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하게 잘하는 놈, 원래 잘하는 놈, 의외로 못하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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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리 기자
  • 입력 2010-11-30 10:45
  • 승인 2010.11.30 10:45
  • 호수 866
  • 5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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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죽어도 우리를 못 따라 오는 이유
우리가 죽어도 중국을 못 따라 가는 이유
지난 11월 22일 중국 광저우 광다체육관에서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플라뢰 결승에서 대한민국 여자 펜싱대표팀이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 금메달을 획득해 시상대에서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제24회 광저우아시안게임이 지난 주말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목표 금메달 70개를 훌쩍 넘으며 종합 2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던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4회 연속 종합 2위인 우리나라를 따라잡아 2위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번 대회에 임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각축을 벌이리라고 여겼던 종합 2위 쟁탈전은 대회 초반 한국의 선전으로 일찌감치 한국 측 승리로 결판이 나버렸다. 너무 부진했던 일본은 초반부터 2위를 넘볼 수조차 없었다. 이제 아시안 게임은 1위 중국, 2위 한국, 3위 일본이 부동의 순서로 자리매김하는 듯이 보인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중국의 힘은 어디서 나오며 일본의 몰락은 무슨 이유일까. 한국의 저력은 무엇일까. 아시안게임에 임하는 3국의 태도와 전략을 분석해본다.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3관왕 박태환 선수 뒤에는 SK텔레콤 스포츠단(이하 SK)이 있었다. SK는 박태환이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저조한 실력을 보였을 때 유일하게 그를 믿고 재기를 도왔다. 회복 불가능이라는 온갖 추측과 비난의 말이 나돌았지만 SK는 주저하지 않고 약속한 대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박태환이 다시 정상에 설 때까지 후원 중단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2위 한국, 대기업 재정적 지원 한몫

이번 대회에서 희망을 찾은 종목 펜싱은 아시안게임 사상 최다인 금메달 7개,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를 따내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총 12개의 금메달 중 절반 이상을 따냈다.

펜싱대표팀의 선전 뒤에는 든든한 후원이 한몫했다. SK는 2003년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은 이후 비인기종목 펜싱을 전폭 지원했다. 올해는 7억 원이 넘는 재정적 지원을 해 매년 2~3개의 국제대회만 나섰던 펜싱대표팀이 아시안게임 직전까지 8개 대회를 치르며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았다.

사격도 2002년부터 단체장을 맡고 있는 한화그룹의 전폭적 지원 덕에 국제대회 경험과 치열한 내부경쟁이 가능했다. 사격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지난해부터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급성장했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3개를 목에 걸며 사격 강국인 중국을 위협하는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철저한 전력 분석과 베테랑ㆍ신예의 ‘신구 조화’를 바탕으로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골고루 메달을 거둬들여 2년 뒤인 런던올림픽의 메달에 더욱 힘을 보태고 있다.

한국 양궁이 최강의 지위를 지킨 것은 현대자동차그룹의 대를 이은 지원과 스포츠과학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양궁계의 전향적 자세,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1985년 양궁 협회장을 맡아 1997년까지 4차례 연임했고 이후 아들인 정의선 그룹 부회장에게 회장직을 대물림했다. 정 회장은 지난 25년간 200여억 원을 협회에 지원해 ‘양궁 한국’의 초석을 다졌다. 물심양면의 지원 아래 양궁선수들은 타 종목보다 먼저 체육과학연구원과 손잡고 스포츠과학을 접목시켰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는 대표선발전을 통과한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야구장과 경륜장에서의 연습경기, 최전방 철책선 근무 등으로 극한의 상황을 이겨내는 정신력을 배양했다.


쏠쏠한 연금·포상금과 병역면제

우리나라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개당 10점을 책정, 20점부터 연금 30만원이 지급된다. 안타깝게도 1개를 따면 연금은 없다. 2개부터 30만원 연금이 지급된다. 은메달은 2점 동메달은 1점으로, 메달 점수의 총 합이 110점이 넘으면 최대 100만원을 지원한다. 110점이 넘는 추가분은 일시장려금으로 10점당 150만원을 추가 지급한다.

올림픽 연금은 아시안게임보다 규모가 크다. 금메달은 90점, 은메달 30점, 동메달 20점으로 나뉘며 금메달에 한해 1개당 100만 원이 지급된다. 총 합이 110점을 초과하면 금메달 10점당 500만 원, 은·동메달 150만 원을 받는다.

포상금은 각 종목의 협회에서 담당해 금액은 각기 다르다. 야구대표팀은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지원하는 포상금 2억 원과 소집 훈련 중 지급한 격려금 1억 8천만 원을 더해 총 3억 8천만 원을 기여도에 따라 차등 지급받는다.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전 선수를 대상으로 세계신기록 포상금으로 1만 달러(약 1100만 원)를 내걸었다. 행운의 주인공은 양궁대표팀의 막내 김우진. 김우진은 남자부 예선에서 4개 거리 개인 싱글 합계 1387점을 기록,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금메달 획득 시 주어지는 병역 면제 혜택은 특히 젊은 시절 운동을 해야 하는 남자 선수들에게 커다란 유혹이다.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2년간의 공백기 없이 남들보다 2년을 더 뛸 수 있는 점은 돈과 명예로 직결된다. 금메달을 수확한 선수들은 이제 병역에 대한 부담 없이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한국 남자 선수들이 열심히 대회를 치르는 가장 큰 이유는 병역혜택이라고 할 수 있다.


1위 중국, 스포츠 통해 경제성장 동력 창출

한편 베이징올림픽에서 미국을 제치며 종합 1위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중국이 이제는 아시안게임의 역사를 새로 쓰려고 하고 있다.

중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비결은 장기비전의 제시와 철저한 준비가 밑거름이 된 것으로 스포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폐막 후 올림픽 전체 금메달의 3분의 1인 119개가 집중된 육상과 수영 등을 공략하기 위해 ‘119공정(工程)’을 수립했다. 중국은 이미 이때부터 이들 종목에 대한 집중적인 공략 없이는 스포츠 강국의 길은 요원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수영팀의 경우 상시 감독제를 도입했고, 육상에서는 우수선수에 집중투자하며 해외 정상급 훈련전문가를 초빙해 분야별 강연회를 개최했다. 중국은 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경제성장을 동력을 창출했다. 현실적으로 금메달이 불가능해 보였던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국민과 국가의 자부심을 고양하고 단결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는 경제발전에도 시너지 효과로 작용해 경제외적인 부분에서도 세계정상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


최우수 선수에겐 초특급 대우와 포상금

중국 정부가 지원해 주는 상금 또한 로또 급이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110m 허들의 리우샹 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성과보상금으로 중국 정부에서 약 500만 위안(약 7억5000천만 원)을 받았다. 명관량·양원진 조정대표선수팀은 200만 위안, 2인 다이빙의 텐량과 양징후이는 각각 200만 위안과 250만 위안을 지원받았다. 역도의 탕궁홍은 200만 위안, 장궈쩡은 250만 위안을 받았으며 다이빙 2관왕 얼짱 궈징징 선수는 250만 위안을 지급 받았다.

이는 공식지원금으로 비공식, 스폰서십, 광고출연료 등을 포함하면 수천만 위안의 보상금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림픽 관련, 중국에서 “신체는 혁명의 밑천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운동으로 부와 재력을 동시에 거머쥐게 됐다.

또 중국 정부는 지속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각종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참가시켜 실전을 체험하게 했다. 이 경험을 통해 중국 선수들은 체력이 중요한 육상 등의 종목에서 동양인도 미국과 유럽선수를 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보했다.

체조처럼 큰 고통이 따르는 스포츠는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시설에서 4살 때부터 집중조련을 받는다. 4살부터 10살까지의 어린 체조선수들은 이런 시설에서 합숙하며 레슨비에 걱정없이 금메달을 위한 담금질에 들어간다.


3위 일본, 런던 목표로 말 바꾸기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추월해 종합 2위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일본은 이제 2012년 런던올림픽에 전념한다는 방침이다. 이치하라 노리유키 일본선수단장은 “광저우는 런던올림픽 이전에 열리는 마지막 메이저 종합대회로 런던올림픽을 대비해 훌륭한 실전 훈련이 됐다”고 말했다.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이치하라 단장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금메달 60개 이상을 획득해 한국을 추월하고 종합 2위를 탈환 하겠다”고 명예회복을 선언한 바 있었다. 그러나 전략 종목이었던 수영에서 중국에 밀리고, 14개 금메달이 걸려있던 유도는 일본이 메달 7개를 획득했지만, 한국도 메달 6개를 가져가 그 입지마저 적어져 종합 3위로 굳어졌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일본선수단을 위해 무려 25억 엔(한화 약 337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 2위 성적을 낸 한국선수단의 총 예산 28억 원의 12배나 되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성적이 저조한데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말이 많다.


저조한 성적에 팬·언론 외면

우선은 계속되는 부진한 선수들의 성적이 일본 홈팬들의 등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인기가 식으며 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 선수들이 하나 둘 현장을 떠나갔다.

강세를 보였던 남자 육상 100m에서는 단 한 명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해 고개를 숙인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아무래도 일본에서 아시안게임에 대한 관심은 점점 하락세인듯하다. 기존 대회에서 200여명의 취재진과 스태프를 파견했던 공영방송 NHK는 올해 그 규모를 66명으로 줄였다. 한국에서 수많은 경기를 생중계로 방영하는 것에 비해 일본에서는 지상파 방송국 6개중 NHK와 TBS 2사가 이번 대회를 담당했다. 그러나 생중계는 없다. 심야에 2~3시간 정도를 할여해 하이라이트를 방송할 뿐이다. 유일하게 NHK-BS1(위성방송)이 저녁에 몇 경기를 녹화 또는 생중계를 하는 정도다. 유명선수가 메달을 획득 했을 땐 뉴스에서 짧게 소개될 뿐이다.

사회인 팀 선수로 구성된 일본 야구 대표팀의 준결승전과 3,4위 결정전은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광저우에 가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보면서 실시하는 '오프 튜브' 방식으로 중계를 했다.

일본이 아시안게임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역시 동기부여가 결여됐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금메달을 따도 병역면제라는 큰 혜택이 없다. 또 아시아대회보다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더 중요시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수영, 유도, 배구, 육상, 탁구 등의 세계선수권대회가 시청률을 올리는 콘텐츠로서 인기가 높다. 각 지상파 방송국이 독점 중계경쟁을 하고 있을 정도다. 오히려 일본 미디어는 내년 대구에서 열릴 육상 세계선수권대회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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