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선수 생활 그만하고 싶다” 폭탄선언

‘비운의 천재’ 고종수(30)가 결국 선수 생활을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 소속팀 대전시티즌에서 사실상 방출 수순을 밟은 고종수는 최근 에이전트를 통해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전 소속팀인 수원삼성에서 ‘임의탈퇴’ 당한 뒤 힘들게 현역으로 돌아온 고종수는 불과 2년 만에 또 다시 선수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됐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이 없지만 고종수를 위해 조건 없이 그를 놓아주기로 했다”는 대전 구단 측의 입장과는 달리 고종수는 마지막까지 팀에 남고 싶다는 뜻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승 김호 감독 밑에서 두 시즌을 뛰는 동안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고종수와 구단이 심각한 불신의 늪에 빠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90년대 후반 이동국, 안정환 등과 함께 ‘트로이카’를 구축했던 고종수의 몰락에 축구팬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지난 8월 무릎부상을 당해 재활 치료 중인 고종수는 구단이 제시한 우선 협상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는 대전이 사실상 고종수를 ‘전력 외 멤버’로 결론지었다는 뜻이다. 대전 구단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고종수가 계약 만료일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그와의 재계약이 회의적이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물론 대전이 고종수와의 관계를 완전히 끝내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는 “김호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고종수의 몸 상태에 대해 검토 중이다. 이번 달 말 쯤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을 듯싶다. 김호 감독님이 협상 일정을 조율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몸 상태 보고 결정하겠지만…”
2007년 대전이 극적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고종수에게 선수 생활을 계속 할 길을 여전히 열어주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고종수가 구단의 손을 잡을 생각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고종수는 “구단이 재계약에 대해 한마디도 말을 꺼낸 적이 없다”며 섭섭한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서울에 머물며 재활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고종수는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삼가고 있다.
대신 그의 진로에 관해서는 고종수의 에이전트인 곽희대 AI스포츠 대표가 전권을 쥐고 있다. 곽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아직 대전 구단의 입장을 전해 듣지 못했다. 대전과 먼저 대화를 한 뒤 조심스럽게 다음 진로를 모색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전과 고종수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가능성은 반반이다. 고종수의 한 측근은 최근 “대전이 그와 계약할 의사가 있었다면 이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감정이 많이 상해 있는 상태다”라고 밝혔다.
전화로 “다른 팀 알아보라”
지난달 초 대전의 1차 전지훈련 명단에 고종수가 빠진 것이 오해의 시작이었다. 당시 코칭스태프는 21명의 전지훈련 참가 명단을 작성해 구단에 넘겼다. 여기엔 고종수의 이름이 빠져 있었고 구단은 자연스럽게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우선 협상을 벌였다. ‘고종수가 대전의 우선 협상 명단에서 제외됐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나온 것이었다.
문제는 주무를 통해 고종수에게 전화로 ‘다른 팀을 알아보라’는 사실상의 해고 통고를 한 것이었다. 구단과의 계약 문제를 총괄하는 에이전트가 엄연히 있는 상황에서 선수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은 처사라는 얘기다.
이후 구단에서는 고종수에게 명단을 잘못 봤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종수의 측근은 “선수의 대리인인 에이전트에게 먼저 알리지 않고 선수에게 직접 연락을 한 것이 감정을 상하게 한 것 같다. 대전 구단은 재활중인 고종수의 상태를 챙긴 적도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측근은 또 “6강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고종수는 분명히 대전에 남겠다고 여러번 얘기했다. 연봉에 상관 없이 팀에 현신하겠다고 했는데 구단이 계약을 질질 끌다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단이 팬들의 눈을 의식해 호의를 베푸는 척만 할 뿐 실제로는 선수를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얘기다.
고종수-대전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넜다”
결국 지난 2일 한 언론을 통해 “대전이 아무 조건 없이 고종수를 놓아주기로 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다. FA 자격이 없는 고종수를 자유계약 선수로 풀어 다른 구단과 계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대전의 한 고위 관계자’로 알려진 한 인물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고종수와 결별하기로 했다. 고종수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는 팀이 있는 만큼 선수가 K리그 모든 팀과 자유롭게 이적협상을 할 수 있게 풀어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2007년 대전에 입단한 고종수는 지난해 16경기에 출전해 2골 1도움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이런 고종수가 FA자격을 얻으려면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한 경기 가운데 절반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데 고종수는 이 기준을 채우지 못했다.
대전 입장에서는 고종수와의 우선 협상권은 물론 다른 팀에 그를 이적 시켰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적료를 모두 포기한 것이다. 그의 몸값을 정확히 산출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대전이 최소한 3억원 이상의 현금을 손에 쥘 가능성을 차버린 것이라는 게 축구계의 중론이다.
고종수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곽희대 대표는 “(고종수가) 대전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던 만큼 구단의 조치에 많이 서운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종수는 곽 대표에게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과 고종수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만큼 곽 대표의 새해 일정도 바빠질 전망이다. 대전 입단 첫 시즌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고종수를 원하는 팀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수원삼성 시절부터 고종수를 훈육해 온 김호 감독이 사령탑 권한으로 제자를 다시 팀에 불러들일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