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프로야구 희비(喜悲) 쌍곡선 결산
2008 프로야구 희비(喜悲) 쌍곡선 결산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10-16 14:48
  • 승인 2008.10.16 14:48
  • 호수 755
  • 5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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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우승 ‘국민 스포츠’ 자리매김, 정수근 ‘옥에 티’
지난달 28일 롯데 로이스터 감독이 허남식 부산시장과 함께 ‘부산 갈매기’를 열창하고 있다.

2008년은 한국 프로야구에 있어 제2의 중흥기였다. 프로야구 27년 역사상 두 번째 이자 무려 13년 만에 ‘500만 관중시대’를 다시 연 올해 프로야구는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해 환호로 끝났다. 디팬딩 챔피언 SK와이번즈가 한국시리즈에 선착한 가운데 포스트 시즌이 한창인 2008 프로야구, 선수와 구단이 얽힌 갖가지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시즌을 소화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무엇보다 지난 8월 올림픽 메달사냥에 나섰던 대표팀이 쿠바, 일본, 미국 등을 차례로 쓰러트리며 세계재패를 달성해 야구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막판까지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이 치열했던 야구장 안팎의 ‘희비쌍곡선’을 정리해봤다.


喜 “부산 갈매기~” 롯데 ‘거인광풍’

2008 한국 프로야구의 최대 흥행 키워드는 단연 롯데 거인군단의 ‘부산 갈매기’ 열창이었다. 2000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이후 7년 동안 하위권을 맴돌며 ‘꼴데’라는 오명에 울었던 롯데는 올 시즌 폭발적인 저력을 발휘하며 정규시즌 3위로 가을잔치 초대장을 거머쥐었다.

신문지와 주황색 비닐봉지로 무장한 롯데 팬들은 사직구장뿐 아니라 전국 원정구장에서도 엄청난 응집력을 보여줬다. 롯데에서 시작된 관중몰이는 다른 구단 팬들을 자극했고 곧 500만 흥행돌풍의 핵으로 변모했다. 덕분에 프로야구는 지난 1995년 사상 최초로 500만 관중이라는 역사를 쓴 뒤 꼬박 13년 만에 다시 한번 대기록의 고지를 밟을 수 있었다.

특히 롯데는 지난 7월 25일 홈 관중 100만명 돌파라는 희소식을 일찌감치 안겼고 1995년 서울 연고팀인 LG트윈스가 보유한 한 시즌 최대 홈 관중 기록(126만4천762명)도 훌쩍 뛰어넘었다. 롯데가 정규시즌 동안 동원한 홈 관중은 무려 137만9천735명에 달했다.

63차례 벌어진 홈경기에서 롯데는 경기당 평균 2만1천900명의 놀라운 흥행 저력을 자랑했다. 이 중 경기장 만원으로 입장을 기다리던 관객들이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 것도 21번이나 됐다. 매 경기 2만명 이상의 관중이 관람료를 지불하며 입장했다는 것은 야구팀으로서 롯데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로이스터 매직’을 완성시킨 롯데는 전반기 막판 4연승을 포함해 후반기 들어 7연승을 내달리며 승승장구했다. 시즌 막판까지 2위 두산과 플레이오프 직행을 놓고 진검승부를 벌인 거인군단은 올스타전 엔트리를 싹쓸이하며 ‘국민 구단’으로의 입지를 다졌다.


悲 SK 윤길현, 빈볼 시비·욕설로 빈축

야구열기가 한창 무르익던 지난 6월 오랜만의 흥행 돌풍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SK 투수 윤길현이 지난 6월 15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KIA전에서 상대타자이자 대선배인 최경환을 상대로 위협구를 던진 뒤 후배로서는 할 수 없는 무례한 행동으로 일관해 팬들의 입방아에 오른 것이다.

그는 최경환을 삼진으로 잡고 욕설을 하는 입모양이 그대로 방송카메라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엄청난 비난여론에 휩싸였다. 후배로서 선배를 상대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 윤길현에 대한 팬들의 거부감은 엄청났다. ‘윤길현 사태’로 위기에 몰린 SK 와이번스는 사건이 벌어진 사흘 만인 6월 18일 구단 명의의 공식 사과문을 냈다.

SK는 또 내부 회의 끝에 윤길현을 2군으로 강등시키는 한편 “페어플레이 정신에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윤길현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며 “이번일로 야구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팬들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감독이자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성근(66) 감독이 나서기에 이르렀다. 김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을 자청해 팬들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김 감독은 사과 기자회견에 이어 한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결심을 해 들끓던 여론을 가까스로 잠재울 수 있었다.

윤길현은 사건이 있은 지 한 달여 만인 지난 7월 11일 KIA 타이거즈와 홈경기를 앞두고 직접 KIA 선수단을 찾아가 공식적으로 사죄했다. 죄송함에 고개를 숙인 후배를 당사자인 최경환과 KIA 선수들은 기분 좋게 받아줬고 빈볼과 욕설로 얼룩졌던 파문은 일단락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회장 손민한)는 지난 7월 7일 비신사적 행위에 대해 선수들이 직접 나서 자정운동을 벌이자는 내용의 ‘페어플레이 결의’를 하기도 했다.


悲 ‘야인 정수근’복귀 가능성은?

찌는 듯한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 여름, 야구계 최대 악재가 터졌다. 승승장구하던 롯데가 흥행돌풍을 한방에 잠재워버릴 ‘초특급 악재’에 휘말린 것. 불미스런 사건의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팀의 주장이던 정수근(31)이었다.

술에 만취해 시민과 경찰관을 폭행한 정수근은 사실상 야구생명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는 중징계를 받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긴급 상벌위원회를 소집해 3시간 가까운 난상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정수근은 ‘무기한 실격선수’라는 중징계에 처해졌다.

‘무기한 선수실격’은 프로야구 27년 사상 처음 내려진 조치다.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당시 브리핑을 통해 “이번 결정은 선수 영구제명 바로 아래 단계에 해당하는 중징계”라고 밝혔다. 하 총장은 “무기한 실격은 모든 야구활동이 중지되는 것으로 굉장히 엄한 징계다”며 “다만 앞으로 정수근 선수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자격회복이 이뤄질 여지는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롯데 동료들의 탄원서 덕분에 법원 판결에서 벌금형(700만원)을 선고 받는데 그친 정수근의 재기 가능성은 아직 열려있다. 그는 현재 마산 용마고에서 어린 후배들과 함께 훈련하며 몸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의 전(前) 주장으로 8년 만에 ‘가을잔치’에 나선 친정팀을 바라보는 그의 회한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喜 2008년 8월 23일 한국야구 ‘국경일’

2008년 8월 23일 한국야구는 역사를 썼다. 24명의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일본, 미국, 쿠바 등 야구강국을 차례로 무너트리며 새로운 절대강자로 등극한 것이다.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은 ‘아마 세계 최강’이라는 쿠바를 베이징 올림픽 결승무대에서 꺾고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무엇보다 이번 올림픽은 일본 요미우리에서 뛰고 있는 이승엽을 제외하고 모든 선수들이 국내 프로무대에서 뛰고 있는 ‘토종혈통’이라는 점에서 한국 프로야구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김경문 감독의 지휘 아래 야구대표팀은 7전 전승, 1위의 성적으로 결선 라운드에 진출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야구 종주국’ 미국과 ‘아시아의 맹주’ 일본은 물론 ‘아마 최강’이라는 쿠바도 차례차례 태극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야구대표팀이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올림픽이 프로야구 시즌 중에 겹치는 바람에 대회를 불과 열흘 앞둔 지난 8월 1일에서야 대표팀 소집이 완료된 것. 이후 8월 10일 베이징에 입성했지만 손발을 맞출 수 있는 훈련 기간은 열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표팀의 전력은 신·구의 조화, 끈끈한 팀워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여줬다. 김민재, 이승엽 등 경험 많은 선배들과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류현진, 김광현 등 신예들의 조화는 8개 구단에서 따로 뛰고 있는 선수들로는 볼 수 없을 만큼 촘촘한 조직력을 자랑했다.

27년의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닌 한국 프로야구는 올해 세계재패를 무기로 국내 흥행 대박을 이끌어냈다. 올 시즌 페넌트레이스에서만 520만787명의 관중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인 프로야구는 ‘꿈과 감동을 준다’는 출범취지에 가장 걸맞는 한해를 보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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