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왕년의 강자’ 기아 타이거즈의 귀환
프로야구 ‘왕년의 강자’ 기아 타이거즈의 귀환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8-17 13:17
  • 승인 2009.08.17 13:17
  • 호수 799
  • 5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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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호랑이’ 선두질주 가을 잔치 큰일 낼까
구톰슨(맨 왼쪽) 김상현(가운데) 이종범

올 시즌 프로야구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만년 꼴찌후보로 속칭 ‘엘롯기’(LG·롯데·KIA 등 하위권 3팀을 일컫는 속어)군단의 터줏대감이었던 KIA가 시즌 막판 선두 질주를 이루더니 가을 잔치를 넘어 한국시리즈 재패까지 넘보고 있다.

8월 12일 현재 11연승을 질주하며 올 시즌 최다연승 신기록을 세운 KIA는 급격한 상승세에 브레이크마저 고장 난 듯 보인다. 3연타석 홈런에 빛나는 김상현을 필두로 최근 팀타율이 3할에 달하는 KIA의 저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일각에서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지나치게 ‘업’된 팀 분위기가 KIA의 새로운 약점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한국시리즈 등 큰 대회를 경험한 고참 선수가 많지 않다는 점도 취약 요소로 꼽힌다.

만년 꼴찌 KIA가 2009년 ‘꼴찌들의 반란’에 성공할 수 있을까. 최근 국내 프로야구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핫이슈, KIA 타이거즈의 상승 요인을 전격 분석했다.

한마디로 미쳤다.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하는 연승행진은 그야말로 미친 상승세다.

최근 수년 동안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며 서글픈 ‘엘롯기’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KIA가 드디어 사고를 쳤다. 파죽의 11연승을 달리며 1위 굳히기를 한 것도 모자라 플레이오프, 나아가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넘보고 있는 호랑이 군단의 현재는 그야말로 ‘크레이지 모드’다.


호랑이 군단, 현재 ‘크레이지 모드’

지난달 30일 롯데와의 사직 경기에서 5:5로 맞선 9회 김상훈의 결승 투런포로 승부를 뒤집더니 지난 9일 야신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를 상대로는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이 터져나왔다. 만화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명승부의 주인공이 된 KIA 김원섭은 팀의 구세주로 최고의 밤을 보냈다.

올 시즌 최다연승 기록은 SK(4월)와 LG(5월), 롯데(7월) 등 3팀이 8연승씩을 거두며 나눠갖고 있었다. 그런데 KIA는 지난 8일 3연타석 홈런을 쏘아올린 김상현의 활약으로 순식간에 이들 기록과 타이를 이루더니 불과 하루 만에 또 1승을 추가했다. 9경기 연속 승리, 올 시즌 최다연승 기록이 만년 꼴찌 KIA의 차지가 된 것이다.

86년 삼성이 세운 역대 최다연승 기록인 16연승에는 못 미치지만 현재 KIA의 전력은 그야말로 공포스럽다.

비록 팀은 밑바닥을 헤맸지만 용케 KIA는 올 시즌 3연패 이상의 수렁에 빠진 적이 없다. 이는 구톰슨과 로페즈 등 ‘똘똘한’ 외국인 투수와 윤석민, 양현종 등 4명의 선발진이 붙박이로 버틴 까닭이다.


탄탄한 마운드가 득점포 원동력

흔들리지 않는 마운드는 타자들의 득점포 가동을 부채질하기 마련. 최근 KIA의 팀타율은 307타수 95안타로 무려 3할9리(0.309)에 이른다. 연승 행진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달 20일 KIA의 타율은 2할5푼9리(0.259)로 8개 팀 가운데 꼴찌였다. 여전히 시즌 전체 팀타율은 최하위지만 짧은 시간 동안 터진 KIA의 폭발력은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특히 팀 투수진과 타선의 객관적인 전력 업그레이드는 KIA 돌풍의 핵심이다. KIA는 지난 몇 년 동안 고질적인 선발투수 가뭄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구톰슨과 로페즈 등 외국인 투수들이 지난 10일까지 각각 11승, 10승을 일구며 상승세를 부추겼고 토종 에이스 양현종은 7승을 따내며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다. 마무리와 선발을 종횡무진 오간 윤석민도 5승3패7세이브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올스타 휴식기를 거친 뒤 불붙은 타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선수 생명의 위기에 몰린 ‘벼랑 끝 남자’ 들이 공격 선봉에 섰다. 올 초 LG에서 친정 KIA로 돌아온 김상현을 비롯해 최희섭, 이종범, 김원섭 등 한때 ‘계륵’으로 불리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타자들이 한꺼번에 살아난 것.

KIA의 타선을 이끌고 있는 일등공신은 최희섭과 김상현이다. 이들은 팀이 거둔 19개의 홈런과 68타점 중 홈런 11개와 35타점을 합작했다. 최희섭이 최근 타점을 올리지 못한 경기는 지난달 31일 삼성전 한 경기뿐이다.

최희섭과 김상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결승타에서도 6개가 홈런이었다. 기아는 구장을 크게 쓰고 있는 롯데(93개)와 두산(95개) 다음으로 홈런수(108개)가 적은 구단이면서도 유독 기회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김상현이 침묵했던 지난 5일 잠실 LG전에선 두 번의 연속타자 홈런 등 무려 5개의 홈런이 쏟아졌다. 7개의 선발승과 2개의 구원승이 보여주듯 믿음직한 마운드도 한몫했다. 김상현은 타점 1위(86개), 홈런 2위(22개)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2년 동안 극심한 침체기에 빠졌던 최희섭 역시 빅리그 진출 당시의 폼을 되찾아가고 있다.

KIA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 이종범의 역할도 눈부시다. 올 시즌 직전 은퇴 위기에 몰렸던 그는 0.277의 타율을 기록하며 팀의 분위기를 살리고 있는 것. 팀 내 최고참으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이종범의 몫이다.


마침내 빛 본 ‘조뱀’의 고집

KIA의 돌풍을 논하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조뱀’ 조범현 감독이다. 전신 해태 시절 1997년 한국시리즈를 재패한 뒤 무로 12년 동안이나 꼴찌를 전전하던 KIA가 우승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환골탈태한 원동력은 조범현 감독과 구단의 전폭적인 지지와 무한 신뢰가 큰 역할을 했다.

2007년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KIA는 대대적인 인물교체를 단행했다. 2001년 KIA 창단 멤버인 정재공 단장과 3년 동안 지휘봉을 잡았던 서정환 감독이 팀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현재의 김조호 단장과 조범현 감독이 팀 수뇌부로 임명됐다.

김 단장은 현대·기아자동차 기획실 이사 대우를 거친 엘리트이며 조 감독은 직전시즌까지 SK 사령탑을 담당한 젊은 감독이었다.

조 감독이 부임 직후 한 일은 선수단의 체질개선이었다. 해태시절부터 이어진 명문 구단의 자존심이 강한데다 상당수 고정팬을 확보한 상태였지만 성적이 곤두박질치다 보니 선수들의 의욕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것. 조 감독은 당장의 활약보다 충분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양현종, 곽정철, 손영민 등 유망주 육성에 전심을 쏟았다.

물론 조 감독의 소신에는 김 단장을 비롯한 구단의 배려도 한몫했다. 김 단장 등 구단 관계자들은 조 감독의 선수단 운영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세웠다. 사령탑의 인내와 프런트의 신뢰가 쌓인 지 2년 만에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KIA의 우승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 전력으로 본다면 한국시리즈 재패도 불가능하지 않다. 다만 현재 KIA의 팀 분위기가 지나치게 ‘업’돼 있다는 것은 경계해야할 사항이다.

정규리그 우승까지 30경기 이상 남긴 상황에서 샴페인을 터트리긴 이르다. 무엇보다 두산, SK 등 강팀과 벌일 12번의 경기가 남아있다. 이 팀을 잡느냐, 놓치느냐에 따라 KIA의 반란 성패가 갈린다. 특히 두산은 상대전적에서 밀리고 있어 KIA 입장에서는 가장 상대하기 곤란한 팀이다.

노련한 김성근 감독의 SK 역시 난공불락이다. 잡겠다고 맘먹은 팀은 반드시 잡는 사령탑이 김성근 감독이다. 더구나 SK와 두산은 지난 2년 동안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한 강호다. 선수들이 큰 대회 경험을 많이 쌓았다는 것도 KIA에게 있어 부담이다.

KIA에서 한국시리즈 경험선수는 이종범 김종국 장성호 등 3명뿐이다. 이나마도 12년 전이다. 뿐만 아니라 4강 진입을 노리는 롯데, 삼성, 히어로즈와의 경기도 부담스럽다. 7년만의 선두질주로 인해 KIA의 분위기는 최고조다.

그러나 큰 대회를 앞두고 들떠 있는 팀 상태는 결코 약이 될 수 없다.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적당한 자극을 통해 안정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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