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보도 이후 한국 쇼트트랙 망친 주범 잡았다
본지보도 이후 한국 쇼트트랙 망친 주범 잡았다
  • 이수영 기자
  • 입력 2010-04-12 14:59
  • 승인 2010.04.12 14:59
  • 호수 833
  • 5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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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사유서, 전재목 코치가 불러주는 대로 썼다”
쇼트트랙 선수들이 쓴 자필 사유서(위)사진설명 : 지난 2월 캐나다 밴쿠버 킬라니 센터에서 성시백(왼쪽)과 전재목 코치(오른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쇼트트랙 스타 이정수(21ㆍ단국대)를 둘러싼 이른바 ‘불참 외압 논란’(본지 832호 보도)이 감사결과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선발전은 물론 국제대회에서까지 임원과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담합’을 벌여 승부를 조작했다는 충격적인 정황도 포착됐다. 파벌을 형성한 대표팀 코치들이 애제자를 키우기 위해 등수조작과 일부 선수의 희생을 강요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그간 루머로만 떠돌던 한국 쇼트트랙계의 ‘막장’ 비리가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고위 임원들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한국 동계스포츠의 ‘금맥’으로 성역이나 다름없었던 쇼트트랙에 일대 피바람이 불 것이란 전망도 불거지고 있다.

대한체육회(KOCㆍ회장 박용성)가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에 임원과 선수의 담합이 이뤄졌다는 결론을 내놨다. 논란의 핵심이었던 세계 대회 불출전은 코칭스태프의 강압 때문이었다는 결정적인 증언도 확보했다.


국가대표, 메달 ‘나눠먹기’

체육회는 2009/2010 쇼트트랙 국가대표선발전 및 2010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불가리아 소피아, ‘10.3.19~21) 개인전에 이정수 선수가 불출전한데 강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 체육회는 지난 8일 “감사 결과 이정수가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 출전하지 못한 배경에 전재목 코치의 강압적인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정수의 불출전 선언은 발목 부상 때문이 아니라 외압 때문이라는 안현기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전 국가대표 안현수의 부친인 안씨는 지난 3월 24일 인터넷을 통해 올린 글을 통해 논란에 불을 붙였다. 안씨는 글을 통해 “이정수가 세계선수권당시 부상이 아니었음에도, 외압에 의해 개인전에 불참했다”고 폭로했었다.

체육회는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 당시 개인코치와 소속 코치, 일부 선수들이 ‘담합’을 벌인 사실도 확인했다. 당시 이들은 “함께 국가대표로 선발돼 국제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딸 수 있도록 하자”고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쇼트트랙의 뿌리 깊은 ‘나눠먹기’ 관행이 공식 확인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국가대표선발전은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승부조작이 벌어졌을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지난달 30일 이후 ‘노코멘트’로 일관했던 이정수의 증언이 이번 감사의 결정타였다. 체육회에 따르면 발목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이정수와 김성일(20ㆍ단국대) 등은 “전재목 코치의 강압적인 지시에 따라 불러주는 대로 불출전 사유서를 작성했다”고 진술했다.


몸통 못 찾은 ‘반쪽 감사’

전 코치가 본인이 지도한 ‘애제자’ 곽윤기(21ㆍ연세대)의 메달 획득을 위해 ‘담합’을 근거로 이정수 등에게 희생을 강요했다는 얘기다. 반면 전 코치는 “선수들이 자의적으로 불출전을 결정했고, 다만 선수들이 사유서 작성 방법을 몰라 문안만 불러주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정수는 “개인전 불참 강압은 전 코치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윗선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고 맞서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 연맹 고위 관계자들도 얽혀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그러나 체육회는 이 같은 의혹을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 체육회는 “선수 측에서 주장하는 대한빙상경기연맹 고위관계자의 연루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때문에 이번 체육회 감사가 ‘반쪽짜리’라는 질타도 쏟아지고 있다.

전재목 코치 개인의 비위는 잡아냈지만 이런 관행을 조직적으로 지휘한 ‘몸통’을 놓쳤다는 얘기다. 체육회는 빙상연맹에 재조사와 형사 고발 처분 등을 요구했다.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대표 선발전 비디오 판독 및 관계자 조사를 통해 모의 여부 규명 및 관련자 처벌 ▷세계선수권대회 불출전 강압 여부 조사 및 조사 불가 시 연맹 명의로 1개월 이내 형사 고발 조치 ▷대표 선발 개선 등을 포함한 재발 방지대책 수립 ▷외부의 부당한 강압에 대해 강력 대응 등 4가지다.

한편 쇼트트랙 ‘비운의 왕자’ 안현수(25ㆍ성남시청)가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노린다. 안현수는 오는 23일부터 고양시에서 열릴 전국남녀 종합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에 출전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팬 카페에 “4주 앞으로 다가온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최선을 쏟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3관왕에 올라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스타롤 발돋움한 안현수는 2008년 부상 여파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며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놓쳤다. 때문에 이번 선발전은 안현수에게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번 국가대표 선발은 3월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렸던 2010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서 개인 종합우승을 거둔 이호석이 규정에 따라 자동 선발된 가운데 2010년과 2011년 국가대표로 활약할 4명의 선수를 뽑을 예정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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