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만 메달인가요?

광저우아시안게임이 막바지 메달 경쟁을 벌이고 있다.
놀라울만한 기록을 내며 예상외의 ‘메달밭’으로 두각을 나타낸 사격과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그리고 동메달 2개를 목에 건 수영의 박태환 선수. 이러한 선수들의 선전으로 일본의 추격을 일찌감치 따돌리며 우리나라는 당초 목표한 것처럼 종합 2위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펼치는 대회다. 따라서 수많은 나라가 참가한 아시안 게임에서 1위가 되는 것도 대단하지만, 2위, 3위가 된다는 것도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조국의 명예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대표로서 경기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경기를 하다 보면 1등이 나오는 것처럼 꼴등도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도 조국을 위해 열심히 한 것만은 사실이다.
풍년을 이룬 금메달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들을 살펴 본다.
조정-무명 설움 벗고 은·동메달
지난 18일 광저우 국제조정센터에서 열린 조정 무타포어 결선.
이은혜(24), 라혜미(19), 김아름(24), 김가영(23·이상 부산항만공사) 등 4명이 출전한 한국대표팀은 6분56초90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지나쳐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제대회에서 늘 한국을 앞섰던 카자흐스탄을 3초가량 따돌린 기록이다. 장현철 조정대표팀 감독은 “바람세기와 방향에 따라 그날그날 기록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6분대에 들어온 것은 꽤 드문 일”이라며 예상외의 메달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금메달은 6분51초56의 중국이 차지했다.
무타포어는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경기로 개인이 아닌 팀 단위로 대표팀 선수를 뽑는다. 여자대표팀에 선발된 부산항만공사팀은 국제대회 성적이 초라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었을 정도다. 하지만 지난 6월부터 이번 대회를 위해 합숙에 들어가면서 기록을 끌어올렸다. 팀의 막내 라혜미는 “합숙훈련을 하면서 언니들과 마음이 잘 맞았다.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면서 몇 달 동안 친자매들처럼 호흡을 맞췄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조정 대표팀은 이것을 신호로 동메달 3개를 더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여자 더블스컬에 나간 임은주(19·군산시청)-고영은(23·수원시체육회)은 결선에서 7분20초07로 중국(7분05초68), 베트남(7분17초15)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다.
남자 더블스컬 김동용(20·대구대)-김휘관(20·한국체대)도 6분34초43으로 동메달을 보탰고, 여자 경량급 더블스컬에 출전한 김명신(26·포항시청)-김솔지(21·한국체대) 역시 7분22초51을 기록해 3위를 차지했다. 중국(7분13초02)이 금메달, 일본(7분18초13)이 은메달을 가져갔다.
더블스컬(Double Sculls)은 두 명이 각 2개의 노를 젓는 경주다. 한명이 하는 경주는 싱글스컬이라고 한다. 무타포어는 타수(Cox·키잡이)가 없는 4인승 경기로서 선수 당 한 개의 노를 잡고 4명이 한조가 되어 진행하는 경기이다. 타수가 있는 종목은 ‘유타’라고 부른다.
우슈-얼짱 이정희의 활약으로 4개의 메달
수영과 당구에만 얼짱이 있는 게 아니다. 우슈에도 ‘얼짱’이 있다. 하이킥의 달인 이정희(20·서울 정무관)다. 그녀는 처음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단숨에 따냈다.
얼굴만 봐선 우슈 산타(散打·실전대련) 부문의 강자인 걸 믿기 어렵지만 이정희는 우슈보다 더 험악한 종합격투기 선수출신이다. 중3때 살을 빼보자는 생각으로 격투기 도장의 문을 두드린 것이 인연이 됐다. 그런데 피와 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격투기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정희는 고교 시절까지 무에타이와 킥복싱을 연마한 고수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그녀가 2006년 정통파 무술 우슈를 배우면서 금방 국가대표가 됐다.
묘한 각도로 꺾이는 하이킥을 특기로 갖게 된 것도 격투기 훈련 배경과 관련이 있다. 그녀를 중학생 때부터 가르친 전증남 정무관장은 “여자에겐 거의 볼 수 없는 큰 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내심 메달을 기대했다”고 속내를 들어냈다.
산타 52kg급에 출전한 이정희는 지난 16일 준결승에서 중국의 이메이디에에게 판정패를 당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16강전에서 시원한 하이킥으로 KO 한 방에 승리를 거뒀고 8강전에서도 에티 이슬람(방글라데시)에 판정승했다.
이정희는 “우슈를 시작할 때부터 아시안 게임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꿈의 절반을 이뤘을 뿐”이라고 했다. 우슈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면 세계 정상에 도전하겠다는 뜻이었다.
한국 우슈는 총 4개의 메달을 건졌다. 남자 투로 곤술에서 이종찬(26·경상남도체육회)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 산타 60kg급에서 김준열(27·영주시청)이 은메달을, 65kg급에서 현창호(22·수원시체육회)가 동메달을 땄다.
한국 우슈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태극권 전능의 양성찬이 우승한 뒤로 지금까지 금메달이 없다.
중국 전통무술인 우슈는 6세기 달마 선사가 인도에서 도입한 무술을 계승·발전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투로는 연기 종목으로 10점 만점에서 실수나 불완전 요소를 감점하는 방식으로 채점해 순위를 가른다. 종목은 장권, 도술·곤술(남자), 검술·창술(여자), 남권, 태극권 등이다. 산타는 펀치와 킥으로 상대를 가격하는 격투기로 무에타이와 비슷하지만 상대편을 업어치거나 걸어 넘어뜨려서 득점할 수도 있다.
댄스 스포츠, 철인3종 등- 벌써 귀국 다음 대회 준비
댄스스포츠와 철인3종경기 선수들은 광저우에서 벌써 한국으로 귀국했다. 경기 일정이 주말 이틀(13일~14일) 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여유 있게 관중의 입장에서 나머지 아시안게임을 즐기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다음 대회가 2주에서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10개 종목에서 금메달 없이 은메달 7개와 동메달 3개를 사냥한 댄스스포츠 대표팀은 15일 한국에 들어왔다. 선수들은 2주 후 회장배 대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일정이 빠듯하다.
댄스스포츠에서 라틴 5개 종목과 스탠더드 5개 종목에 모두 출전했던 한국은 중국의 벽에 막혀 ‘노 골드’에 그쳤지만 전 종목에서 메달을 땄다. 은메달 3개와 동메달 4개를 차지한 일본을 제치고 종합 2위를 차지한 것에 만족을 했다.
한국 댄스스포츠의 간판 남상웅·송이나 콤비는 스탠더드 탱고 결선에서 37.21점을 기록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42.00점을 기록한 중국의 선홍·랑유제 조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이어 펼쳐진 슬로 폭스트롯에서도 39.36점을 기록하는 좋은 연기를 펼쳤지만 41.64점을 받은 중국의 우츠안·레이잉 조에 밀려 은메달에 만족해야만 했다.
라틴 삼바ㆍ파소도블레에 출전한 장세진·이해인, 차차차ㆍ자이브에 참가한 김도현·박수묘 커플도 각각 은메달 2개씩을 땄다.
또 조상효·이세희 콤비는 스탠더드 5종목 은메달, 왈츠 동메달, 김대동·유혜숙 듀오는 라틴 5종목 동메달, 이상민·김해인 커플은 스탠더드 퀵스텝 동메달을 챙겼다.
장윤정(22·경북체육회)이 여자부 경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값진 동메달을 수확한 트라이애슬론 대표팀도 이미 귀국했다. 이들 역시 다음 달 중순 오만에서 열릴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한다.
카누선수들로 팀 만든 드래곤보트
겨우 한 달 동안 손발을 맞추고 출전한 드래곤보트는 경기 첫날인 지난 18일 남자 1000m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한국대표팀은 3분37초254의 기록으로 인도네시아(3분32초016)와 미얀마(3분34초542)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예선 1조에서는 한국이 3분35초646을 기록해 3분38초358의 미얀마에 앞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미얀마에 뒤져 아깝게 3위로 결승점에 도착했다.
드래곤보트 대표팀 24명(후보 2명 포함)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전국 각지의 카누 선수들을 모집해 부랴부랴 짠 선발팀이다. 뒤늦게 모인 탓에 지난달 12일이 돼서야 경남 김해 카누경기장에서 첫 훈련에 들어간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가하지도 못한채 한 달간 속성 강화훈련을 마치고 14일 광저우로 향했다.
용처럼 생겼다고 해서 용선(龍船)이라 불리는 드래곤보트는 길이 11.6m, 너비 1.12m의 배 위에서 22명이 올라타 벌이는 단체 레이싱 스포츠로 이번 대회에 처음 도입됐다. 20명은 노를 쥐고 스피드를 올리는 데 주력하고, 나머지 2명은 각각 북 치며 흥을 돋우면서 키를 잡아 방향을 조율한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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