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 발칵 뒤집은 ‘승부 조작’ 파문
축구계 발칵 뒤집은 ‘승부 조작’ 파문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12-04 13:24
  • 승인 2008.12.04 13:24
  • 호수 762
  • 5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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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킬러가 목숨 노린다” 살해 협박

아마추어리그 K3-실업리그 승부조작 파문

“승부조작이 뜻대로 안되면 중국의 킬러가 와서 목숨을 노릴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K3리그 승부조작 사건을 최초 제보한 배형렬(46) 서울 파발FC 감독이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다. 감독과 선수들을 철저히 매수한 도박단 일당은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국내 축구인들을 상대로 회유와 살해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같은 승부조작 백태가 비단 아마추어리그인 K3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파문으로 브로커 2명과 K3 선수 1명이 구속되고 19명이 불구속 입건된 것과 함께 상위리그인 실업축구(내셔널리그·N리그) 구단들 역시 승부조작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입건되는 축구관계자 수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이미 지난 6월 관련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진 대한축구협회는 뒤늦게 사건 조사에 착수하는 모양새다. 대한축구협회는 K3는 물론 N리그와 K리그까지 조사대상으로 놓고 전담반을 조직해 사정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40명이 넘는 축구선수와 지도자들이 줄줄이 경찰에 소환된 가운데 축구협회 자체 조사를 통해 사건의 ‘몸통’이 드러날지는 미지수다.

경찰에 의해 드러난 승부조작 수법은 대담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11명의 선수 가운데 고작 4명의 선수만 매수하고도 완벽한 승부조작이 가능했다. 문제가 처음 불거진 파발FC의 경우 전체 선수 21명 가운데 6명이 브로커에 의해 매수당했다. 나머지 선수 중 5명을 제외한 선수단은 승부조작 사실을 알고 있었다. K3를 비롯한 한국 축구의 근간이 썩어 들어갔다는 반증이다.


“선수 21명 중 6명만 매수”

파발FC는 구속된 골키퍼 이모(28)씨를 주축으로 중국 도박 브로커로부터 경기당 150~200만원을 받고 총 6명의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9명의 선수들은 직·간접적으로 경기를 조율해 주는 조건으로 10~15만원씩을 용돈조로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상위 리그인 내셔널리그에서는 오간 돈의 액수가 훨씬 컸다. 내셔널리그 E구단 선수 4명과 구단 관계자 김모(29)씨 등은 1경기 당 1억씩 모두 3억원을 받기로 하고 승부조작에 나섰다. 이들은 각각 지난 8월 16일, 10월 22일, 11월 1일 등 세 경기에서 결과를 조작했다.

그러나 브로커가 의도한 것 보다 큰 점수차로 지는 등 조건을 맞추지 못해 이들은 대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커 김모(34·구속)씨는 이렇게 조작한 경기 내용을 중국 현지 도박꾼들에게 경기 전 미리 알려주고 대가를 받아 챙겼다. 또 일부 경기는 직접 돈을 걸어 판돈을 휩쓸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이 매수한 선수들과 팀 관계자들을 협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판돈을 건 도박꾼들은 브로커 김씨에게 경기 중에도 전화를 걸어 “몇 골을 더 넣게 해라” 또는 “몇 점을 더 내줘라”는 등 구체적인 주문을 넣었다.


치명적인 유혹과 살해위협

선수들을 조종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김씨 등을 비롯한 브로커들. 이들은 지시대로 따르지 않거나 경기가 의도대로 풀리지 않으면 전화로 “신체 일부를 내 놓으라” “중국에서 사람을 보냈으니 각오해라, 죽이겠다”는 등의 협박을 일삼았다는 진술이 나왔다.

돈을 받기로 하고 이들과 한 배를 탄 이상 내통한 구단 관계자와 선수들이 이 같은 협박에서 자유로울 리 만무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K3리그 파발FC와 포천시민축구단, 고양시민축구단 등이 승부조작과 직접 관련됐거나 제의를 받았다.

이들은 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가난한 팀과 선수들을 이용한 물량공세와 목숨을 담보로 한 지속적인 협박 때문이다. 사건을 처음 경찰에 고발한 배 감독의 경우 중국 측 브로커로부터 계약 성사와 동시에 1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 감독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브로커가) 이번 시즌을 잘 마치면 해외에 나가 편히 살 돈을 주겠다고도 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금액은 말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수십억원의 거금을 승부조작 대가로 소속팀 감독이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검은 유혹은 선수들의 경우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K3 소속 선수들은 팀으로부터 월급이나 연봉을 받지 못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축구를 전문적으로 하기보다 다른 직업을 가진 동호인들이나 은퇴한 노장들이 대부분이다.

브로커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이들의 애환을 이용했다. 임금은커녕 승리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접근해 건 당 150만원 이상의 돈을 배팅한 것.

여기에 “신체 일부를 자르겠다” 등의 무시무시한 협박은 마약처럼 선수와 팀 관계자들의 몸과 마음을 좀먹을 수밖에 없었다.

한 K3리그 선수는 “11명의 선수를 모두 매수할 필요도 없다. 선수 2~3명이 마음만 먹으면 승부조작은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여기에 심판들의 협조가 있으면 일은 더 쉬워진다”고 꼬집었다. 경제적으로 비슷한 압박을 받고 있는 심판들도 이 같은 조작 제의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심판들의 일탈과 관련해 한 전직 프로선수의 증언은 더욱 충격적이다. 그는 “심판이 경기 전 상대 팀 관계자들에게 룸살롱 접대를 받고 일부러 유리한 판정을 내려주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며 “마음만 먹으면 프로무대에서도 승부조작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협회는 이미 지난 6월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하고도 2개월 뒤 주의 공문 한 장을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은 바 있다. 축구협회는 뒤늦게 지난 11월 25일 김재한 상근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경찰 조사와 별도로 K3리그의 감독들과 선수들을 상대로 한 사정에 착수했다.

조사위원회에는 협회 조중연 부회장, 김호곤 전무, 이상호 경기국장, 이종한 경기위원장과 K3리그 장원직 운영위원장, 차덕환 부위원장 등이 참여한다. 조사위는 승부조작 실체를 파악한 뒤 결과를 상벌위원회에 넘겨 해당자를 자체 징계할 예정이다.

축구협회 상벌 규정상 경기 조작과 뇌물 수수가 확인되면 최대 ‘3년 이상의 제명’ 등 중징계를 받는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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