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출대상’ 이천수, 국내 언론이 버렸나
‘방출대상’ 이천수, 국내 언론이 버렸나
  • 이수영 기자
  • 입력 2010-01-12 13:20
  • 승인 2010.01.12 13:20
  • 호수 820
  • 5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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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밉보였기에 …” 난도질 당한 천수의 선택은?
이천수

사우디 무대에 진출한 축구선수 이천수(28·알 나스르)가 또 보따리를 쌀 위기에 처했다. 국내 언론은 지난달 30일 축구전문 매체 <골 닷컴> 보도를 인용해 이천수의 방출 가능성을 잇달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알 나스르 구단은 최근 이천수를 이적 또는 임대시킬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적이 힘들 경우 그를 방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기사가 사실이라면 지난해 원 소속팀 페예노르트와 전남 드래곤즈 사이에서 일명 ‘노예계약 자작극’ 파문을 일으켜 물의를 일으켰던 이천수는 어렵게 둥지를 튼 알 나스르에서마저 쫓겨나 ‘국제미아’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이천수와 알 나스르 모두 아직까지 공식적인 답변은 하지 않은 상태다. 그의 국내 대변인격이었던 지인들마저 언론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여러 보도를 종합해볼 때 이천수와 알 나스르가 결별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 이천수에 대한 국내 언론들의 ‘색안경’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팀 방출의 모든 책임을 선수의 부진에만 돌려 ‘이천수 파문’을 부추긴다는 얘기다. 한 구단관계자는 “얼마나 밉보였으면 (기자들이)저렇게 달려드나 싶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우디 진출 이후 현재까지 이천수는 총 769분간 출장해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숫자상으로는 분명 ‘부진한’ 기록이다. 국내 언론들 역시 이 숫자를 인용해 이천수의 부진을 꼬집었다.

그러나 국내 대다수 매체들은 중요한 사실을 놓쳤다. 바로 이천수의 공격력이 팀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까지 알 나스르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알베르토 피게로아(Victor Alberto Figueroa)로 고작 5골을 넣었을 뿐이다. 2위는 4골을 넣은 중앙공격수 모하메드 알 살라위, 그 뒤를 바로 이천수가 잇고 있다.


팀 내 득점 3위가 부진?

알 나스르는 지난해 거액의 돈 보따리를 풀어 사실상 선수단 전체를 물갈이했다. 이천수 영입도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속된 말로 ‘돈으로 발라’ 선수단을 재구성 했음에도 이기는 경기보다 ‘비기는 경기’가 많았다.

알 나스르는 지난달 30일 리그 14주차 현재 11경기 중 단 2패만을 기록, 12개 팀 가운데 3번째로 패가 적은 팀이다. 하지만 패하지 않은 9경기 중 6경기가 무승부인데다 11경기 18득점/15실점으로 14경기에서 40골을 퍼부은 리그 1위 알 힐랄(이영표 소속팀)과는 적잖은 차이가 난다.


지치지 않는 ‘향수병’ 타령

축구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알 나스르의 문제는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매 경기 1점대 실점으로 수비력은 괜찮으나 공격력이 받쳐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는 이천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속 공격수 전체가 총체적 부진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가운데 유독 이천수만 방출설이 터진 것은 선수 개인 탓이 아닌 팀 내부 사정 때문이라는 분석이 좀 더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이천수와 마찬가지로 사우디 진출 첫해를 보내고 있는 피게로아는 팀 내 득점 1위를 달리며 그나마 자리를 잡았고 90억원의 거금을 들여 영입한 1987년생 살라위는 장래성을 인정받았다. 상대적으로 이천수의 무게감이 가벼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사우디까지 이어지는 이천수의 해외진출 실패사를 언급하며 국내 언론들이 분석한 원인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현지적응 실패’다. 지난달 30일자 <스포츠 조선>은 ‘[집중분석] 갑작스런 이천수 방출 왜?’라는 제하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신문은 이천수의 방출설을 소개한 뒤 심리적 요인 가운데 현지적응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신문은 “이천수는 현재 에이전트가 없다.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체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중략) 추측해 볼 수 있는 건 심리적인 부분이다.(중략) 타국에서의 생활은 외롭고 힘들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임대됐을 때도 이천수는 구단의 허락을 얻어 한국에 휴가를 온 적이 있다.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이 세기 때문에 해외리그에서 적응하는 데 특히 힘들어했다. 사우디는 기후나 풍토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에 특히 현지 적응이 쉽지 않다. 현지 적응 실패가 이천수의 주된 부진 요인으로 추측되는 이유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천수는 사우디로 건너간 이후 축구에만 매달렸다. 주색(酒色)을 죄악시하는 엄격한 이슬람 종주국에서 달리 집중할 건수(?)가 전무한 까닭이다. 이천수 스스로도 구설수를 피해 교민사회와는 일절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덕분에 팀이 총체적인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도 중간 이상의 활약을 보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적응 실패를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천수 방출 위기 소식이 전해진 이후 국내 언론의 ‘천수 때리기’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스포츠월드>를 비롯한 국내 스포츠 전문지들은 이천수의 K리그 가능성을 일축하며 그를 막다른 길로 몰았다.


“이천수는 희생양”

지난해 파문 당시 국내 구단들의 ‘이천수 보이콧’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이들 매체들은 박항서 전남 감동과 복수의 K리그 관계자 말을 인용, 그의 국내 복귀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가운데 방출설을 처음 전한 <골 닷컴 아랍> 모하메드 아와드 편집장이 최근 이천수에 얽힌 속사정을 비교적 자세히 밝혔다. 모하메드 편집장이 확인한 방출 이유는 선수의 부진이 아니라 구단주의 유별난 성미 때문이었다. 그는 “이천수가 ‘조급증’의 희생양이 됐다”는 표현을 쓰며 알 나스르의 결정을 비판했다.

골 닷컴 보도에 따르면 알 나스르를 거쳐 간 외국인 선수들 중 성공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알 나스르의 구단주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자로 외국인 선수에 대해 엄청난 조급증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결국 이천수는 우승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감독이 경질되는 사우디 무대에서 구단의 조급증에 의해 희생됐다는 얘기다.

오만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는 하산 라비(25)는 걸프컵에서 활약하며 알 나스르에 입성했지만 지난 시즌 1골만을 기록하고 방출 당했다. 그는 당시 “알 나스르에 조직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원톱으로 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팀을 비난한 바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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