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파 이대호, 의리파 김상현’ 거포 몸값에 야구판 후끈

프로야구계가 새 시즌을 앞두고 ‘쩐의 전쟁’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축선수들과 연달아 협상 난항을 겪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를 비롯해 최희섭(KIA), 봉준근(LG) 등 메이저리거급 거포들도 연봉협상을 놓고 구단과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다. 직장인의 ‘인사고과’나 다름없는 전 시즌 성적표를 들고 한 해 살림을 꾸려나가는 프로선수들에게 연봉은 능력이자 자존심이다. 연봉이 오르면 다행이지만 동결되거나 삭감되면 노장 선수들은 이를 ‘은퇴 종용’으로 받아들이고 젊은 선수들은 해외진출을 타진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팀에서 이탈하는 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프로야구 연봉 협상 복마전과 최근의 이슈를 집중분석했다.
줄다리기가 아닌 ‘쩐다리기’다. 연봉협상을 두고 소속 선수들과 가장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구단은 바로 롯데 자이언츠다.
롯데, 간판선수 내몰기 ‘눈살’
지난 시즌 공동 다승왕 조정훈(25)과 7000만원 인상된 1억2500만원에 재계약한 롯데는 무려 127% 인상률을 약속하며 의리를 지켰다. 지난해 5500만원의 연봉을 받았던 조정훈은 1년 만에 두 배 이상 몸값을 올리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문제는 팀 내 간판타자이자 고과 1위를 기록한 이대호(28)다. 지난 12일 세 번에 걸친 협상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한 양 측은 이대호가 팀 연습에 불참하는 초강수를 두며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몰렸다.
지난 시즌 타율 0.293, 28홈런, 100타점으로 팀 내 타자 중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롯데 구단이 자체 연봉설계도에 따라 삭감을 결정한 게 문제였다. 지난 7일 올해 첫 연봉협상에 나선 이대호는 구단의 삭감 방침에 반발, 지난 10, 11일 이틀 간 훈련에 불참했다.
지난 12일 세 번째 협상 끝에 일단 훈련에는 복귀했지만 양 측의 감정은 이미 상할 만큼 상해있는 상태다. 지난해에도 팀의 삭감방침에 반발했다 3억5000만원으로 동결된 이대호는 금년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역시 지난해 롯데 불펜의 핵으로 활약한 이정훈(33)은 아예 지난 11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연봉조정신청을 냈다. 2009시즌 57경기, 1승3패 8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 3.03을 기록한 이정훈은 연봉 8000만원을 요구했고 롯데는 6600만원을 고집해 협상이 결렬됐다.
롯데는 송승준, 김주찬, 조성환, 장원준, 강민호, 임경완 등 주력 선수들과도 줄줄이 연봉협상을 앞두고 있어 새로운 뇌관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야구 그만둘 것” 빅초이 폭탄선언
이밖에도 연봉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파열음을 낸 스타선수들이 적지 않다. 특히 최희섭은 팀 훈련 불참까지 불사한 이대호를 능가하는 강경파로 알려졌다. 지난달 14일 구단과의 첫 협상 테이블에서 3억5000만원을 제시받고 포항 특훈을 보류한 최희섭은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폭탄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열흘 만에 연봉 4억원을 제의받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초 5억원을 요구했던 최희섭은 최근 4억 5000만원으로 요구액을 낮췄지만 구단과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반면 같은 KIA 소속으로 정규리그 MVP를 차지한 김상현은 행복한 새 시즌을 준비 중이다.
지난 2007년 한화 류현진이 기록한 프로야구 역대 최다 인상률(400%)와 타이기록을 올린 김상현은 2억6000만원을 제시받았다. 일단 팀 선배 최희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계약서 사인은 미뤘지만 전지훈련 출발 날짜인 17일 전에는 무조건 도장을 찍겠다는 입장이다.
두산 김현수는 연봉협상 때마다 프로 입단 동기들과 자신의 연봉을 비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지난해의 2배인 2억5200만원을 제시받았지만 망설이는 기색이다. 바로 프로입단 동기 류현진보다 1800만원이 적기 때문이다. 김현수는 “100%는 넘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라며 절대 뒤지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비쳤다.
프로야구 연봉협상 시즌을 맞아 주목받은 인물은 또 있다. ‘불혹의 현역병’ 양준혁(삼성·42)과 이종범(KIA·41)이다.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인 두 사람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베테랑다운 실력으로 새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올해 연봉 계약을 마친 두 사람의 희비는 엇갈렸다. 프로데뷔 18년차 동기인 두 사람 가운데 양준혁은 프로입문 이후 처음으로 연봉이 대폭 삭감 됐고 이종범은 반대로 연봉 대박을 쳤다.
추운 양준혁vs등 따신 이종범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가 된 양준혁은 프로 데뷔 18년 만에 처음으로 연봉 삭감의 쓴잔을 마셨다. 지난해 타율 .329를 기록했지만 종아리 부상으로 정규리그 133경기 중 절반이 조금 넘는 82경기에만 출전해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탓이다.
구단에 계약을 백지위임한 양준혁은 지난해 7억원에서 무려 2억5000만원이 깎인 4억5000만원에 사인을 마쳤다. 1993년 데뷔 첫해 1200만원에서 시작해 줄곧 인상가도를 달렸던 그의 연봉이 마침내 꺾인 것이다.
반면 지난시즌 우승 트로피를 든 이종범은 6000만원 오른 2억6000만원에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지난해 타율 .273, 6홈런 40타점을 기록해 대단한 성적은 아니지만 팀 맏형으로 후배들을 이끌며 KIA를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올려놓은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지난 2006년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은 이종범은 KIA와 2년간 연봉 5억원에 계약한 뒤 슬럼프에 시달리며 2008년 구단으로부터 은퇴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무려 3억원이나 되는 연봉을 자진 삭감하고 절치부심의 한 해를 보낸 끝에 결실을 얻었다.
이듬해 또 다시 2억 원으로 변함없었던 이종범의 연봉은 은퇴를 각오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뛴 지난해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결국 4년 만에 다시 상승 곡선으로 돌아서며 ‘대박’을 터뜨렸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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