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 원조 ‘고공 폭격기’우·성·용
직격인터뷰 원조 ‘고공 폭격기’우·성·용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3-18 16:36
  • 승인 2009.03.18 16:36
  • 호수 777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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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나의 천직’ 괴로워도 축구판 떠날 수 없었다

원조 ‘고공폭격기’ 우성용(36)이 2009년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에 주축 멤버로 입단했다는 소식에 축구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골키퍼 김병지(경남)와 함께 ‘기록의 사나이’로 군림 중인 우성용은 프로통산 115골을 기록, 경기장에서 골을 터트릴 때마다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7년 아시안컵 대회 당시 ‘대표팀 음주파문’의 주역으로 한 바탕 곤욕을 치른 그는 지난해 K리그 베스트 11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품에 안으면 비로소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K리그 최다골을 기록한 역사적인 골게터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우성용은 인터뷰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전성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힘주어 강조했다. 그가 털어놓은 음주파문의 진실과 애틋한 가족사를〈일요서울〉이 독점 공개한다.

지난 8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09 K리그 개막전에서 우성용은 교체 출전 1초 만에 옐로카드를 받는 기록(?)을 세웠다. 국내 선수 가운데 5번째 ‘50-50 클럽’(50골, 50도움) 가입을 노리는 우성용의 공격 본능이 이 같은 ‘참사’를 부른 걸까? 기자의 질문에 우성용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부심이 같은 팀 외국인 선수의 등장에 소위 ‘낚였다’는 것.

첫 경기 1초 만에 옐로카드? “그냥 웃지요”

“당시 우리 팀 용병 차디와 교체됐는데 또 다른 외국인 선수인 제이드가 공을 주우러 제 앞을 지나간 게 화근이었죠. 부심은 교체 선수가 나간 줄 알고 제게 들어가라는 사인을 줬는데 비장한 각오로 뛰어 들어간 순간, 주심이 경고 카드를 꺼내더라고요. 정작 교체될 차디가 아직 경기장을 나오지 않은 상태였던 거죠.”

소동이 있은 뒤 당황한 주심은 딱 한 마디 했단다. “아, 미안.” 그러나 그에게 내린 경고 조치는 철회되지 않았고, 우성용은 인천 데뷔 첫 경기를 옐로카드와 함께 시작하는 비극을 맞은 셈이 됐다.

올 시즌 세르비아 출신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을 새롭게 사령탑으로 영입한 인천은 우성용을 통해 또 한번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동유럽 출신 명장인 페트코비치 감독과의 궁합은 어떨까.

“아직 감독님에 대해서는 알아가는 중입니다. 동유럽 출신이시라 다혈질이 아닐까 은근히 걱정도 했는데 상당히 온화한 분이더군요. 그런데 경기장 안에서는 열심히, 정열적으로 하는 선수를 상당히 선호하는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 이기려면 저도 죽어라 뛰는 수밖에 없죠.”


20대 체력 유지 비법, “몸에 좋은 ‘그것’이죠!”

그의 나이는 축구선수로서 환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30대 중반. 그럼에도 2006년 득점왕을 거머쥔 것과 함께 현재까지 20대 후배들과의 몸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탄탄한 체력을 자랑하는 특별한 비법이 분명 있을 듯 했다.

무려 13년 동안 매해 25경기 이상을 소화해낸 그의 강철 체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는 ‘몸에 좋은 그것’으로 선후배 간 친목을 다진다고 귀띔했다.

“뭐 특별한 비법이라기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살이 잘 안찌는 체질(191cm·76kg)이다보니 몸놀림이 남들보다 가벼웠던 게 비법 같습니다. 제가 바닷가 출신(경남 고성)이라서 그런지 폐활량이 좋다는 평가도 받았고요. 보약도 물론 아내가 직접 챙겨주고 있고, 선수들끼리 ‘뭐가 몸에 좋다더라~’하면 저녁때 같이 몰려가 먹기도 합니다.”

우성용이 말한 몸에 좋은 ‘그것’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전후반 9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축구선수들만의 보양식의 전모는 결국 미스터리로 남고 만 것이다.

‘점잖은 욕심쟁이’ 우성용의 올 시즌 목표는 최다 공격 포인트에 도전하는 것. 그의 경쟁상대는 지난 2003년 은퇴한 ‘울산의 레전드(전설)’ 김현석(42) 코치다. 국내 최초 50-50클럽에 가입해 프로통산 110골, 54도움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김 코치를 뛰어넘기 위해 우성용은 조금도 지체할 수 없다.

“김현석 선배님의 기록을 깨는 게 올 시즌 제 첫 번째 목표입니다. 일단 최다골 기록은 깼기 때문에 기록제조에 대한 부담감은 없어요. 체력이 닿는 데까지 경기장에서 영원히 뛰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종 골잡이 우성용의 115개의 골 가운데 ‘불후의 역작’은 무엇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지난 2006년 그와 소속팀(성남)에 우승컵을 안긴 결승골을 꼽았다. 우성용은 당시 상대팀과 골을 넣은 시점까지 정확히 기억하며 추억을 회상했다.

“2006년 수원과의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후반 43분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헤딩골을 넣었는데 그게 그대로 결승골이 돼 기선을 잡았죠.”


“내 심장이라도 꺼내주고 싶었던 딸 소윤이”

황금 트로피를 품에 안은 그 해 우성용은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생애 최고의 날을 맞았다. 그런 우성용이 가장 먼저 기쁨을 전한 사람은 다름 아닌 딸 소윤(8)이였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했던 소윤이는 작은 몸에 무려 4번의 수술을 받았고 아빠가 최고의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순간까지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다행히 올해 초등학생이 된 소윤이는 완전히 병마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다.

“아픈 딸 때문에 오히려 더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 심장이라도 빼주고 싶은 소윤이에게 ‘최고’라는 칭찬을 듣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었으니까요. 다른 선수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독 딸이 아빠를 더 많이 좋아하고 반기는 것 같아요. 힘들게 훈련하고 집에 돌아와 예쁜 딸의 재롱 보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하지만 프로선수로 최고의 영예를 안은 그에게 최근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큰 아들 창봉(11)이가 아버지를 따라 축구선수의 꿈을 펼치고 있는 것. 학원축구의 병폐와 프로의 냉정함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고 있기에 아버지로서 우성용은 아들의 결심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하는 일만 보고 배우다 보니 처음엔 그저 취미로 공을 차던 정도였죠. 그런데 이 녀석이 언젠가부터 축구가 너무 하고 싶다는 겁니다. 솔직히 처음엔 그 말이 전혀 반갑지 않았습니다.”

현재 미림초등학교 축구부에서 활약 중인 창봉이는 최근 KBSN스포츠 ‘날아라 슛돌이’에도 출연하며 아버지의 길을 착실히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아빠, 축구라는 운동 생각보다 너무 힘들어요’라는 큰 아들의 토로에 아버지 우성용은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다.

“‘아빠가 지금까지 쉽게 축구한줄 알았냐’고 달랬지만 마음이 안 좋더군요. 지금이야 재미로 축구를 하고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저와 똑 같은 아픔을 겪을까봐 그게 고민입니다.”

그래도 그는 이제 막 초등학교 운동장을 누비는 아들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또래보다 키가 큰 창봉이가 아버지처럼 멋진 공격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고의 조언자가 되주고 싶다는 바람이다.

“아버지가 일류 선수일 경우 2세들이 축구를 하면 열에 아홉은 잘 안되더군요. 하지만 저는 일단 아들의 선택을 믿어볼 생각입니다. 처음엔 반대했지만 진짜 선수로 성장할 때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싶어요.”


국가대표 음주파문의 진실

지난해 K리그 베스트 11 시상식을 앞두고 단짝 선수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자리에는 2007년 아시안컵 당시 음주파문으로 징계를 당한 선수들(이운재, 김상식, 우성용 등)이 모여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우성용이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는 ‘운재형 MVP 받으면 동국이도 부를까?’였다. 당시 잉글랜드 무대에서 귀국한 상태였던 과거의 전우를 챙겨 저녁이라도 먹으려 했던 것. 물론 이는 국민적 질타를 노력으로 이겨낸 성실파들의 가벼운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2007년 사건이 처음 매스컴을 탔을 때 네 명의 선수들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었다. 자칫하면 선수생명마저 끊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축구협회는 국가대표 소속이었던 이들에게 태극마크를 앗아갔고 1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우성용을 비롯한 나머지 선수들은 양로원과 장애인시설, 고아원 등을 돌며 손수 목욕과 빨래 등 잡일을 도맡았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지난해 프로리그를 뜨겁게 달궈놓았고 우성용은 연말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손에 쥐었다.

한 바탕 시련으로 흘러간 옛이야기지만 우성용은 여전히 가슴 속에 앙금을 품고 있다. 매스컴에 알려진 것만큼 당시 술자리가 불순하지 않았다는 것.

“우리나라 언론이 전반적으로 작은 것을 너무 크게 부풀리는 경향이 있어요. 마치 저희들이 여자들 끼고 룸살롱을 드나든 것처럼 묘사했던데 너무 억울했죠. 물론 저희들이 실수한 것은 인정하지만···그 때 사연이 좀 많았어요. 속사정을 이 자리에서 모두 밝히기는 어려워도 절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부적절한’ 처신은 하지 않았습니다.”

명실 공히 국내 최고의 공격수로 화려한 성적을 남긴 우성용. 그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젊은 후배들에게 제가 늘 강조하는 게 있어요. ‘내가 만약 너희 나이로 돌아간다면 정말 몸이 부서져라 축구에 올인하겠다’고. 후배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말 후회 없이 축구에 인생을 모두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축구인이니까요.”


#우성용 “이천수 징계 수위 적절” 따끔한 충고

한때 울산현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절친한 후배였던 이천수를 향해 선배 우성용이 따끔한 충고를 던졌다. 지난 7일 심판을 향해 ‘주먹감자’를 날려 상벌위원회에서 중징계를 받은 이천수에게 적절한 수준의 벌에 순순히 응해야 한다며 쓴 소리를 보낸 것.

우성용은 “선수가 운동장에서 하지 말아야할 행동을 했다. 사실 (이)천수는 굉장히 착한 후배인데 지나치게 솔직하고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며 “개인적으로 이번 일은 상당히 아쉽지만 천수가 잘못한 만큼 상벌위의 처분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논란이 된 기수봉사 논란에 대해 “찬반 의견은 분분하지만 잘못을 저지른 선수에게 그런 식의 봉사를 지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다른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우성용 프로필
▶ 성명 : 우성용
▶ 출생 : 1973년 8월 18일
▶ 고향 : 경남 고성
▶ 소속 : 인천 유나이티드 FC
▶ 키 : 191.0cm / 체중 : 76.0kg / 혈액형 : B형
▶ 프로데뷔 : 1996년 부산아이콘스 입단
▶ 포지션 : FW (포워드)
▶ 특기 : 헤딩, 스피드
▶ 별명 : 따따, 꺽다리, 고공폭격기
▶ 종교 : 불교
▶ 출신학교 : 속초초등학교-속초중학교
-강릉농공고등학교-아주대학교

수상내역
▶ 2008 삼성 하우젠 K-리그 대상 공로상
▶ 2007 축구인의 날 2006 최우수선수상
▶ 2006 삼성 하우젠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스포츠토토 한국축구대상 베스트11
스포츠토토 한국축구대상 MVP
▶ 2004 스포츠서울 선정 올해의 선수
▶ 2001 일간스포츠 골든볼 시상식 브론즈 슈
▶ 2001 K리그 8월 베스트11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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