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대표팀 ‘재떨이 폭행’ 진실공방
펜싱대표팀 ‘재떨이 폭행’ 진실공방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9-01-07 16:58
  • 승인 2009.01.07 16:58
  • 호수 767
  • 5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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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 징계, 사표 뒤 남은 건 앙숙 된 사제지간
김승구가 증거자료로 공개한 폭행직후 본인의 사진.

지난 연말 불거진 펜싱 대표팀 구타·폭행 시비가 무더기 사표와 징계 끝에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대한체육회는 대표팀 소속 선수를 구타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이석(33) 펜싱 국가대표코치에 대해 ‘무기한 자격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사실상 코치 생명을 완전히 끊어버린 초강경 조치였다. 이 코치의 구타 사실을 폭로한 김승구(27·화성시청)도 체육회 차원의 추가 징계가 없는 대신 당분간 대표선수 자격이 정지됐다. 한편 이 코치와 함께 사표를 제출했던 심재성 감독을 포함한 나머지 코칭스태프 4명의 사표는 반려됐다. 펜싱 대표팀을 들쑤신 폭행 사건은 관련자들의 무더기 징계와 사퇴로 일단락됐지만 당사자인 이 코치와 김 선수의 불편한 공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 코치의 구타행위에 대한 경찰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양측의 주장이 판이하게 다른 까닭이다. 대표팀 사제지간으로 한솥밥을 먹던 두 사람은 정초부터 가해자와 피해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에 나서 씁쓸한 모습을 연출하게 됐다.

대한체육회는 지난달 26일 제10차 선수보호위원회를 열고 이 코치의 체벌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양측 주장에 차이는 있지만 김 선수의 얼굴과 몸에 난 상처와 동료 선수들의 증언으로 미루어 이 코치가 어떤 식으로든 ‘부적절한’ 신체적 접촉을 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폭행 알고도 방치한 제3자 있다”

체육회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폭행 사실뿐만이 아니다. 체육회는 펜싱 대표팀 내부에서 불합리한 체벌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묵살한 제3자가 있고 그에 대한 처벌도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수권익보호팀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폭력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며 “조사과정에서 ‘폭행은 없었다’고 거짓진술을 한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엄중 경고했다”고 밝혔다.

이번 폭행 사건과 관련해 가장 먼저 진상 조사에 착수했던 펜싱협회측은 당초 ‘폭행 사실은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펜싱협회 측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거짓 진술을 한 관계자들은 이달 초 열릴 펜싱협회 상벌위원회를 통해 징계 수위가 결정될 예정이다. 징계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은 심재성 감독과 코치진 등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조사를 진두지휘한 김국현 펜싱협회 부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당시 협회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김승구 선수의 주장은 현지 확인 결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며 “폭행 사실은 없고 가벼운 몸싸움을 벌인 정도였다”고 공식 발표했었다. 그러나 경찰 수사와 체육회의 진상 조사 결과 이는 거짓임이 드러난 것.


“손으로 밀친 것 뿐”vs “피 터지게 맞았다”

상벌위원회를 앞둔 펜싱협회는 이들의 징계수위에 대해서 입을 굳게 다문 상태다. 지도자로서 생명이 끊긴 이 코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근신 수준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 선수와 이 코치를 둘러싼 공방은 경찰 수사의 몫으로 넘어갔다. 경찰은 이달 초 두 사람을 불러 대질신문을 벌일 예정이다. 사건을 접수한 경기 화성경찰서 관계자는 “양측의 주장이 완전히 달라 대질신문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폭행 과정과 체벌 정도에 대한 진술에서 완전히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처음 언론을 통해 이 코치의 폭행 사실을 폭로한 김 선수는 지난달 13일 인천공항 출국장 흡연실 앞에서 이 코치에서 정강이를 걷어 채이고 뺨을 얻어맞았다고 주장해왔다.

그에 따르면 이 코치의 폭행은 홍콩 현지 호텔에서도 이어졌다. 김 선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코치가 자신의 방으로 불러 손등으로 얼굴을 때리고 재떨이를 던지는 등 일반적인 체벌 이상의 폭력을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김 선수는 피로 얼룩진 손과 부어오른 얼굴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해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게시판에 공개하기도 했다. 김 선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동료 선수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대표팀의 한 선수는 “홍콩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 앞에서 이 코치가 (김)승구를 불러세워 뺨을 때리고 정강이를 걷어찼다. 큰 소리로 ‘화장실로 따라오라’고 윽박지르는 모습도 봤다. 화장실에서 나온 김승구의 얼굴엔 맞은듯한 상처가 남아있었다”고 증언했다.

동료 선수들은 이 같은 목격 사실을 자필 진술서로 작성해 먼저 귀국한 김승구에게 팩스로 전달했다. 김 선수는 동료들의 진술서를 경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상태다.

반면 이 코치는 “절대 부적절한 폭행은 없었다. 선수를 훈계하는 과정에서 한, 두 번 몸을 밀친 정도였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 코치는 “오히려 김 선수를 훈계하는 과정에서 밀려 넘어지는 과정에서 오른쪽 발등 인대를 다쳐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며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는 김 선수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 코치는 또 “전에도 몇몇 대표 선수들이 흡연과 음주를 일삼아 훈계하는 일이 있었다. 지도자로서 소속 선수들이 비행을 저지르는데 가만히 두고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도 말했다.

현재 서울 시내 한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이 코치는 체육회 징계를 받은 뒤 외부와의 연락을 일체 끊은 채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정초부터 옛 제자와 대질신문을 벌이게 된 이 코치는 법정공방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이 코치가 체육회의 중징계에 대해 재심을 요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실상 지도자 생명이 끊긴 그가 경찰 조사에 응하는 과정에서 명예회복을 노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협회의 무마 의혹 역시 이 코치의 대응에 따라 그 진상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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