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 건국대 교수 “ ‘태권도 전사’의 마지막 승부 걸었다”
김갑수 건국대 교수 “ ‘태권도 전사’의 마지막 승부 걸었다”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4-03 10:47
  • 승인 2009.04.03 1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일본·캐나다 돌며 대한민국 국기 알리기 승부수

“태권도의 세계화라는 말은 한낱 허상에 불과합니다.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는 말 역시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가들 만의 두려움일 뿐이죠.”
한평생 태권도 전문가로 살아온 이의 말로는 파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판정시비와 시청률을 문제 삼아 태권도의 정식종목 지정 해제 논의가 이슈로 떠오른 바 있다. 상당수 체육인들이 ‘올림픽 효자종목’인 태권도를 사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고 전 국가대표 챔피언 문대성씨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발탁되며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40평생을 미국, 일본, 캐나다 등지를 돌며 직접 태권도의 세계화를 최일선에서 이끌어온 김갑수(41·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전임교수)교수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에게 있어 올림픽 금메달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초등학생들의 ‘방과후 수업’ 정도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국기’를 철저한 ‘실무형 무도’ ‘경영적 컨텐츠’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지난 3월 건국대학교 미래지식교육원 체육학부 전임교수로 임용된 김 교수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기존의 ‘태권도 권력’이 스스로 무너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국기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태권도라는 무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일부 세력들에 의해 자멸한 셈이죠. 대다수의 태권도인은 이미 국기원과 태권도협회의 행정적 무능함에 치를 떨 정도니까요.”
용인대 태권도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석사, 단국대 박사학위를 거머쥐며 승승장구한 엘리트인 김 교수는 생각과 달리 상당한 강성파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강조한 태권도의 ‘올림픽 퇴출론’ 역시 같은 맥락이다.
김 교수는 “올림픽 금메달에 온 국민이 울고 웃고 하는 애국심은 높이 사는 바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시되고 있다”고 운을 떼었다. 김 교수의 오랜 태권도 동지인 태권도 정보연구소 신성환 관장 역시 김 교수의 말을 도왔다.
신 관장은 “현재 많은 태권도인들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서의 태권도는 생명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에 공감하고 있다”며 “태권도 인들에게 있어 정작 중요한 것은 엘리트 체육으로서의 체육이 아닌 생활 체육이자 대한민국 국기로서의 태권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에서 금메달을 몇 개씩 따낼 수 있는 종목이 몇 개나 되겠느냐. 당연히 국가 위상이라는 측면에서 태권도의 입지를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어렵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만 해도 태권도는 초등학생들의 ‘방과후 활동’ 정도로 쇠락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 관장은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관장들의 하소연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그는 바로 ‘먹고 사는 문제’가 일류대 태권도학과를 졸업한 관장들을 괴롭히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 역시 이 같은 신 관장의 주장에 적극 동감을 표했다.
“20여 년 전, 아니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창 태권도 열풍이 불었었죠. 그때는 도장마다 수강생이 200명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그런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국내 도장의 운영 사정은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요즘에는 기껏해야 50~60명 정도로 수강생이 턱없이 줄어들었죠. 관장들의 가장 큰 고민이 이런 식으로 해서는 당장 4인 가족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태권도가 갖고 있는 ‘컨텐츠’가 턱없이 부실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상대와 겨뤄 승부를 가리는 ‘올림픽식 룰’이 바닥에 깔려있는 한 무도로서 태권도가 갖고 있는 기품과 가치는 한없이 깎여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교수로 임용된 첫 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교육 목표는 바로 탄탄한 컨텐츠를 보유한 ‘태권도 비즈니스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이다. 온실 속에 죽어버린 태권도 정신을 실무형 감각으로 다시 키워내겠다는 각오다.
그가 정식 교수로 임용되기 까지도 적잖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려 15번에 걸친 교수임용 절차에서 고배를 마신 그는 마지막 16번째 도전 끝에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강원도 양양의 가난한 농군 가정에서 태어나 워낙 입바른 소리를 잘한 탓에 그의 뒤를 봐줄 ‘빽’도 ‘돈’도 없는 것이 죄라면 죄였다.
그러나 해병대 사령부 출신이기도한 그는 특유의 열정적인 강의로 부임 4주 만에 최고의 인기 교수로 떠올랐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올해 신입생만 무려 500명.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이 역점사업으로 운영중인 체육학부에는 현직 경찰과 태권도 사범을 포함한 이른바 ‘실전 용사’들이 줄줄이 등록을 마친 상태다.
“정말 이상하죠. 박사과정을 마치고 아주대, 이화여대, 대림대 등을 돌며 강사 생활만 10년 가까이했는데 정작 교수임용 시험만 치면 번번이 낙방하는 겁니다. 그때 사회의 벽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을 실감했죠. 이제 가진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어야 겠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마침 건국대에서 제 연구계획을 높이 사주셨더군요. 제 인생에 마지막 기회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렵게 손에 넣은 마지막 승부수라는 생각에 김 교수의 의욕은 누구보다 충만하다. 당장 주간과 야간, 주말까지 전국에서 몰려드는 500명의 신입생들을 위해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그가 몸소 느끼고 갈고 닦았던 태권도의 매력과 경영전략 등을 풀어놓을 계획이다.
특히 일반 학부와는 달리 평생교육원 성격의 미래지식교육원에서는 김 교수의 실전형 교육이 더욱 잘 먹혀들어간다. 일반적으로 수능시험을 거쳐 선발되는 20여명 미만의 일반학부생과는 달리 배움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정식 학부 교육과 비견되는 알찬 커리큘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우리 제자들을 ‘피 흘린 전사’라고 표현합니다. 책상 앞에서 공부만 하는 일반 학부생들과는 달리 세상을 제대로 배운 실무형 인재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제게 있어 학생이 아니라 제 동생이고 직속 후배나 마찬가지죠. 그들을 위해 제가 가진 보따리를 모두 풀어 놓는 게 제 인생의 새로운 목표가 됐습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