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을 위한 구단인가, 돈을 위한 구단인가

수천억 원대의 수익을 올리는 세계적인 프로스포츠 클럽들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클럽은 아직 수익성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취약하다. 자생력을 가지고 구단을 운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그나마 모기업의 도움 없이 적자가 생기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 프로구단들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 프로스포츠 시장의 명문 구단처럼 야구를 통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확립해 성공하겠다며 이장석(42·센터니얼 인베스트먼트 대표)씨가 2008년 히어로즈야구단주식회사를 창립하자 야구계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히어로즈는 어떻게 됐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장석 히어로즈야구 구단주의 구단경영에 대해 살펴 봤다.
이장석 대표는 프랑스 유럽경영대학원(INSEAD)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전문 투자가로 기업금융자문을 맡으며 투자 전문가로 명성을 높인 인물이다. 그런 이 대표가 한국야구 환경에서도 흑자경영을 해보겠다며 자금난에 빠진 현대 유니콘스를 해체하고 히어로즈야구단주식회사를 재창단했을 때만 해도 세간의 관심이 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적표는 실망적이다.
히어로즈 국내 유일 구단운영
현재 넥센 히어로즈를 제외한 모든 타 구단은 각 재계 그룹에서 운영한다.
이와 반대로 넥센 히어로즈는 센터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자문 회사가 운영한다. 구단의 본 이름은 ‘히어로즈’다. ‘넥센’은 네이밍라이츠(Naming Rights)로 메인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넥센타이어의 이름을 붙였다.
2년제 계약이므로 계약만료는 2011년이다. 연장 재계약에 대해서 언급이 없으니 만약 2011년이 끝난 후 재계약을 하지 않을시 또 다른 메인스폰서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재정을 지원해 주는 모회사가 없어 선진프로스포츠 구단처럼 네이밍라이츠, 메인·서브 스폰서십 등 수익성이 될 수 있는 다각도의 수입창출에 열을 올려야한다.
스폰서 광고 없으면 적자
타 구단은 모기업에서 구단 운영비의 60%를 지원해 준다. 나머지 40%가 구단이 직접 벌어들이는 금액이다. 한국야구위원회에서 받는 방송중계권료와 구장 입장 수입, 그리고 상품판매비가 40%다. 보통 한 구단이 운영비로 쓰는 금액은 150억 원에서 200억 원 사이다. 자생 구단인 히어로즈는 스폰서광고가 주 수입금이다. 히어로즈와 넥센타이어와의 계약액은 양측 합의로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1년에 50~60억 원 이상이라는 설이다.
금감원 공시자료(DART)를 통해 2009년 히어로즈의 재무제표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구단 운영비로 160억 원이 들어갔다. 보유현금 90억 원, 자본금 10억 원을 제하면 2009년 한 해 동안 70억 원의 손해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현재 상태로도 내년까지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야 하며 그 방법은 유망 선수 2~3명을 더 파는 것 이외에는 없다.
이장석, 팬을 외면한 구단주
지난해 일어났던 ‘히어로즈 트레이드 파동’은 히어로즈가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주전 선수들을 타 구단에 팔아 돈을 만들었던 사건이다. 히어로즈는 스폰서 문제 이후 자금난에 시달렸다. 2008년 시즌부터 우리담배가 메인스폰서를 맡았지만 여러 문제로 계약을 해지했다. 올 시즌 초반에 넥센타이어가 가까스로 메인스폰서를 맡아 팀명을 넥센 히어로즈로 변경했지만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장석 구단주는 창단 첫 해부터 현금을 기본으로 하는 대형 트레이드를 여러차례 시도했다. 2010년 시즌까지 장원삼, 이택근, 이현승을 삼성, LG, 두산에 현금 트레이드 시켰고, 넥센 타이어가 스폰서를 맡은 이후에도 마일영을 한화에, 황재균을 롯데에 트레이드했다. 이 트레이드로 받은 현금은 장원삼 20억, 이현승 10억, 이택근 25억, 마일영 3억 원을 포함 총 58억 원에 이른다.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 “히어로즈 야구단의 미래다”라고 표현되던 선수가 내야 수비의 핵심인 황재균이었다. 그러나 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히어로즈 프런트는 자신들이 한 약속을 깨고 황재균을 롯데로 보냈다. 황재균은 전력 보강용 트레이드로 2명의 롯데 선수와 맞바꾼 것이라고 했지만 현금 트레이드의 의혹은 팬들 사이에 일었다.
이장석, 한국의 빌리 빈 되지 못해
[머니볼]이라는 책이 있다. <머니볼>은 빌리 빈이 단장을 맡았던 가난한 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반란과 성공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최악의 팀이었다. 선수단 연봉총액 최하위로 가장 가난한 구단이었다. 모 구단이 연상되지 않은가?
[머니볼]은 저평가된 선수를 고르고 고평가된 선수를 비싸게 팔아넘기는 전술을 가르친다. 머리를 잘 써서 고가치 선수를 팔아넘기고 젊고 싼 선수를 사들이려 하는 것은 스포츠구단의 수익창출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히어로즈는 역으로 간다는 지적이 많다. 누가 봐도 좋은 선수를 거침없이 현금에 떨이로 팔아넘기는 이장석 구단주의 원동력과 뚝심은 마치 실패의 교본을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는 혹평도 나온다.
히어로즈 구단이 어렵다는 사실은 야구팬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팬들의 사랑 없이 구단이 존재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창단 초기에 선수 판매로 연명하지 않겠다던 구단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팬들의 사랑도 조금식 식어가고 있다고 히어로즈의 팬들은 아쉬워 한다.
못하면 방출, 잘하면 판매
히어로즈는 지난 10월 8일 투수 조용준, 신철인, 최경환과 내야수 김종문, 외야수 김한상을 자유계약선수로 공시했다.
조용준은 2002년 신인왕과 2004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특급 마무리다. 2005년 어깨 수술을 받은 뒤 2007년, 2008년 임의탈퇴선수로 재활 훈련을 하다 2009년 히어로즈에 합류했으나 재기하지 못하고 끝내 방출됐다.
날카로운 구위를 선보이며 구원왕에 오른 ‘넥센의 수호신’ 손승락은 LG나 롯데에 트레이드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투수난에 허덕이는 LG와 불펜투수가 턱없이 부족한 롯데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손승락을 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올 겨울 스토브리그에서 두 구단간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이에 히어로즈 팬들 사이에서는 “몇 명의 선수들이 트레이드 되는 거냐”며 “트레이드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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