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김성근, 노장은 죽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SK와이번스가 2010년 한국시리즈의 우승을 차지했다. 4연승으로 상대팀 삼성라이온스는 반격할 기회도 없이 패배했다. 야구팬들은 ‘재미없었다’, ‘김성근식 야구를 했다’며 시기 섞인 비난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2006년 취임 후 SK는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지난해(리그2위, 한국시리즈 준우승)를 빼놓고 정규리그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무적의 SK’를 이끌고 있다. 이제 야구팬들과 관계자들은 김성근 감독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무적의 팀을 이끌어가는 무적의 감독 김성근에 대해 알아본다.
김성근 감독의 좌우명은‘일구이무(一球二無·한번 던진 공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다. 두 번 살지 못하는 인생, 혼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뜻이다.
김응룡 감독은 “김성근 감독에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모두 읽혀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며 “그는 진정 야구의 신이다”라고 말해 ‘야신’이 된 김성근 감독. 그는 치밀한 데이터와 고도의 심리전으로 ‘타짜’로도 통한다.
한·일에서의 현역시절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냈던 김성근 감독은 중1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시절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에 뽑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부산 동아대, 교통부, 기업은행을 거치며 한국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1962년 20살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뽑혀 좌완 에이스로 활약,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963년에는 노히트노런, 1964년에는 시즌 20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9경기 연속 완투를 하는 등 무리한 등판으로 인해 혹사한 어깨를 다친 후 결국 1965년 투수생활을 접고 야수로 전업했다. 그러나 타자로써의 생활도 그리 길지 못했다. 여전히 남아있던 어깨 부상의 여파로 공을 던지기 힘든 상황에 이르러 1968년 선수 생활을 접었다.
지도자의 길
김성근 감독은 은퇴한 후 바로 마산상고, 기업은행, 충암고, 신일고에서 감독직을 맡았다. 충암고 감독시절 조범현(현 기아타이거즈 감독)과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된다.
1982년 OB 베어스의 창단 투수 코치였던 김성근은 1984년부터 1988년까지 2대 OB 베어스 감독을 시작으로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등 무려 5개 팀 감독을 맡았다. 만년 하위권이었던 태평양(1989년, 3위)과 쌍방울(1996년~1997년, 2위-3위)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으며, 2002년 침체에 빠져 있었던 LG의 사령탑을 맡아 팀을 한국 시리즈에 올려놓고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나 구단 고위층과의 갈등을 빚으면서 석연치 않게 퇴진했다. 당시 LG 트윈스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른바 ‘신바람 야구’를 슬로건으로 내건 자율 야구를 지향하는 팀이었으나 김성근 감독이 추구하는 이른바 '데이터 야구'가 팀 컬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성근 감독은 태평양, 쌍방울, LG 등에서 하위 팀을 상위로 끌어 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나, ‘비주류’감독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한국 시리즈 우승은 2007년 SK에 와서야 이루었다.
피도 눈물도 없다고?
일부 사람들은 김성근 감독을 두고 ‘벌떼 야구’, ‘관리 야구’, ‘지옥훈련’ 등으로 재미없음을 표현하며 재일교포인 그를 비하해 전형적인 일본식 야구를 한다는 혹평을 하기도 한다.
김성근 감독은 간혹 세이브 상황이 아님에도 구원투수를 내보내는 무리수를 둔다. ‘전체적 통찰’을 하는 김 감독은 역전의 흐름을 감지하고 팀을 위해 구원투수의 희생을 요구한다.
김성근 감독은 말한다. “(SK 야구가) 재미없다고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짜증난다”며 “경기는 결국 승리다. 감독 입장에서는 무조건 이겨놓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기고 있을 때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그것에 맞춰 미리 준비하는 감독이다.
하지만, 김성근 야구의 특장점은 선수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2군 선수든, 1군 선수든 같은 조건의 기회를 줘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능력이다.
야구계의 진정한 스승
김성근 감독은 2003년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어려운 처지를 겪다 보니 야구 못하는 선수에게 더 눈길이 가게 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적어도 한 가지 재능은 타고난다고 본다. 프로팀에 들어올 정도라면 뭔가 장점이 있을 것이다. 정 안될 선수라도 끝까지 보살펴주면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야구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게 된다. 야구 감독은 좋은 선수를 뽑고 키운 다음에 적절히 배치해 우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등이 꼭 최선은 아닌거다”라고 말했다.
타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도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화려한 부활을 했다.
LG의 최대 스타였지만 부상재발용 각서를 요구하며 버림받았던 김재현과 두산에서 40대라는 이유로 나이든 퇴물로 은퇴를 종용 받았던 안경현의 실력을 믿고 SK로 불려 들인 유일한 감독이다. 만년 기대주로 두산과 기아에서 SK로 트레이드 된 전병두를 선발급 투수로 만들어 준 이도 김성근 감독이다. 두산에 입단했지만 탄탄한 내야진들이 버티고 있어 빛을 받지 못한 나주환도 김성근 감독이 받아줘 이젠 국가대표급 최고 유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현재 지도자로 활동하는 코치나 감독들 중 김경문, 조범현, 박종훈 등 여러 지도자들이 현역 선수 시절에 그의 손을 거쳐 갔다. 특히 박종훈의 아들인 박윤은 SK 소속이어서 아버지를 이어 2대째 김성근 감독의 손을 거쳐 가게 되었다.
공평성으로 존중받다
김성근 감독은 타 구장에서 경기를 치러야 할 때 선수들과 같은 차를 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로 움직이는 시간에 경기에 출전할 선수 오더를 짜는데 선수들과 같이 있으면 선수들이 불편해 할 수 있고 오더를 짤 때 주위에 있는 선수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공평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철저하게 외골수 기질도 가지고 있다.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휘어지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 조금만 융통성을 발휘하면 외로움을 달고 살거나 욕을 덜 먹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김성근의 인생도 9회말 2아웃에 빛을 바라고 있다. 야구팬들의 비난의 대상에서 이젠 그를 이해하고 존경하며 그의 야구 철학을 알게 된 것. 2011년을 끝으로 SK 감독직이 만료된다. 70세가 가까운 노장이 감독직을 더 연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야구팬들은 그가 좀 더 프로야구에 남아 한 단계 상승된 한국 야구에 이바지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김성근 감독 어록
김성근 감독은 그가 하는 어록으로도 유명하다.
-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야구가 바뀐다.
- 도전하는 사람에게 시행착오가 있다. 시행착오가 많을수록 성공한다.
- 분한 마음을 품어라. 왜 안 되는지, 왜 못하는지, 억울해하고 연구를 하라.
- 세상은 주고받는 관계지만 받을 것은 생각하지 마라.
- 쑥쑥 크는 대나무는 곁가지가 없다. 키가 크지 않는 나무는 곁가지가 많다. 야구에만 전념하라.
- 인생은 내 것이지 남의 것이 아니다. 오늘 일을 오늘 끝내라. 내일로 미뤄두면 진다.
- 하루를 살더라도 목표의식을 갖고 부딪혀라.
- 뒤로 넘기지 말고 그날 고민은 그날 해결하라.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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