며 “최고 명문구단이라는 압박감과 두터운 선수층으로 1군 경기에서 뛸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점이 부진의 이유였다”라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오릭스와는 궁합이 맞았다. 이승엽에게 충분한 출장기회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릭스는 1루수와 지명타자로 활약한 알렉스 카브레라가 소프트뱅크로 이적하자 그 자리를 이승엽으로 대체했다. 구단으로서는 장타력을 지닌 중심타자인 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카브레라의 빈자리는 지난해 퍼시픽리그 홈런왕(33개)을 거머쥔 T-오카다가 맡게 된다. 이승엽은 6번 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승엽이 정규리그 때 시범경기처럼만 친다면 코토 미츠타키-T-오카다-이승엽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이 구축되겠지만 세 선수 모두 좌타자다. 작년 후반기 맹타를 보여준 내야수 아롬 발디리스가 5번 타순을 맡아 지난해만큼만 활약을 해주고 이승엽이 6번째 선발로 출전한다면 오릭스로서는 효율적인 타선이 구축 되는 것이다.
바뀐 타격으로 전성기 회귀 기대
이승엽은 올 시즌 의미 있는 도전을 한다. 전 경기 출장, 30홈런 100타점을 목표는 물론 전대미문의 한일통산 500홈런 2000안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지에서는 벌써부터 ‘올해는 달성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그러기 위해서 타격폼과 배트를 바꿨다. 이승엽은 “홈런보다는 정확성에 비중을 두고 훈련 중이다”라며 “순발력이 떨어져 스윙스피드 향상도 신경쓴다”고 밝혔다. 홈런을 생각해 크게 친다는 의지가 보이면 폼이 무너진다. 완벽한 자세로 배트 중심에 공을 정확이 맞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 쇼다 고죠 타격코치는 “승짱(이승엽의 일본 내 애칭)은 힘과 기술 모두 톱클래스이다. 홈런을 의식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고 설명했다.
배트도 가벼운 것으로 바꿨다. 손잡이 부분이 얇지만 헤드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배트의 원심력을 극대화하겠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 그립이 얇고 가벼운 배트는 전성기 시절 사용하던 것이다. 전성기 때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오릭스는 이승엽이 2004년 일본에 진출한 이후 지바 롯데, 요미우리에 이어 세 번째로 몸 담는 팀이다.
겸손하고 솔선수범한 선배
박찬호는 오랜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일본 무대에 도전했다.
박찬호가 일본행을 선택한 것은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 그는 “야구인으로서 공부라는 측면으로 볼 때 일본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오릭스를 선택한 이유로는 “이승엽과 같은 팀에서 뛸 수 있는 것과 선발 보직이 오릭스행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박찬호는 동료 투수들에게 메이저리그에서 경험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한다. 그는 어린 투수들에게 자신의 투구 방법을 아낌없이 가르쳐준다. 기시다 마모루(30·투수)는 “(박찬호에게서) 투심패스트볼을 배웠다. 실전에서 사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찬호도 관심있는 투수 옆에 서서 투구폼을 관찰하기도 한다. 포크볼이나 너클커브를 배우기 위해 나이 어린 일본 투수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도 한다.
오카다 아키노부 오릭스 감독은 “대선배의 솔선수범한 모습에 젊은 선수들이 팀워크를 알게 됐다”고 감동을 표시했다.
엄격한 일본의 보크판정
그러나 박찬호의 행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다름 아닌 ‘보크’ 판정이다.
박찬호는 지난 달 두 차례 치러진 홍백전에서 심판으로부터 보크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5일 경기에서는 한 타자를 상대로 두 번의 보크를 연속 범했다. 세트포지션에서 1초 이상 멈춰야 하는데 바로 투구를 했다는 지적이었다. 세트포지션을 취하는 투수가 두 손을 모으는 동작을 할 때 완전히 정지한 뒤 투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정지하지 않고 연속 동작에 가깝게 바로 투구 동작에 들어가면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뺏기 위해 속이는 동작으로 간주해 보크를 선언한다.
정규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현재, 박찬호의 최대 과제는 메이저리그 생활 17년 동안 굳어진 투구 습관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후쿠마 오사무 투수코치와 함께 비책을 수립했다. 세트포지션에서 정지하는 시간을 좀 더 오래 갖기 위해 속으로 숫자를 ‘하나 둘’ 세고 투구를 하는 것. 투구 폼을 교정하지 않고 최대한 리듬을 살려 원하는 볼을 던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한 야구관계자는 “일본에서는 보크에 대한 심판의 판정이 메이저리그보다 더 엄격하다”며 “빨리 일본 심판의 성향에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류 투타 인기에 쾌재 부르는 구단
한편 두 선수를 영입한 오릭스는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트려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구단 수익뿐만 아니라 모그룹의 홍보나 마케팅에도 엄청난 효과가 눈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구매한 홈경기 중계권료와 광고 스폰서 비용으로 이미 박찬호의 1년 연봉인 220만 달러(약25억 원)를 벌었다.
SBS스포츠에 판매한 시즌 홈 72경기 중계권료는 1억 엔(약 13억 원)이며, 타 국내 방송사들이 원정 경기 중계권을 사기위해 경쟁중이다. 광고 스폰서로 포탈업체인 NHN과도 1억 엔에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엽의 2년 연봉 1억5000만 엔(약 20억 원)을 회수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
여기에 금융 그룹인 오릭스가 푸른2저축은행을 인수해 한국의 제2금융권에 진출하면서 짧은 시간 내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오릭스가 홈으로 하는 오사카는 재일교포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한국 최고 투·타의 영입으로 벌써부터 정규시즌 입장권 구입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한글 번역판 홈페이지도 구축해 한국 팬들의 확보에 나서고 있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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