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 골키퍼 성경모

명랑만화 캐릭터 같은 느낌. 동글동글한 첫인상에 5분이면 누구든 친구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탁월한 유머감각은 성경모(29·인천유나이티드·GK)의 트레이드마크다. 지난 시즌 심각한 목 디스크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상의 사형선고까지 받았음에도 그가 주전 골키퍼로 그라운드로 돌아오기 까지는 1년이 조금 더 걸렸을 뿐이다. 좌절의 아픔마저도 특유의 ‘개그본능’으로 승화시키는 ‘돌아온 야신’ 성경모. 이천수에게 K리그 복귀골을 허락한 굴욕의 순간조차 “국가대표 하라고 기회준 것”이라며 웃어넘기는 그는 1년의 시간 동안 좀 더 단단해져 있었다.
▶ 지난해 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2007년은 최악이었죠. 1년 동안 2군 경기 3게임 출전한 게 다였으니까요. 지난해 1월 괌 전지훈련 마지막 날 처음 문제가 생겼어요. 원래는 재활치료를 해서 4월이나 5월쯤 복귀할 예정이었죠.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경기 출전하려고 몸 만들고 있는데 주먹이 안 쥐어지는 겁니다. 손발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니 별수 없었죠. 병원을 찾아갔는데 운동 그만 두라는 둥, 너무 암울한 소리만 해대더라고요. 그길로 그냥 휴대폰 내팽개치고 잠수를 탔죠. 말 그대로 ‘무단이탈’. 평소 가족끼리 가던 강원도 모 절에 들어갔다가 바닷가 구경도 하고 딱 1주일 만에 왔는데. 아이고, 아무도 내가 없어진 줄 모르는 거예요! 내팽개친 휴대폰 다시 보니까 팀 닥터님 이름으로 부재중 통화 딱 2개 들어와 있더군요.”
▶ 축구를 아예 그만 둔다는 말도 있었다.
“병원에 가기 전에 부동산 중계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죠. ‘아저씨, 운동 하실 수 있어요?’ 그랬는데 웬걸. “운동은커녕 박스하나 옮기는 것도 못한다”는 겁니다. 겁이 덜컥 날 수밖에요. 잔뜩 겁을 집어먹고 길병원 이상구 교수님을 찾아갔죠. 이 교수님 말씀이 경륜(사이클)선수 중에 디스크 수술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시다시피 경륜은 자전거만 타면 되지만 축구는 직접 몸으로 굴러야 하는 운동이잖아요. 그래도 “잘 될 거다, 나만 믿어라”는 교수님 말씀에 작년 8월 중순 드디어 수술대에 누웠죠. 결과는 뭐 보시다시피 입니다.(웃음) ‘프로디스크’라는 새로운 시술법을 썼는데 수술 1주일 만에 퇴원했어요.”
▶ 올림픽 대표 출신 송유걸과 경쟁관계다. 미묘한 신경전도 있을 듯 한데.
“미묘한 신경전? 둘이 한 방 쓰는 사인데.(웃음) 작년에 제가 부상으로 한창 힘들 때 유걸이가 왔잖아요. 처음엔 ‘내 자리 뺏어먹으러 왔구나!’ 싶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 녀석이 꽤 진국이더라고요. 선배들한테도 잘하고. 요즘엔 그야말로 선의의 라이벌로 생각합니다.”
▶ 국가대표팀 정성룡 골키퍼는 골을 넣어 유명세를 탔다. 혹시 골 욕심은 없나.
“그 경기 아예 보질 못해서. 휴가 때라 경북 봉화에 내려가 있었어요. 워낙 외진 곳이라 전화도 잘 안 터지고 TV채널도 잘 안 나와 경기를 못 봤죠.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골을 넣었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도 킥력이 좋은 친구라 많이 부럽긴 했는데 뭐 그 친구처럼 골 넣고 싶은 욕심 같은 건 없어요. 정성룡 선수도 솔직히 골 넣고 싶어서 노리고 찼겠습니까? 하다보니까 운 좋게 들어간 거죠. 2005년인가 저희 팀에서도 감독님이 ‘모든 선수들이 골 넣는 팀을 만들어보자’고 하셔서 페널티킥 정도는 골키퍼가 차도록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은 있어요. 실현되진 않았지만. 혹시 알아요? 제가 나서서 그렇게 골 넣고 골 세리머니 멋~지게 하면 훨씬 더 유명해질지도.”
▶ 수원과 성남 등 강팀과의 경기에서 유독 어려운 경기를 한다.
“딱히 상대하기 어려운 건 아닌데 이상하게 수원 가서 경기만하면 다쳐요. 그때가 언제야 왜 제가 이천수(수원) 선수 국가대표 만들어준 날(8월27일) 있잖아요.(웃음) 진짜 천수는 나한테 밥 사야 돼. 그러고 보니 지난 부산경기(9월27일)에선 안정환 선수한테 4개월 만에 부활포도 만들어줬죠.(웃음) 참 씁쓸한 얘긴데 이렇게 하니까 또 재밌네요.”
▶ 최근 인천의 6강 진출 시나리오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보도가 많다. 현재 팀 분위기와 각오는?
“대구에 0:2(9월20일)로 지고 나서 정말 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었죠. 게임 마치고 팀 미팅만 2시간 넘게 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그러다 전재호 선배가 한마디 했는데 분위기가 한결 살아나더군요. ‘대구에 진 것이 왜 문제인가. 우린 잘하고 있다. 인천이 꼴찌도 아니고 아직 6위권 이잖느냐. 왜 지금 무거운 주제로 무거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라고 했죠. 생각해보니 정말이잖아요. 이제 홈경기 상대로 울산, 수원경기 남겨뒀는데 왠지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매 경기 결승 같은 기분으로 정말 재밌게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인천은 6강 플레이오프 반드시 갑니다. 다만 조금 더 재미있고 박진감 있게 가는 것뿐입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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