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이천수’ 중동發 모래바람에 묻히나
‘풍운아 이천수’ 중동發 모래바람에 묻히나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6-30 15:55
  • 승인 2009.06.30 15:55
  • 호수 792
  • 5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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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계약 파문 “축구계 발 못 붙일 수 있다”
경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9 K-리그 수원삼성과 전남 드레곤즈 경기에서 징계후 첫 출전한 전남 이천수가 팀의 세번째 골을 성공시킨뒤 박항서 감독, 하석주 코치에게 축하받고 있다.

산 넘어 산. ‘풍운아 이천수’가 벼랑 끝에 몰렸다. 코칭스태프와 마찰을 빚어 수원삼성에서 임의탈퇴 당한 뒤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스승’ 박항서 감독(전남드래곤즈) 밑에 둥지를 틀었던 이천수가 이젠 ‘배신자’ 소리를 듣고 있다. 그는 이르면 이달 또 다시 짐을 꾸리게 생겼다. 지난 3월 프로축구 개막전에서 ‘주먹감자 세리머니’ 소동을 일으켜 8경기 동안 기수봉사를 하는 치욕적인 징계를 받았던 이천수는 최근 옛 기량을 되찾으며 대표팀 재승선 기회를 노렸었다. 그러나 원 소속팀인 페예노르트가 자금난을 이유로 이천수를 이적시장에 내놓으면서 그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폐예노르트는 지난 2월 전남과 수원을 상대로 한 3자 계약 내용 가운데 ‘유럽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는 6월부터 3개월 간 선수 이적과 관련된 우선협상권을 갖는다’는 옵션조항을 들며 이천수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페예노르트에서 6개월 간 이천수를 빌려온 셈인 전남은 선수를 붙잡을 명분이 없다. 한술 더 떠 계약서에는 연봉 9억 원 이상을 지불하는 팀에게 페예노르트는 언제든 이천수를 넘길 수 있다. 문제는 박항서 감독을 비롯한 전남 구단이 이 같은 옵션조항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해당 조건은 이천수가 통역관을 대동한 채 직접 페예노르트와 조율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천수는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구제해준 ‘스승’ 박항서 감독을 배신한 셈이 된다.

계약에 따르면 전남은 이천수의 임대계약을 매듭지은 지난 2월부터 6월 1일까지 이천수의 완전이적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갖고 있었다. 전남이 마음만 먹으면 이천수를 완전히 사들일 수도, 이천수에게 어울리는 국·내외 다른 팀들과 이적 협상을 벌일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천수, 어디까지 알고 있었나

그러나 전남은 석 달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다. 폐예노르트가 이천수의 몸값으로 100만 달러를 요구하자 손을 털어버린 것. 또 200만 달러 이상 가는 비싼 몸값을 지불하면서까지 이천수를 끌어갈 팀이 금방 나오겠느냐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돈이 궁한 페예노르트가 최근 이천수를 팔기 위해 ‘이적료 대폭 할인’까지 제안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결국 전남이 이천수의 소유권을 놓친 와중에 독일과 중동에서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이천수는 페예노르트가 원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보따리를 싸야할 처지다.

이번 논란에서 중요한 것은 이천수와 그의 에이전트가 계약 사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느냐는 점이다. 한 축구계 인사는 “선수의 대리인격인 에이전트가 양 팀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똑바로 했다면 이번 같은 문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구단에서 선수의 거취와 관련된 주요 사항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상식 밖이라는 게 이 인사의 설명이다. 그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분명히 계약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천수 본인이 ‘거액의 연봉을 주는 팀이 나오면 즉시 이적하겠다’는 조건을 전남 몰래 걸었다는 주장은 그의 입장을 더욱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이천수의 측근은 지난달 23일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전남 이적 당시 페예노르트와 원래 연봉보다 많은 금액을 지불하는 팀이 나오면 원 소속 구단(페예노르트)이 자유롭게 이적시킬 수 있다는 옵션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 측근은 또 “당시 계약은 이천수가 통역을 통해 페예노르트 구단과 직접 맺었다. 전남과의 임대계약을 진행했던 이천수 대리인도 몰랐던 사실이다”고 말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남 구단과 에이전트 모두 이천수에게 당한 셈이다. 전남 역시 “그런 옵션 조항은 처음 들었다. 사실이라면 계약 위반이다”고 발끈하고 있다.

또 다른 축구계 관계자는 “만일 이천수가 전남 몰래 이면계약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천수를 데려오며 박항서 감독은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다 책임지겠다’는 말로 구단을 설득시켰다. 그런 ‘스승’을 배신한 이천수가 축구계에 발을 붙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결론은 돈문제

2007년 9월 페예노르트와 4년 계약을 맺었던 이천수는 현지적응에 실패, 지난해 7월 국내 팀인 수원으로 1년 간 임대됐었다. 그러나 2군 강등 등을 이유로 코칭스태프와 노골적인 신경전을 벌인 이천수는 6개월 만에 선수 자격이 정지되는 ‘임의탈퇴’ 당하고 말았다.

‘무적(無籍)’ 신분으로 선수생명마저 끊길 위기에 놓인 이천수를 구원한 것이 2002 한일월드컵 당시 대표팀 수석코치를 지낸 전남 박항서 감독이었다. 박 감독의 도움으로 지난 2월 전남과 1년 간 임대계약을 맺은 이천수는 연말까지 전남에서 시즌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시즌 중 이적이라는 악재로 곤란한 지경에 놓인 사람은 비단 이천수 만이 아니다. 이천수를 자신의 휘하로 불러들인 박 감독 역시 구단에 적잖은 피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구단 내부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페예노르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독일 분데스리가 팀들을 상대로 이적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본 J리그 최하위 팀인 오이타도 그의 영입을 위해 뛰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이들 가운데 이천수에게 9억 원 이상의 몸값을 지불할 팀이 나올 경우 이천수는 전남을 떠나야 한다.

만약 이번 이적협상이 마무리되면 이천수는 스페인, 네덜란드에 이어 세 번째 해외이적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온갖 구설수로 얼룩진 가운데 ‘배신자’ 소리까지 듣게 돼 어느 때보다 사정은 나쁘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2006 독일월드컵 첫 경기 골을 뽑아냈던 해결사 이천수. 그러나 생애 세 번째 월드컵을 1년 남짓 앞둔 그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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