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선수가 넘고 돈다발은 누가 채가나”

국가대표의 요람 태릉이 ‘생활고’에 찌들고 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제적 가치는 20조원. 그러나 정작 태극마크를 단 상당수 선수들과 감독·코치진은 ‘일당 3만원’의 박봉에 갇혀 당장 ‘밥줄’ 걱정을 해야 할 처지다. 최저생계비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푼돈을 받으며 선수들은 수십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와 국가 브랜드 고취라는 열매를 따왔지만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대우는 요원한 실정이다. 현재 정부에서 배정한 태릉선수촌 1년 예산은 660억 원.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새 훈련장을 짓는 ‘공사비’로 날아가고 남은 돈으로 선수단의 임금을 챙겨주기란 쉽지 않다. 굴지의 대기업 총수가 대한체육회 수장으로 앉아 있지만 매년 되풀이 되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배고픈 투쟁’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재주는 선수가 넘고 돈다발은 제3자가 쓸어가는 비정상적인 국가대표 스포츠 체계를 짚어봤다.
지난 9일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중인 국가대표 선수들은 일당 3만원과 급식비 2만6000원 등 하루 5만6000원의 훈련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세끼 준다지만…
그나마 급식비 2만6000원은 선수촌 식당에서 제공되는 끼니로 대신하기 때문에 실제 선수들의 수중에 들어오는 것은 일당 3만원이 전부다. 선수촌 밖에서 훈련할 경우 숙박비로 2만원을 더 챙겨주지만 현실적으로 외부 훈련이 가능할리 만무하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이 거둔 성적을 경제적 효과로 따지면 20조원에 이르며 국가이미지는 1%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에 비하면 선수들의 일당 3만원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푼돈’인 셈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나마 지금의 훈련비도 지난 2002년을 기점으로 해서 크게 오른 것이라는 점이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직전 국가대표 하루 수당은 5000원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이후 축구대표팀에게 엄청난 성과금이 현금으로 지급되자 이를 본 태릉선수촌 지도자들이 나서 투쟁 끝에 얻은 성과라는 것이다.
당시 지도자들은 ‘아시안 게임에 보이콧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끝에 수당 인상이라는 ‘인색한 배려’를 얻을 수 있었다.
대표팀의 암울한 현실은 이 뿐만이 아니다. ‘쥐꼬리 반 토막’도 채 안 되는 훈련비는 그나마 1년 내내 지급되지도 않는다. 동계올림픽을 앞둔 지난해, 정부는 대표선수 훈련비 예산을 편성하며 연간 190일치만 책정했다. 훈련을 더 하고 싶으면 대표선수라도 사비를 털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올림픽 등 국제대회가 뜸한 해엔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
지도자 월급 반년치만 책정
열악한 상황은 선수뿐 만이 아니다. 대표선수들을 훈육하는 감독과 코칭스태프에 대한 처우 역시 암울하기 짝이 없다. 지도자 가운데 따로 직장이 있는 ‘투잡’인 경우 정부는 월 330만원, 전업 지도자에게는 월 38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훈련일수를 제한해 최대 8개월 까지만 월급이 나가도록 못 박아 둔 것이다. 그나마 메달권에서 밀려난 비인기종목의 경우엔 예산을 줄여 지도자들은 급여를 반년 치도 채 챙길 수 없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
그렇다면 태릉선수촌의 1년 예산과 배분은 어떻게 이뤄질까. 태릉선수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선수촌 1년 예산은 약 660억 원이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340억원은 진천훈련원 공사비로 빠져나간다.
나머지 예산에서 선수촌 운영비를 뺀 250억 원으로 동·하계 종목을 통틀어 1300명이 넘는 국가대표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1년 치 훈련비이며 임금인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일부 종목의 감독들이 소속 선수들의 목욕비와 차량 경비 등을 대기 위해 훈련비 일부를 유용했다가 횡령 혐의로 기소되는 ‘낭패’도 종종 벌어진다. 비현실적인 훈련비 내에서 발버둥치는 지도자가 되레 누명을 쓰고 죄인이 되는 셈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해 당장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는 손을 놓은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획기적인 개선책을 세워주고 싶지만 예산을 따올 곳이 없다는 얘기다.
김연아 금메달 5조 원 짜리?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선수들 수당 등 훈련 환경을 혁신적으로 개선하고, 빙상장 등 훈련시설도 제대로 지어주고 싶지만 예산을 따오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4년 마다 되풀이되는 ‘냄비근성’ ‘반짝 관심’은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멍들게 한다. 특히 스키점프,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 등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한숨은 하루 일당 3만원과 함께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편 ‘피겨퀸’ 김연아(20·고려대)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을 따내면서 5조2350억 원의 경제 효과를 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산업본부는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ㆍ마케팅센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김연아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약 5조2350억 원의 경제적 가치를 생산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공단은 김연아의 직접 수입을 비롯해 방송사와 네이밍 라이센싱 제품의 매출 등 직접 효과가 1조8201억 원이었으며 관련 기업의 주가와 매출 상승, 동계스포츠 산업 성장 효과 등 간접적인 파급 효과가 2조4868억 원이었다고 밝혔다.
또 김연아의 경기가 생중계되고 해외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등 미디어 가치를 통한 국가 이미지 홍보 효과도 9281억 원에 달했다. 공단은 “특히 ‘연아 핸드폰’, ‘연아 적금’ 등 네이밍 라이센싱 제품 매출이 전체의 34.1%인 1조7891억 원으로 나타났다”며 “김연아의 브랜드파워가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미친 것으로, 스포츠스타를 이용한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이라고 분석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