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군단 넘어 ‘축구의 神’ 상투 잡아라”

선택은 끝났다. 남은 건 완벽한 필승 시나리오의 실현뿐이다.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목표로 세운 태극전사들이 ‘역사적 도전’ 앞에 섰다. 지난 1일 월드컵 본선무대에 오를 최종 엔트리 23명을 확정한 허정무(55) 축구대표팀 감독은 포백수비를 기본으로 본선에서 맞붙을 3국의 공격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각오다. 특히 대한민국의 ‘필살비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철저한 공략법이 필수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맞수들의 강점을 격파하고 치명적인 단점을 노려 파고들어야 한다. 전력분석 등 치열한 정보전이 중요한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 상대국의 약점과 놓쳐서는 안 될 키 플레이어들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으로 본 한국의 전력은 확실히 본선 맞수들에 비해 한 수 아래다. 무엇보다 한국은 B조에 속한 4개 팀 가운데 랭킹 47위로 아르헨티나(7위), 그리스(13위), 나이지리아(21위)에 비해 가장 낮다. 대한민국이 B조 ‘1승 제물’로 찍힐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다.
허정무 감독이 그리는 최선의 시나리오는 1승1무1패로 16강에 진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르헨티나가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를 큰 득실차로 이기고 한국이 그리스를 꺾은 뒤 나이지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 승부수를 띄우는 전략이다.
그리스, ‘둔하고 느린’ 장신 군단
그리스의 최대 강점이자 최대 약점은 바로 ‘큰 키’다. 그리스가 ‘골든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며 유로2004 우승컵을 들어 올렸을 당시 그들은 ‘질식수비’라는 한 마디로 통했다. 세 명의 수비수를 두툼하게 쌓고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속도전이 주효했다.
그리스는 공격적인 포백 수비진영을 구사하기도 한다. 남아공 월드컵 유럽 예선과 지난달 26일 북한과 친선경기에서도 포백을 가동했다. 본선 첫 경기인 한국전에서도 포백 수비를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앙수비수 모라스가 196㎝, 키르기아코스가 193㎝의 장신이라는 점이 눈에 띤다. 북한전에서 교체해 들어간 아브람 파파도풀로스는 186㎝, 빈트라는 184㎝, 주전 오른쪽 풀백인 게오르기오스 세이타리디스도 185㎝로 키가 크다.
압도적인 신장차를 앞세운 수비진의 제공권 장악은 가공할만하다. 공격에서도 이들은 위협적이었다. 특히 역습과 세트플레이에 탁월한 그리스는 장신 수비수들의 체격까지 더해 위력을 더한다.
그러나 이들은 민첩성과 속도가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북한과의 평가전에서 정대세, 홍영조, 문인국 등 발 빠른 공격수들에게 쉽게 득점 기회를 내준 것이 그 반증이다. 북한이 짧고 빠른 패스 연결로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자 그리스의 장신수비벽은 허술하게 무너졌다.
이 경기에서 두 골을 넣은 ‘인민 루니’ 정대세 역시 “그리스 수비들이 느리다. 이청용과 박지성 등 빠른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면 한국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그리스의 장신 수비벽을 흔드는 것과 함께 ‘주포’를 봉쇄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월드컵 유럽예선 과정에서 그리스가 기록한 21골 가운데 무려 10골을 몰아 넣은 테오파니스 게카스(30·프랑크푸르트)는 요주의 대상 1호다.
그리스 명문 파나시나이코스 소속이던 2005~2006 시즌 17골을 터트려 득점왕에 올랐던 게카스는 독일 분데스리가로 둥지를 옮긴 2006-2007 시즌 20골을 넣으면서 또 한 번 득점 1위에 등극했다. 돌파력과 골 마무리가 뛰어난 탓에 중앙 미드필더부터 강하게 압박해 침투를 차단하고, 볼이 연결되지 않도록 사전에 패스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르헨, 감독이 유일한 약점
역대 월드컵에서 두 차례(1978년, 1986년)나 정상을 밟았고, 올해 남아공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호화로운 멤버로 꾸려졌다. 리오넬 메시와 곤살로 이과인, 카를로스 테베스, 디에고 밀리토, 세르히오 아게로 등 유럽 빅리그를 호령하는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모두 조국에 안겼다.
B조 최강인 아르헨티나지만 역설적이게도 감독이 유일한 ‘약점’으로 꼽힌다. ‘축구의 신’으로 불리지만 마라도나 감독의 들쭉날쭉한 팀 운영 능력은 뛰어난 선수가 뛰어난 명장은 아니라는 진리를 일깨웠다.
아르헨티나는 남아공 월드컵 남미예선에서 탈락할 위기까지 처했다가 겨우 본선 티켓을 얻었다. 마라도나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부임 이후 100명이 넘는 선수들을 테스트 했고, 남아공 월드컵 예선 18경기를 치르는 동안 무려 50명이 팀을 들락거리며 불안한 전력을 노출했다.
마라도나 감독은 소속팀의 일등공신인 메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시달렸으며 심지어 ‘전술이 없다’는 혹평을 얻기도 했다. 마라도나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지난 3월 독일과 원정 평가전에서 1:0으로 이기며 남아공 월드컵 우승 후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나서 일부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입지는 불안하다.
엉성한 수비 조직력도 아르헨티나의 불안 요소다. 예선전 졸전을 거듭했던 포백 수비는 좌·우 풀백에 가브리엘 에인세와 니콜라스 오타멘디, 중앙수비에 월터 사무엘과 마르틴 데미첼리스가 주전 자리를 굳히면서 불안감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아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이다.
아르헨티나 공격의 핵은 두말 할 것 없이 ‘작은 거인’ 리오넬 메시(23·바르셀로나)다. 169cm의 단신이지만 이번 시즌 프리메라리가에서 정규리그 35경기에 출전해 34골-13도움의 무서운 활약을 보였다.
드리블 스피드와 안정감이 뛰어난데다 골 결정력까지 탁월한 메시는 ‘수비수 혼자는 절대 못 막는다’는 게 정설이다. 메시에게 볼이 가기 전에 순간적으로 2~3명의 선수가 에워싸듯 공간을 차단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이지리아 ‘줄 못 꿴 구슬’
그리스와 함께 대한민국의 승점 쌓기 제물이 될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전통의 강호로 선수들의 개인기가 뛰어난 것이 장점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미드필더 존 오비 미켈(첼시) 등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많다. 아프리카 특유의 유연성에 유럽의 체격, 남미의 개인기까지 갖춰 상대하기 여간 껄끄럽지 않다.
선수 개개인은 완벽한 나이지리아, 그러나 팀은 엉망이다. 특히 대표팀 사령탑과 축구협회 간 손발이 맞지 않아 팀은 ‘구슬 서 말’로 전락할 처지다. 올 1월 앙골라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3위에 그치자 나이지리아축구협회는 성적 부진을 이유로 세이부 아모두 감독을 경질하고, 지난 2월 스웨덴 출신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을 선임했다.
하지만 라예르베크 감독은 지난달 44명의 예비명단을 발표하면서 국외파 선수들과 영국에서 예비캠프를 차리고 상견례 자리를 갖고 싶어 했지만, 소속 구단의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라예르베크 감독은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영상으로만 보고 30명의 예비 엔트리를 뽑아야 했다.
이후 나이지리아 언론은 대표 선발 과정을 놓고 감독에 막말을 퍼붓는 지경이 됐다. 나이지리아 언론에 따르면 라예르베크 감독은 지난 26일 치러진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에서 0:0으로 비기고 나서는 팀이 보여준 경기력에 화를 내고 실망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놓고 “굉장히 힘든 일을 맡았다”며 넋두리를 했다는 말도 들린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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