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국내 연예·스포츠 매체들은 일제히 최홍만의 ‘죽고 싶다’는 발언을 앞 다퉈 보도했다. 탤런트 안재환과 최진실 등 스타들의 잇따른 자살로 뒤숭숭한 연예계에 또 다른 희생양이 나올 수 있다는 경보였다.
그는 지난 9일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인사말에 ‘누가 내 속마음을 알까? 사람들은 보이는 모습만 보고 시끄럽게 하고··· 다시 태어나고 싶지만 사랑하는 가족···사랑하는??’이라는 글을 남겼고 홈페이지 제목은 ‘죽고 싶다’로 바꿨다. 언론의 엄청난 취재공세에 최홍만은 하루 만에 문제의 글을 모두 삭제했다.
이어 ‘팬들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겉과 속 전혀 다른 기사내용과 악플은 제발 그만’이라고 적은 그는 극심한 ‘악플 공포증’에 시달리는 듯했다. 국민배우 최진실을 고인으로 만든 인터넷 ‘악플’이 천하장사 출신 파이터 최홍만도 울린 것이다.
2005년 3월 K-1 월드그랑프리 서울에서 챔피언으로 등극한 최홍만은 밥 샙, 제롬 르밴너, 세미 슐트 등 스타급 플레이어와 명승부를 벌이며 입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씨름선수에서 종합격투기 선수로 변신한 그에게 인터넷 여론은 너그럽지 못했다. 경기력과 관련된 합리적인 비판도 있었지만 ‘거인 파이터’인 그의 신체조건을 비하하는 인신공격도 상당했던 것.
최홍만을 향한 삐딱한 시선은 크게 세 가지 범주 안에 속한다. 첫째는 키 218cm, 체중 150kg에 달하는 거구인 그가 격투기 특유의 기술이 아닌 힘으로만 승부하려든다는 오해다. 화끈한 실전 격투를 기대하는 K-1팬들은 상대적으로 느리고 답답한 그의 ‘꿀밤 때리기’에 식상하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지난 17번의 경기 가운데 최홍만이 다운을 당한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또 지난 9월 열린 서울 경기에서 헤비급 강자 바다 하리를 상대로 한차례 다운을 빼앗으며 분투하는 모습은 ‘힘만 센 거구’라는 기존의 편견을 희석시키는 좋은 예였다.
최홍만이 비난 받는 두 번째 이유는 운동선수인 그의 ‘외도’였다. 지난해 11월 가수로 데뷔를 선언하며 슈퍼모델 출신 강수희와 ‘미녀와 야수’라는 그룹을 결성, 랩퍼로 나선 그는 오랜 꿈을 이뤄 뿌듯하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를 읽은 네티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격투기 선수로 이제 걸음마를 뗀 주제에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는 게 그나마 점잖은 표현이었다.
최홍만을 둘러싼 마지막 악재는 군 입대라는 가장 민감한 사항을 두고 터졌다. 건강 이상으로 군 면제를 받은 그가 불과 몇 개월 만에 링으로 복귀하자 ‘비겁하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최홍만은 지난해 6월 K-1 다이나마이트 USA에서 브록 레너스와의 경기를 추진했지만 켈리포니아주 체육위원회는 최홍만의 뇌에서 발견된 종양과 혈흔을 이유로 그의 출전을 불허했다.
경기가 무산되자 최홍만은 “내 건강에는 1%의 문제도 없다”며 아쉬워했었다. 그러나 지난 4월 최홍만은 ‘종양이 시신경을 압박해 시력 저하 및 시야 장애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서를 군 당국에 제출한 뒤 입소 사흘 만에 군복을 벗었다.
지난 9월 바다 하리와의 맞대결에서 돌연 기권을 선언해 ‘정신력 논란’에 불을 붙인 그는 최근까지 갖가지 비난과 악플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최홍만에게 맹목적인 응원이나 비난이 아닌 건설적인 비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연예계 데뷔와 군 면제 과정에서 남은 적잖은 의혹은 분명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오점으로 남겠지만 모든 것이 그의 잘못이라는 식의 마녀사냥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얘기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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