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이천수 재기 날갯짓
‘문제아’ 이천수 재기 날갯짓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3-04 16:33
  • 승인 2009.03.04 16:33
  • 호수 775
  • 5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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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아’ 꼬리표 떼고 용으로 승천할까
이천수

임의탈퇴라는 극약처방이 ‘탕아’의 꼬리표마저 떼어준 것일까. 프로축구 수원삼성으로부터 선수 자격 정지를 뜻하는 임의탈퇴를 당한 뒤 방황하던 이천수(28)가 박항서 감독과 새 출발을 선언했다. 전남 드래곤즈로부터 ‘연봉 0원’ 즉, 무보수 봉사를 약속한 이천수는 과거의 명성과 걸맞지 않는 굴욕의 나날을 보내며 복귀의 칼날을 갈아왔다. 한국에서 3부리그로 통하는 아마추어 K3팀의 연습생으로 분해 몸을 만들었고 새로운 소속팀이 될 전남에 연봉 수준을 100% 백지위임했다. 이천수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 소문으로만 떠돌던 차범근 감독과의 불화설도 시인했다. ‘0(제로)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이천수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어본다.

‘한국의 베컴’으로 불리며 화려한 기술을 자랑했던 축구 천재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내리막길 행보를 이어갔다. 소속팀에 경기 보이콧 조항까지 넣어가며 야심 차게 진출했던 스페인, 네덜란드 리그에서는 적응 부족으로 날개조차 펴지 못했고 어렵사리 복귀한 국내 무대에서는 금세 타성에 젖어들었던 탓이다.


아마추어 겪어보니 프로정신 깨달아

그런 이천수가 ‘문제아’ 꼬리표를 떼고 새 인생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달 말 한 일간지와 전화 인터뷰를 가진 이천수는 평소의 똑 부러지는 직설 화법대신 최대한 자신을 숙이는 겸허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지난달 중순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 수석코치 출신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전남 드래곤즈와 사실상 입단 협상을 확정지은 뒤 가진 첫 번째 언론 인터뷰였다. 그는 전남과의 계약 과정에서 자신의 연봉을 백지위임했고 ‘무보수로 일해도 좋다’는 뜻까지 밝힌 바 있다.

이천수는 “연봉 백지위임은 새 출발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라며 몸을 낮췄다. 무엇보다 아마추어 리그인 K3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소화하며 그는 ‘스타’라는 자격지심을 버린 듯 했다.

이천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마추어 선수들과 함께 운동을 하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축구를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전남에서 새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임의탈퇴 당한 신분으로 수원의 동계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이천수는 그동안 양주시민축구단·천안FC 등 K3팀에서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2군 추락을 문제 삼아 차범근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갈등을 빚은 이천수로서는 의외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마추어 선수들과의 합동 훈련에서 이천수는 잃어버린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K3 선수들은 돈을 떠나 정말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더라. 그동안 내 모습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다”면서 “축구를 처음 시작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백지위임은 그 연장선이다. 제로(0)에서 출발해 다시 최고에 오르겠다”고 다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같은 차 감독님께…”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서 쫓기듯 건너온 이천수를 따뜻하게 받아준 이는 다름아닌 차범근 감독이었다. 고려대 선후배 사이인 차두리와 우정이 각별했던 만큼 두 사람은 사령탑과 선수 이전에 부자지간이나 다름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천수는 차 감독의 믿음에 부흥하지 못했다. 겨우 4경기에 출전해 1골 만을 넣은 이천수는 2군으로 내려가라는 코칭스태프의 지시에 팀을 무작정 뛰쳐나왔다. 이 과정에서 이천수와 차범근 감독의 불편한 관계가 기사화 됐고 ‘은혜도 모르는 건방진 선수’라는 편견이 따라 붙었다.

이천수는 “코칭스태프와 불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또 “차 감독님을 비롯해 수원 관계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 이천수는 다시 K리그에서 차 감독을 만나면 무조건 더 잘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도 다짐했다.

그는 “수원팬은 물론이고 K리그 팬을 위해서도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며 굳게 결심한 듯 했다. 물론 두 번째 새 출발 기회를 준 박항서 감독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는 “감독님이 올해(2009년) 계약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열심히 해 나를 믿어주신 감독님의 재계약을 돕겠다”며 “올해 전남의 목표가 FA컵 우승과 K리그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난 더 높이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K리그에서 가장 나빴던 팀 성적이 5위(2006·울산)다. 전남이 5위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장담했다.

당초 전남은 이천수의 영입에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았다. 비싼 이적료에 묶여 네덜란드로 돌아가는 것도, 한국에 잔류하는 것도 어려운 이천수에겐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바로 이때 박항서 감독이 이천수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

박 감독은 팀을 설득해 이천수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고 결국 ‘연봉 백지위임’이라는 실속까지 거둬들인 1등 공신이다.


“무보수라도 좋습니다”

이천수의 전남 입단과정을 들여다보면 마치 인기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중학시절 뛰어난 3점슈터로 날리던 ‘정대만’이 부상의 벽을 넘지 못하고 방황의 길을 걷다 존경하는 감독 앞에 무릎을 꿇으며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요’라며 울부짖는 장면은 많은 스포츠팬들의 공감을 샀다.

이번 이천수의 전남행도 같은 맥락이다. 전남이 이천수에게 내민 계약 조건은 한마디로 ‘굴욕’에 가깝다. ▲1년 계약에 최초 6개월 동안 무보수 ▲임대구단인 수원삼성과 원 소속구단인 페예노르트와 임대료 문제 해결 ▲전남에서 재기의 의지를 보일 것 등 3가지다.

9억원의 연봉을 받고 네덜란드에 진출했던 이천수는 불과 2년 만에 동전 한 푼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전남이 내 건 무보수 계약에는 각종 출전수당, 골수당, 승리수당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그야말로 6개월 동안 무보수 봉사 노동인 셈이다.

이천수가 전반기 리그에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경우 나머지 6개월에 대한 연봉은 추후 협상하자는 게 전남의 입장이다. 당초 이천수는 수원에서 받던 연봉(5억원)의 절반 수준을 원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반 토막 난 연봉에라도 사인해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팀 내 최고 스타들도 연봉 3억원이 넘지 않는 전남 입장에서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전남은 이천수의 영입에 걸림돌이었던 임대료 문제를 어느 정도 매듭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이 이천수와 1년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수원에 남은 임대료를 주고 원 소속구단인 페예노르트에도 임대연장기한인 6개월 동안의 임대료를 줘야 한다.

전남은 두 팀에 각각 10만달러(약 15억원)의 임대로를 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는 지난해 7월 수원이 이천수를 영합할때보다 무려 1/3 가까이 떨어진 가격이다.

‘문제아’ 이미지를 벗고 백의종군 뜻을 굳힌 이천수. 3월 K리그 킥오프를 앞두고 그의 무보수 행보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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