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 민간인 사찰 파문 확산
총리실 민간인 사찰 파문 확산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0-07-06 09:21
  • 승인 2010.07.06 09:21
  • 호수 845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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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 모임 ‘영포회’ 배후설

국무총리실이 잇따른 악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 국회 본회의 부결과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 직후 정운찬 국무총리는 사실상 사임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총리실이 MB정부를 비판한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총리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쑥대밭이다. 사건과 관련된 의혹이 증폭되면서 야당의 공격도 거세지고 있다. 고위공직자 모임인 ‘영포회’가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사찰을 주도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이인규 실장도 ‘영포회’ 멤버로 알려졌다.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의혹을 따라가봤다.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김모씨는 지난 2008년 자신의 블로그에 동영상을 게재했다. 당시 김씨는 한 시중은행 용역업체 대표로 있었다.

김씨가 게재한 동영상에는 ‘지금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라는 제목으로 촛불집회 영상과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 내용 등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김씨가 이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퍼올 때만 해도 이미 200만 명에 달하는 네티즌이 이 동영상을 조회했다.

김씨의 블로그는 같은 해 5월에 개설돼 하루 방문자가 20명 안팎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그해 9월부터 11월까지 자체 내사를 벌인 끝에 서울 동작경찰서에 ‘제보 자료 이첩’이라는 공문을 보내 수사를 의뢰했다.

총리실이 경찰에 보낸 내사 자료에는 김씨가 운영하는 용역업체에 대해 불이익을 당할수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동작경찰서는 이 사건에 대해 내사를 벌인 끝에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내사종결했다. 하지만 동작경찰서장은 담당 수사관을 교체한 뒤 재조사를 지시했다. 경찰은 서장 지시로 보완 수사 후 명예훼손 혐의로 3월초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송치했다. 검찰은 7개월 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검찰 처분에 불복한 김씨는 지난해 12월 기소유예 처분 취소를 청구하는 헌법소원 심판 청구 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무원 비위와 관한 사항에 한해 내사를 할 수 있고 민간인에 대한 사찰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민주당 의원들 의혹 제기

이 사건이 표면에 떠오른 것은 민주당 이성남, 신건 의원이 지난 6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부터다.

이들은 이날 회의에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김씨를 내사하고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서류 등을 갖고 왔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 처럼 초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어떤 곳일까.

촛불정국이 끝난 직후인 2008년 7월 신설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지난해 3월 직제 개편 전까지 총리실 사무차장의 지휘감독을 받았다.

직제 개편 이후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총리실장 직속으로 조정됐다. 하지만 총리실조차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무슨 활동을 벌이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일반인에 공개된 정보도 제한적이다.

가령 총리실 홈페이지만 들어가봐도 타 부서와 달리 공직윤리지원관실은 편제가 비공개로 돼 있다. 그만큼 폐쇄적인 조직이란 얘기다.

신설 당시부터 현 정부의 사정라인을 관장했던 인수위 출신 인사가 책임자로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이 국무총리실장 등 상부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조직은 국무총리실장, 사무차장 등 공식적인 보고라인을 거치지 않고 독립적인 활동을 벌이며 일부 권력 실세들과 비공식 보고라인을 형성하고 있을 개연성도 있다. 이번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이다.

총리실은 사건이 불거지자 이 지원관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총리실에 따르면 이 지원관은 현재 고혈압 등 지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그동안 정상업무를 해오다 사건이 불거지자 돌연 입원한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정치권은 이 지원관의 총리실 입성이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추천 때문이며, ‘포항 인맥’에 의한 발탁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에 청와대와 연계가 돼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건의 청와대 연관설과 함께 부각되는 조직이 있다. 청와대와 정부측 고위공직자 모임인 ‘영포회’다.

영포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영일·포항 출신의 5급이상 공무원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 지원관과 그를 추천한 이 비서관도 영포회 소속이다.


민간인 사찰 배후는 누구?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영포회를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7월 1일 영포회와 관련해 “정부 부처내에 영포회라는 일종의 지역적 네트워크가 있는데 과연 이런 부분들을 가지고 제대로 공직윤리를 잡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인규 지원관을 대기발령했다고 하지만 그 선에서 그칠 게 아니라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공직윤리지원관이 민간인을 내사하게 됐는지 속속들이 밝혀야 된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신장시키려는 노력이 현 정부에서는 다소 소홀하게 비춰진 것이 사실”이라며 “미네르바를 구속한다든지 김제동씨를 도중하차 시킨다든지,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부르게 한다든지, 작은 권력을 가지고 역사와 민주주의의 큰 발전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흠집내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고 말했다.

전병헌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5공의 망령이 백주에 활보하고 있는 끔찍한 일이다. 한마디로 국가기강을 문란하게 한 사건이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사건”이라고 공격했다.

전 의장도 이날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 가진 인터뷰에서 “민간인 한 분에 대한 사찰의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우리가 여러 가지 부패 사건에다가 게이트라는 말을 붙였는데 이것이야말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능가하는 전형적인 게이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영포회는 지난 2008년 송년 모임에서 일부 참석자들이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죽 내려온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가운데 김 씨가 2008년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올린 것에 대해 불법조사를 벌였다는 MBC ‘PD수첩’의 추가 폭로까지 나와 파문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

총리실의 명확한 해명이 없는 상태에서 의문점은 늘어나고 있다.

일단 닉네임으로 운영되는 개인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을 인지한 사실과 운영자의 신원을 파악한 경위는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동영상 인지 경위의 경우 포털에서 관련 키워드로 검색을 한 뒤 동영상을 찾았을 가능성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블로그 운영자에 대한 신원을 파악했다는 것은 포털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거나 포털로부터 비공식 루트로 개인 정보를 넘겨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내사 과정에서 유관기관과의 협조를 통해 개인정보를 넘겨받았다 하더라도 영장 발부 여부 등 법적 절차를 명확히 따질 필요성이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씨의 회사는 물론 거래처 은행 부행장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찰 범위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되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지난 정권의 핵심 이광재 당시 민주당 의원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폭넓게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 전 의원과 고향이 같다는 것 외엔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인물이다.

김씨가 사찰 대상의 극히 일부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씨 외에 수많은 인사들이 사찰 대상에 포함됐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치권은 여야를 넘어 총리실의 이 같은 초법적 행태에 대한 의혹을 밝혀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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