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 ‘블루 드래곤’ 이청용 활약의 비밀
심층분석 - ‘블루 드래곤’ 이청용 활약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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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02-02 14:07
  • 승인 2010.02.02 14:07
  • 호수 823
  • 5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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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은 지쳤다…이젠 청용이 대세!”

그야말로 ‘블루 드래곤(Blue Dragon·靑龍)’ 신드롬이다.

박지성, 설기현 등 걸출한 선배들의 성적을 훌쩍 뛰어넘은 이청용(22·잉글랜드 볼턴)이 한국 축구의 핵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8월 잉글랜드 무대에 뛰어든 뒤 불과 5개월 만에 5골을 작렬한 이청용의 성장세는 한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축구 전문가들은 타고난 골 결정력과 더불어 어시스트·돌파·패스 등 축구선수가 가져야할 모든 능력이 매일 성장 중이라고 평했다. 과거 학연과 지연을 간판으로 대표팀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선배들과 달리 이청용은 이런 ‘비빌 언덕’이 전혀 없다. 축구계에서는 ‘천둥벌거숭이’라는 얘기다. 이청용의 공식 학력은 중학교 중퇴. 학교 간판대신 프로입문을 선택한 소년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축구 정글에서 고수의 내공을 쌓고 있다. 프리미어리그를 뜨겁게 달군 ‘청용 신드롬’의 비밀을 파헤쳐봤다.

이청용은 전형적인 ‘축구 올인 세대’다.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학력과 기타 간판을 모두 떼어버렸다는 얘기다. 창동초등학교를 나와 도봉중학교에 입학한 이청용은 또래 선수들과는 움직임부터 남달랐다.

현 재현고 감독으로 당시 도봉중에서 이청용을 지도한 이찬행 감독은 “상대가 오는 방향을 읽고 역동작에 걸리도록 볼을 컨트롤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제자를 회상했다.

고교 진학을 코앞에 둔 중3 이청용이 프로행을 희망했을 때 이를 말리지 않은 것도 제자의 남다른 재능을 익히 안 까닭이다. 이청용의 부친 이장근(50)씨도 “축구선수가 돼 인생 승부를 보겠다”는 아들을 꺾지 못했다.

마침 2002년 히딩크 감독의 월드컵 4강 신화를 통해 학연·지연이 만연했던 국내 축구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이 같은 시류를 타고 지난 2004년 16살 이청용의 FC서울 입단은 순조롭게 성사됐다. 학교 간판이 아닌 실력 하나로 축구판에 출사표를 던진, 이른바 ‘축구 올인 세대’의 첫 대표주자가 탄생한 것이다.


“축구로 ‘절정’ 맞겠다”

입단 2년 만인 지난 2006년 1군 무대에 데뷔한 이청용은 팀 내에서도 지독한 연습벌레로 꼽혔다. 또래끼리 외출도 꺼릴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해 쉴 때도 축구공을 놓지 않을 정도였다는 것. 구단 관계자조차 “청용이는 ‘축구로 쇼부(?)를 내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 다른 젊은 선수들처럼 걱정해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세뇰 귀네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07년부터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한 이청용은 지난해 8월 잉글랜드 무대로 발을 넓혔다. 지난달 27일 번리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35분 결승골을 터트리며 팀의 1:0 승리를 견인한 이청용. 잉글랜드에서 5골 5도움을 기록한 이청용의 시즌 성적은 이미 선배 박지성과 설기현을 훌쩍 뛰어넘었다.

박지성은 2005년 맨유 데뷔 첫해에 2골 6도움을 기록했고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가운데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설기현도 레딩 시절 4골 5도움이 전부였다.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두 자리 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건 이청용이 최초다.

축구선수들에게 ‘최고의 무대’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먼 이상향일 뿐이었다. 하지만 2005년 박지성의 맨유 입단으로 꿈은 이루어졌고 이후 이영표, 설기현 등이 연달아 잉글랜드 진출에 성공하며 국내에는 프리미어리그 붐이 한창 이었다.

특히 박지성은 한국 선수로서 잉글랜드 진출길을 닦은 개척자다. 그러나 박지성이 닦은 길은 뒤를 이은 선수들이 걷기엔 좁고 험했다. 이동국, 김두현, 조원희 등이 적응 실패로 줄줄이 귀국길에 오르며 빅리그 진출은 K리그 선수들의 ‘무덤’이라는 자조까지 나왔다.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빅리그를 닮은 제3리그에서 일종의 ‘체질 개선’을 한 결과였다. 박지성은 빅리그보다 약간 수준이 낮은 다른 유럽리그로 진출한 후 그 곳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인정을 받은 뒤 빅리그에 입성했다. 이영표와 설기현도 같은 케이스다.

반면 실패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은 체질 개선 없이 곧바로 유럽 진출을 서둘렀다. 일부에서는 국내 선수들이 빅리그에 직행하는 데는 적잖은 수준차가 있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깬 것이 바로 이청용이다. K리그에서 곧바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해 매서운 실력을 뽐낸 이청용은 박지성이 겪은 체질 개선 과정이 전혀 필요 없었다.

이청용은 볼턴 이적이 확정된 뒤 K리그 출신의 빅리그 직행에 대한 편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K리그에서 빅리그로 바로 가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반대로 내가 성공한다면 나 같은 선수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들에게 희망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


허정무호 ‘특별관리선수’ 낙점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전력투구 중인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청용의 활약이 천군만마나 다름없다. 다섯 번째 골 소식이 전해지자 “공격수가 보여줘야 할 골 마무리의 전형”이라며 극찬한 허 감독은 이청용을 ‘남아공 저격수’ 선봉으로 쓰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허 감독은 지난달 27일 파주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에 참석해 이청용이 번리전에서 기록한 골 장면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다. 허 감독은 “자신이 패스를 내주고 다시 받아 골까지 만들어낸 이청용의 움직임이 무섭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허 감독은 “골을 넣을 때 어떤 것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이청용이 패스를 주고 제2 동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움직였기 때문에 패스가 들어갈 수 있었다”며 “골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떤 움직임이 들어가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공격수가 보여줘야 할 골 마무리의 전형”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허 감독은 지난달 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스페인으로 이어지는 3주 가량의 해외 전지훈련에서 극심한 골 가뭄에 골치를 썩었다. 따라서 이청용, 박주영(프랑스 AS모나코) 등 해외파 공격수들이 낭보가 반가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주영은 지난달 25일 올랭피크 리옹을 상대로 시즌 7호 골을 넣으며 절정의 골 감각을 보이고 있다.

허 감독은 오는 2월 6일~14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연맹 선수권대회까지 국내파와 J리거 위주로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이후 3월 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릴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 이청용, 박주영, 박지성 등 해외파 선수들을 총동원 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실상 3월 평가전에서 월드컵 본선 멤버가 결정됨에 따라 예비 허정무호 멤버들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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