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선수 발목 잡는 ‘악질 구단’ 뭇매에 움찔

서른아홉의 ‘노장투수’ 최향남(롯데)이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의 이슈 인물로 떠올랐다. 지난 2007년 미국 생활을 접고 롯데에 입단한 최향남은 마지막이 될지 모를 메이저리그 재 입성을 두고 구단과 힘겨운 사투를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롯데는 ‘노장투수의 꿈을 가로 막은 악질 구단’으로 연일 뭇매를 맞았고 최향남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기 위해 구단에 목을 매는 처지가 됐다. 최향남이 바라는 것은 제발 소속팀이 자신을 ‘내 쫓아주는 것’이다. 임의탈퇴나 FA로 ‘자유의 몸’이 되면 아무런 제약 없이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롯데 입장에서는 FA 자격을 얻지 못한 선수에게 미국 진출의 문을 터줬을 경우, 안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원칙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욕먹는 ‘거인구단’과 최향남의 갈등을 집중 분석했다.
문제의 본질은 미국 진출을 마지막 꿈으로 여기고 있는 최향남과 팀의 핵심 전력을 놓치고 싶지 않은 롯데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부딪쳤다는 데 있다.
최향남의 미국 진출은 지난달 22일까지 실낱같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최향남과 입단 협상을 벌였던 미국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POS)까지 거치면서 최향남을 영입할 생각은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결정 보류’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고마 속 시원히 보내주이소”
지난 1월 14일 두 달여 동안의 타지 생활을 마치고 입국한 최향남은 세인트루이스와 월급 7500달러(약 1028만 원)의 마이너리그 계약에 합의했다. 그러나 롯데 구단이 보유권 문제로 POS를 요구해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왔다.
당초 세인트루이스는 자유 계약 선수인 줄 알고 계약서를 보낸 선수가 POS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최향남을 스카우트한 팀에서 구단에 매달려 시간을 번 것이다.
“마∼ 그러지 말고 속 시원허이 보내주이소. 올 한해 잘했다 아임니꺼”
최향남의 미국 진출이 성사 혹은 불발된다 하더라도 롯데 구단을 향한 팬들의 공방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전망이다. ‘노장투수의 마지막 꿈’이라는 점에서 최향남의 미국진출은 팬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소속 구단인 롯데자이언츠가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며 순식간에 ‘롯데=악질구단’이라는 오해가 불거진 것. 롯데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최향남을 내보낸다는 방침을 정하자 롯데를 응원하는 부산팬들마저 등을 돌렸다.
포스팅 시스템이란 국내 프로 선수가 미국에 진출할 경우 메이저리그 전체 구단이 입찰 금액을 제시해 최고액을 제시한 팀에 선수의 독점 계약권을 주는 제도다. 이런 절차로 최향남이 이적하게 될 경우 롯데는 임의탈퇴 공시를 내고 나중에 한국으로 복귀할 때 보유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롯데가 팬들의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짜낸 고육책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롯데가 최향남을 임의탈퇴나 FA로 풀어줄 경우 나중에 그가 국내에 돌아온다 해도 우선협상을 벌일 명분을 잃게 된다. 때문에 세인트루이스가 1달러라도 입찰금액을 적어낸다면 최향남의 이적에 동의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야구팬들의 생각은 다르다. 최향남의 미국 진출을 지지하는 팬들은 “최향남 선수가 현재 38살 노장으로 야구에 대한 노련미가 풍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선수들에 비해 더 이상 성장할 가능성은 낮다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선수 본인이 그렇게 바라고 있고 선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롯데의 고집은 그저 발목잡기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지난 시즌 최향남은 마무리 투수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롯데 팬들의 숙원이기도 했던 ‘가을 야구’에 팀을 올린 주역으로 최향남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당시 그는 마운드에 오르면 짧은 시간에 승부를 결정지어 팀에 승리를 안겨다 줬다. 때문에 야구팬들에게 최향남은 ‘퇴근본능’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기도 했다.
원칙 지킨 것도 죄라니… 섭섭한 롯데
물론 롯데 입장에서도 할말이 많다. 개약서 상 ‘갑’의 입장인 구단 측의 해명이 ‘변명’으로 들릴까봐 구체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최향남과 야구팬들이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롯데가 그를 FA 선수로 풀어주고, 한국 복귀 시 무조건 롯데와 계약한다는 약속을 하면 된다.
하지만 롯데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미 최향남이 2007년 클리블랜드에서 국내로 복귀할 때 구두약속까지 했던 전 소속팀 KIA로 가지 않고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의 배신’을 눈앞에서 지켜본 구단 입장에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것.
특히 롯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안 좋은 선례를 남긴다는 점이다. 최향남처럼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기준 일수에 단 3일이 모자란다고 해도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선수가 해외 진출을 도모할 경우이 같은 선례를 다른 선수들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롯데가 주장하는 것은 몇 푼 안 되는 이적료를 챙기겠다는 게 아니다. 한국프로야구가 미국 메이저리그의 하부리그라는 꼴사나운 인정을 하지 않겠다는 게 롯데가 억울함을 주장하는 이유다.
롯데 관계자는 “한-미 선수 협정이 있는데 그런 것을 모두 무시하고 최향남을 놔주면 한국 리그가 미국 리그보다 하위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느냐. 또 복귀하더라도 사실상 우리 팀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못한다. 계약조건 안 맞아서 딴 팀 가겠다고 하면 끝이 아닌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구단의 뒤통수를 때린 최향남의 ‘마이웨이’도 비난 받을 만 하다. 롯데는 시즌 후 최향남이 도미니카 윈터 리그에서 뛰는 것은 허락했지만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타 구단과 협상을 할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것. 최향남이 구단과 아무런 상의 없이 덜컥 미국 구단과 계약 합의를 하고, 추후 통보를 했다는 얘기다.
서로의 입장이 치열하게 맞붙은 최향남과 롯데. 최고의 인기 구단과 노장투혼이 맞붙은 갈등의 마무리가 어떻게 지어질지 자못 궁금하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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