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국가대표 코치 ‘의문의 죽음’ 내막
펜싱 국가대표 코치 ‘의문의 죽음’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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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9-01 16:04
  • 승인 2009.09.01 16:04
  • 호수 801
  • 5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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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메달리스트도 키워낸 주역이 ‘도대체 왜?’
펜싱 대표팀 내 구타사건을 폭로한 김승구 선수가 당시 공개한 사진.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펜싱 여자 플뢰레 은메달을 획득한 남현희를 조련한 코치가 최근 모텔 객실에서 목을 맨 시신으로 발견됐다. 지난달 22일 오전 경기도 광주 초월읍의 한 모텔에서 펜싱 국가대표 코치 김모(37)씨가 운동화 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모텔주인 이모(50)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전날 밤 10시 쯤 혼자 투숙했으며 해당 객실에 드나든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유서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시신에 외상이 없고 누군가 침입한 흔적 등도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미뤄 김 코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제는 김 코치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동기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당장 이달 말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대표팀 조련에 열성이었던 지도자의 자살 동기에 대해 경찰도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한 상태다.

더구나 ‘대표팀 코치직을 맡은 뒤 극심한 부담감에 시달렸다’는 유족 측 주장과 ‘개인적인 고민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는 대한펜싱협회(회장 손길승·이하 펜싱협회) 측의 입장이 상충하며 김 코치의 죽음은 ‘진실공방’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숨진 김 코치, 협회 내 온건파”

특히 대규모 국제대회를 목전에 두고 잇단 사건사고에 휘말린 펜싱협회는 붕괴직전의 위기에 몰려있다. 지난해 ‘폭행 스캔들’로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이석(34) 전 대표팀 코치를 조직적으로 비호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한체육회 내부에서도 크게 입지가 줄어든 펜싱협회는 이번 자살 사건으로 또 한 번 풍랑에 휩쓸릴 처지다.

지난달 22일 사망한 김 코치는 발견 당시 모텔 방 안 욕실에서 운동화 끈에 목을 맨 상태였다. 시신을 가장 처음 발견한 모텔주인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전날 밤 10시께 투숙한 그가 체크아웃 시간이 다되도록 나오지 않았다”며 “문을 두드렸는데 음악소리만 들릴 뿐 대답이 없어 들어가 보니 (김 코치가)욕실에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망 전 과음을 한 흔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타살로 볼 만한 정황이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하다. 사실상 자살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표팀 내 핵심 멤버였던 김 코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과연 뭘까. 고인의 자살 동기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고인의 유서를 찾는 한편 유족과 지인들을 상대로 동기를 확인하고 있다”며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은 힘들다”며 입을 다물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유족 측은 고인이 대표팀 조련 과정에서 적잖은 부담감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대표팀 운영을 관장하고 있는 펜싱협회 측은 이 같은 주장이 억측이라며 맞섰다.

익명을 요구한 협회 관계자는 “김 코치가 대표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못 이겨 목숨을 끊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이 인사는 “(김 코치가)지난해 베이징올림픽 때 여자 플뢰레 코치로 좋은 결과를 내 남자대표팀 담당으로 자리를 옮긴 지 1년 도 채 안됐다”며 “큰 대회를 앞두고 느끼는 부담감은 지도자라면 누구나 다 겪는 일이다. 평소 온순한 성격의 김 코치는 협회 내 평판도 좋았다”고 토로했다.


‘전원 사퇴’ 위기도 넘겼는데…

당장 펜싱협회는 이달 30일로 다가온 2009 세계펜싱선수권대회(개최지-터키 안탈리아)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대규모 세계대회를 불과 한 달 남겨두고 현직 코치가 숨지는 초유의 사태를 놓고 최대한 빨리 새로운 남자 플뢰레 코치를 선임해야 하는 까닭이다.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여자 플뢰레 코치를 맡아 남현희의 은메달 획득을 후방지원 했던 김 코치는 지난해 말 남자 플뢰레 코치로 자리를 옮겨 능력을 인정받던 차였다. 며칠 사이에 그를 대신할 유능한 코치진을 새로 선발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특히 현직 코치의 자살 사건은 신인급 선수들이 대거 합류한 대표팀 사기에 치명타가 될 것임이 자명하다. 협회와 코칭스태프들은 선수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다.

대표팀은 지난해 12월 홍콩 전지훈련 과정에서 이석 코치가 소속 선수를 구타한 일명 ‘폭행 스캔들’의 악몽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고 있다.

당시 이 코치는 인천공항에서 펜싱국가대표 김승구(27·화성시청)선수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고 말대꾸를 한다는 이유로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이 코치는 전지훈련 숙소인 홍콩 모 호텔에서도 김 선수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선수는 상처투성이가 된 자신의 얼굴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다. 양측의 고소전 끝에 이 코치는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는 한편 대한체육회로부터 무기한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아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폭행 스캔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심재성 감독을 포함한 펜싱 대표팀 코칭스태프 전원은 선수관리소홀의 책임을 지겠다며 일괄 사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표팀 지휘부 공백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협회는 이 코치를 제외한 나머지 지도자의 사표를 모두 돌려보냈다.

결과적으로 폭행시비를 둘러싼 ‘이전투구’에 협회와 대표팀 명예가 추락했음에도 당시 코치진은 자리를 지킨 셈이다. 하지만 지난 4월 지도자 자격이 정지된 이 전 코치가 모 지자체 소속 펜싱팀을 이끈 정황이 드러났고 협회가 폭행 가해자인 그를 비호하고 있다는 주장이 불거지면서 협회를 향한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여기에 현직 대표팀 코치가 모텔에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벌어지자 펜싱협회에 대한 대대적인 실사 및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선수 구타 혐의로 지난 봄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이 전 코치의 부친이 올해 협회 부회장으로 선출된 이광기 중고연맹 회장이라는 점도 개혁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폭행가해자’ 협회 부회장 아들이라 비호?

펜싱협회는 지난 6월 30일 대한체육회에 협회 명의 탄원서를 보냈다. 사실상 지도자 생명이 끊어진 이 전 코치를 선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탄원서에는 국가대표 코칭스태프,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비롯해 각급 지도자와 선수들의 서명이 담겼다.

일각에서는 탄원서 제출이 협회가 조직적으로 이 전 코치 비호에 나선 결정적인 정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협회는 구타 논란이 불거지자 자체 조사위원회가 조직했지만 ‘구타나 폭행은 없었다’는 말로 사건을 덮으려했다.

결국 당시 대표팀 소속이었던 정진선(25), 박민태(30) 등이 작성한 ‘김승구가 폭행당한 것은 사실이며 현장을 목격했다’는 내용의 자필 진술서가 언론에 공개된 뒤에야 협회와 이 전 코치는 구타 사실을 인정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더 이상 펜싱협회의 자체조사를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대한체육회는 사상 처음으로 선수보호위원회를 통해 직접 조사에 나서 이 전 코치에 대한 징계를 확정지었다. 그러나 자필 진술서를 제출한 정진선과 박민태가 올해 대표팀 선발에서 제외되자 일부 언론이 ‘보복 가능성’을 제기했고, 최근까지 협회는 여론의 뭇매에 질려버린 상태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 김 코치의 죽음은 협회 내에서 언급 자체가 금기시 되는 민감한 사항이다. 고인의 자살동기가 개인적인 것이든, 대표팀과 관련된 것이든 펜싱협회에 있어 악재가 됨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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