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꼴찌들의 통쾌한 반란 ‘흥행비결 = 대리만족’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과 팬을 주인공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갈매기’(감독 권상준)가 잔잔한 흥행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나는 갈매기’는 개봉 열흘 만에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프로야구와 롯데 구단을 향한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는 것. 물론 1000만 관객 작품이 줄줄이 탄생하는 마당에 10만은 ‘흥행 참패’라 할 만큼 적은 숫자다. 그러나 해당 작품이 다큐멘터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 2007년 프로축구팀 인천유나이티드를 소재로 한 ‘비상’(감독 임유철)이 ‘국내 최초 스포츠 다큐무비’를 표방, 2만5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국내 다큐멘터리 흥행 최고 기록을 깼던 것을 상기한다면 ‘나는 갈매기’의 인기는 가공할 수준이다. 최근 ‘나는 갈매기’가 프로선수들의 애환을 담아 골수팬의 심금을 울렸다면 전국 800만 관중을 동원한 ‘국가대표’는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감동 실화를 웃음과 눈물로 버무려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올 가을 다큐멘터리와 팩션(Faction·실화를 기본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오가며 진한 땀방울과 눈물이 스크린을 흠뻑 적시고 있다. 전성시대를 맞이한 스포츠영화의 세계를 집중 분석했다.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갈매기’ 중에서)
거인의 슬럼프는 길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무려 8년 동안 ‘만년 하위권’ 설움에 시달리던 롯데 자이언츠. 부산 시민에게 있어 프로야구팀 롯데는 애증의 대상이다. 팀이 승전보를 울릴 때는 물론, 연패의 늪에 빠져 있을 때도 항상 선수들 곁을 지켰던 롯데팬의 마음을 대변한 한마디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나는 갈매기’는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등장 배우는 롯데의 모든 선수와 코칭스태프, 팬들이다.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나 8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롯데의 실화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
국내 프로구단을 배경으로 다큐멘터리가 극장에 개봉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7년 프로축구팀 인천유나이티드를 소재로 한 영화 ‘비상’은 스타선수가 전무한 신생 축구팀 인천이 창단 2년 만에 리그 준우승을 거두기까지 과정을 다이내믹하게 그리며 2만5000여 관중을 끌어 모았다.
‘비상’과 ‘나는 갈매기’는 모두 ‘하위권 팀의 반란’이라는 스포츠 고유의 흥미요소를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표현했다. 이는 스포츠 경기가 주는 감동을 있는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했다는 뜻이다.
스크린서 빛난 ‘못난 것들’
최근 극장가에 스포츠영화 붐이 일기 시작했다. 올해 선두는 단연 800만 관객을 기록한 ‘국가대표’(감독 김용화)다. 이보다 앞서 개봉한 ‘킹콩을 들다’(감독 박건용) 역시 125만 관객을 모으며 성공작 반열에 올랐다. 할리우드 대작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해리포터와 혼혈왕자’와 같은 시기 개봉한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각각 스키점프와 역도를 소재로 한 두 작품의 공통점은 철저히 ‘비인기 종목’을 다뤘다는 점이다. ‘비상’과 ‘나는 갈매기’가 인기 프로스포츠를 다큐멘터리로 담아 호평을 얻었다면 이들은 비인기종목의 설움과 성공신화를 전문 배우들을 통해 극적으로 다듬었다.
지난해 430만 관객을 돌파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감독 임순례) 역시 비인기종목인 핸드볼을 소재로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스포츠영화다. ‘못난 것들’이 스포츠를 통해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관객의 관심이 쏠렸다는 얘기다.
스포츠영화엔 일종의 공식이 있다. 주인공은 대개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다. ‘국가대표’의 밥(하정우 분)은 해외입양아로 친엄마를 찾아 한국에 왔다. 강칠구(김지석 분)는 정신지체 동생과 청각장애를 가진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청년 가장이다. ‘킹콩을 들다’의 이지봉 코치(이범수 분)는 88올림픽 역도 대표 출신이지만 부상으로 은퇴한 뒤 나이트 삐끼를 전전하던 인물이다.
이렇게 ‘못난 것들’이 모여 모래알 같은 팀워크를 다지고 끊임없이 도전해 꿈을 이룬다. 이 과정에는 눈물과 웃음이 버무려진다. 결과보다 과정에 치중하는 이들 영화는 팍팍한 생활에 지친 관객들의 삶을 어루만져준다.
“동메달을 땄다고 인생까지 동메달인 것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가 가치있는 것이며 금메달 인생이다.”(‘킹콩을 들다’ 중에서)
“영화 속 하정우, 바로 나”
잘 만든 스포츠영화는 단 한 명의 스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다. 여러 명의 마이너들이 함께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감동을 주는 것이 먼저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같은 스토리 구조는 빅스타에 기대는 스타시스템 대신 여러 배우가 긴 호흡을 맞추는 제작 과정을 선호하는 충무로 분위기와도 상통한다.
올림픽 무대에 선 대한민국 스키대표 팀, 국제무대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상당한 기량을 자랑하며 메달권에 근접하자 흥분한 캐스터가 소리친다.
“스포츠에서는 약자가 잘하면 응원해 주는 게 당연하지요!”
한국 스포츠영화가 비인기종목에 주목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권투, 역도, 핸드볼 등 헝그리 종목 선수들의 도전을 통해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김용화 감독은 “관객들은 우리 사회 소시민이며 스스로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인기종목 선수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제위기와 실업난, 가족해체의 위기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들 작품이 일종의 ‘희망 지침서’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스포츠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허무맹랑하지 않으며 사실감 있는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고된 훈련과정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최근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국내 스포츠영화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지나치게 전형적인 캐릭터와 상투적인 전개는 지양해야 할 요소다. 또 스포츠 종목 자체가 갖고 있는 전문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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