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승부조작 파문 ‘비하인드 스토리’
‘스타’ 승부조작 파문 ‘비하인드 스토리’
  • 이수영 기자
  • 입력 2010-05-25 11:26
  • 승인 2010.05.25 11:26
  • 호수 839
  • 5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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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만원짜리 명품시계 찰 만 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검찰이 지난달 수사에 착수한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파문이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본좌’로 불리며 e스포츠계의 황태자로 군림했던 인기 게이머를 포함해 현직 선수 10여 명이 연루된 사건은 ‘e스포츠 종주국’ 지위마저 흔들리게 할 만큼 엄청난 악재가 됐다. 불법 도박 사이트에 조직폭력배까지 동원된 사실이 드러나자 일부 구단은 팀을 해체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제 선수가 소속된 게임단과 협회, 주관 방송사가 검찰 수사발표 전에 사태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 내사 과정에서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해당 선수를 제명하는 식의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검 첨단수사2부는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 리그에서 승부를 조작하고 불법 도박 사이트를 통해 배당금을 챙긴 혐의로 박모(25)씨 등 2명을 구소기소했다. 또 승부조작을 조장한 인기 프로게이머 마모(23)씨와 원모(23)씨 등 게이머 11명, 브로커 3명 등 16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게이머 양성학원 운영자 박모(25)씨는 조직폭력배 김모씨와 함께 지난해 9월부터 올 2월까지 인기게이머 마씨와 원씨 등을 통해 경기에 출전하는 게이머들에게 건당 200만~650만원을 주고 경기에서 고의로 지도록 사주한 혐의다.

일당은 이 같은 수법으로 11차례 승부를 조작해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9200만원을 배팅해 배당금으로 약 1억4000만원을 챙겼다. K3리그 축구선수인 정모(28)씨도 지난해 12월 마씨를 브로커로 내세워 게이머에게 300만원을 건네고 승부조작으로 1200만원의 배당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수사에서 드러난 승부조작의 수법은 불법 배팅자들이 유명 게이머를 매수해 경기에서 지도록 해서 평소보다 많은 배당금을 받아가는 식이다. 매수된 게이머는 경기 전 자신의 전술을 상대방에게 미리 알려주거나 경기 초·중반 우세한 경기를 펼치다가 갑자기 방어를 허술하게 해 패하는 방법을 썼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감독이나 소속팀 관계자가 조직적으로 범죄에 연루된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연루 게이머 9명 누구?

지상파와 주요 일간지를 통해 승부조작 사실이 일제히 보도되면서 e스포츠팬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사건에 연루된 선수들의 실명과 경기 전적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퍼지는가 하면 이와 관련된 각종 추측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된 현직 프로게이머들은 마씨와 원씨를 포함해 총 9명이다. 대부분 10대 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스타플레이어다.

한때 ‘저그 지존’ ‘본좌’ 등으로 불렸던 마씨는 브로커를 하면서 게이머에게 전달해야 할 돈 중 200만원을 가로채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평소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시계와 명품 의류를 사들이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또 원씨는 아예 자신이 출전한 경기의 승부를 조작하고 배팅까지 손을 뻗어 3500만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현직 게이머 신분으로 이번 사건을 주도한 원씨는 검찰이 내사에 착수한 지난 2월 이미 팀을 떠난 상태다. 언론에 따르면 지난 2월 원씨는 로스터(경기명단)에서 삭제됐으며 팀은 그를 은퇴 처리했다.

인기절정을 누렸던 스타플레이어 마씨는 현재 팀 내에서 방출 수순을 밟고 있다. 그러나 마씨가 “승부조작에 가담한 적이 없다”며 완강히 혐의를 부인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어 사태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마씨의 소속팀은 검찰이 마씨에 대해 불구속 기소를 결정한 만큼 관련 혐의가 사실인 것으로 파악한 상황이다. 소속팀은 이후 재판 결과에 따라 형이 확정되면 협회 차원의 징계와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스타크래프트 등 e스포츠 경기에 금품을 거는 것은 명백한 불법 도박이다.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합법적으로 발행되는 스포츠 토토 복권이나 경마, 경륜, 경정 등 특별법으로 허용된 종목에 한해서만 돈을 걸 수 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속칭 ‘놀이터’라 불리는 불법 웹사이트를 통해 스타크래프트 경기의 승부를 놓고 적게는 10만원 안팎, 많게는 수백만원씩 베팅이 이뤄진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특히 지난해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승부조작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하루 13시간 연습하고 연봉 0원”

업계에 따르면 해외 서버로 운영되는 이들 사이트는 인터넷 게임 카페 등을 통해 극소수의 회원에게만 개설 사실을 알리고 베팅을 주도한다. 특히 단속이 임박했을 경우 서버를 옮긴 뒤 회원들에게 휴대전화로 개별적으로 연락을 하는 등 ‘떴다방’ 식으로 운영돼 수사망을 벗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베팅 참가자들이 성적이 좋은 게이머에게 돈을 거는 점을 거꾸로 이용해 상대 선수에게 베팅하고 거액의 배당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불구속 입건된 인기게이머 마씨와 원씨도 이 같은 수법으로 거액의 배당금을 챙긴 혐의다.

브로커들은 또 프로게임단 연습생을 돈으로 매수한 뒤 유명 선수의 연습 동영상 파일을 불법으로 빼내기도 했다. 해당 선수의 전략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선수 생명이 짧고 박봉에 시달리는 연습생들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사실상 어렵다.

이번 사건을 주도한 게이머들은 모두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린 청년들이었다. 일반적인 사회초년병보다도 어린 프로게이머들이 검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e스포츠 관계자들은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없는 e스포츠 업계 상황과 열악한 선수 대우가 이들을 범죄로 밀어 넣은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25세만 넘어도 ‘환갑’ 취급당하는 프로게이머 세계에서 게임 실력에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큰돈을 만질 수 있는 불법 베팅은 쉽게 넘길 수 없는 유혹이란 얘기다. 그만큼 어린 선수들은 ‘착취’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불확실한 선수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e스포츠에 대기업 스폰서가 등장한 이후 생활환경은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혹독한 합숙 생활은 군대를 방불케 한다. 현직 게이머에 따르면 선수들은 오전 10시 쯤 일과를 시작해 늦은 새벽에야 하루를 마감한다. 연습시간도 상당했다. 1군은 기본적으로 매일 11시간 30분, 2군 선수들은 하루 중 13시간 30분을 게임 연습으로 보낸다.

경기도 많은 탓에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연습 일정이 빽빽하다. 휴일은 일주일 경기가 끝나면 하루 반나절 정도 주어진다.

프로게이머들을 가장 난감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입대 문제다. 입대를 이유로 팀에서 배제되는 2군 게이머는 부지기수다. 유명 게이머들은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해 자연스럽게 입대를 미룰 수 있지만 무명 선수들에게는 남 이야기다. 이들은 대부분 사이버대학에 진학해 ‘무늬만 학생’ 노릇을 하며 선수 생명을 이어간다.

한편 갓 입단한 2군들의 경우 미성년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0살이 넘은 게이머는 입단테스트도 받지 못할 정도로 프로게이머 평균 연령이 낮아진 탓이다. 이들은 입단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 ‘연봉 0원’의 연습생으로 기약 없는 합숙 생활을 견뎌야 한다.

실력을 인정받아 1군에 발탁돼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성공 이후의 달콤한 삶은 지극히 짧다. 프로게이머의 은퇴 연령이 25세 전후인 것과 게이머 이외의 경력을 사회에서 달리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파문은 e스포츠의 어두운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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