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한국人”이다

지난해 한국프로농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취지로 시작했던 귀화 혼혈선수 드래프트 선발이 2년을 맞았다. 국내 농구코트 위에서 뛰는 귀화 혼혈선수의 실태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논란에 대해 알아본다.
한국 프로농구의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그 중심에 선 것이 귀화 혼혈선수들이다.
지난해 한국농구연맹(KBL)은 프로농구의 흥행을 유도하는 한편 외국인 용병 선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두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는 한 팀당 데리고 있는 2명의 용병 선수를 한 쿼터에 모두 기용할 수 없게 했다. 많아 봐야 한명의 외국인 선수가 코트를 누비는 것이다. 지금까지 프로 농구는 외국 용병들의 잔치였다. 2명의 용병 선수가 모든 게임에 출전해 뛰다 보면 상대적으로 국내 선수들은 보이지도 않게 돼 버린다.
두 번째 대책은 귀화 혼혈선수 드래프트 제도 시행이었다. 지난해부터 시행한 이 제도는 이미 외국인 용병 자격으로 국내 농구 코트를 뛰고 있는 혼혈 출신 선수들에게 국내 선수 자격을 허용했다.
용병선수로서 국내 팀에 몸담고 있는 아르헨티나 혼혈 김민수(28·SK나이츠), 미국 혼혈 이동준(30·대우오리온스)등이 이 조치의 혜택으로 국내 선수 자격을 땄다.
지난해와 올해 국내 프로 농구 코트에서 뛰고 있는 혼혈선수는 전태풍(30·전주 KCC), 이승준(32·서울 삼성), 문태영(창원 LG), 문태종(35·인천 전자랜드)로 모두 4명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이승준
대한농구협회와 KBL이 공동으로 만든 국가대표팀 협의회는 지난 9월 6일 강남구 논현동 KBL센터에서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13명의 대표 선수를 선정했다.
가장 관심이 쏠린 귀화 혼혈 선수는 이승준이었다. 결국 그는 국가대표로 선출됐다.
국제대회가 규정한 귀화 선수는 국가대표팀당 1명씩만 기용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해 귀화한 이승준과 전태풍의 경쟁이 치열했지만 마지막 손은 이승준에게 돌아갔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이승준은 이동준(30·대우 오리온스)의 친형이다. 동생 이동준이 먼저 2006년 귀화해 2007년 신인지명 전체 2순위로 오리온스에 입단했다. 이승준은 3년 전 ‘용병 에릭 산드린’이란 이름으로 울산 모비스에서 뛴 경험이 있다.
이승준은 국적 취득 절차가 늦어 지난 해 아시아선수권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첫 국제무대다.
코트위에 태풍이 몰아친다
이번에 국가 대표로는 선발되지 못했지만 전태풍도 눈길이 가는 선수다. 지난해 귀화 혼혈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KCC 유니폼을 입은 전태풍은 전주 KCC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주전 포인트가드다.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러내 올 시즌 연봉 체결에서 팀내 최고 연봉 인상률을 기록했다. 프로 2년차에 돌입하는 전태풍은 종전 연봉 1억 원에서 1억5000천만 원이 인상된 2억5000만 원에 계약했다. 150%의 인상률이다.
전태풍은 17세 이하 미국 청소년대표 출신이다. 조지아 공대를 졸업한 후 폴란드와 크로아티아 리그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전태풍은 지난해 7월 귀화 시험을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귀화했다”며 “대표팀으로 뛰는 것이 제일 큰 꿈이다”고 말했다.
코트를 누비는 형제, 문태종-문태영
올해 귀화 혼혈선수 드래프트 1순위이자 유일하게 선발된 선수가 문태종이다. 총 7명의 귀화 혼혈선수가 드래프트에 참석했지만 문태종 외에는 KBL 입성에 실패했다.
인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은 문태종은 지난해 돌풍을 일으킨 문태영(32·창원 LG)의 친형이다.
유럽 무대를 주름잡았던 화려한 경력 덕분에 드래프트 이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미국 리치먼드 대학을 졸업 후 프랑스·이스라엘·이탈리아·러시아·터키·스페인·그리스·세르비아 등 유럽 나라에서 프로선수로 활약했다. 2006년에는 국제농구연맹(FIBA) 유로컵 올스타로 뽑히기도 했다. 더욱이 인정받는 슈터여서 이번 시즌 전자랜드 팬들의 기대가 큰 선수다.
동생인 문태영은 자난해 귀화혼혈 드래프트에서 이승준과 전태풍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던 선수였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정확한 슛으로 경기당 기본 20점을 올리며 득점왕에 올라 LG의 간판스타로 거듭났다. 긴팔을 이용한 리바운드는 평균 9.49개(3위)로 리그를 지배했다.
지난해 문태영을 앞세운 LG는 4위에 오른 바 있어 형과 동생의 맞대결이 올 시즌 최대 관심사다.
동-서간 문화차이 극복 못해
지난해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선수는 총 5명이다. 이승준·전태풍·문태영과 달리 팀에 융화되지 못한 원하준(안양 KT&G)와 박태양(부산 KT)은 쓸쓸히 한국무대를 떠나 향후 5년간 국내 무대에서 뛸 수 없게 됐다.
드래프트에서 4, 5위로 지명돼 듀얼 가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들이었지만 기대치에 비해 초라한 시즌 성적에 팬들의 실망이 컸다.
하지만 농구보다는 한국문화 적응에 실패한 것이 더 큰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혼혈이지만 미국에서 자라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두 선수 모두 구단 합숙훈련과 행사에 불참해 각 구단은 계약 파기 결정을 내렸다. KBL은 “상벌 규정(구단 귀책사유에 대한 제재 및 제재금 15조 1항 계약서상의 의무사항 위반행위)에 의거, 3년 계약기간을 채우지도 않아 선수 계약을 파기하는 동시에 5년간 선수자격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귀화혼혈선수들의 마인드부터 ‘한국인’이 되어야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승준이나 전태풍처럼 귀화 작업을 완료한 선수들에 대해서만 국내 선수 자격증을 줘야한다는 주장이 계속된다.
국내선수 역차별 논란우려
그러나 귀화 혼혈선수들의 등장으로 국내 선수들의 입지가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하승진, 양희종 등 걸출한 신인들이 쏟아졌던 최근 몇 년간에 비해 지난해 신인들은 귀화혼혈선수들의 활약에 스포트라이트를 대부분 빼앗겼다. 신인 드래프트 지명률 또한 역대 최저인 17명에 그쳐 대학연맹과 KBL간의 파행까지 일어나며 시끄러웠다.
갈등의 골이 깊었던 지난해 드래프트에 비해 올해 드래프트는 대학연명과 KBL의 화합의 장이었다. 40명의 신인 선수들 중 21명이 최종 1,2라운드에서 지명됐다. 2군으로 뽑힌 12명을 포함 총 33명의 프로입성이 확정됐다.
어설픈 가능성만 믿고 검증되지 않은 귀화 혼혈선수를 뽑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국내선수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가 KBL과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올라오기 때문이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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