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판 대권 경쟁…동갑 내기 3파전 돌입

지난 16년 간 대한축구협회를 이끌며 ‘축구대통령’으로 군림해온 정몽준 회장의 임기가 내년 1월 끝난다. 그의 퇴임까지는 4개월여 정도 남아있지만 차기 축구협회장 후보 간의 ‘대권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상황에서 ‘포스트 MJ’ 경쟁은 46년생 동갑내기들의 3파전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정몽준 회장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진 조중연(62) 축구협회 부회장과 역시 정 회장의 돈독한 지지를 얻고 있는 이회택(62) 기술위원장이 유력한 ‘여권후보’로 거론된다. 이와 함께 ‘야당’으로 분류되는 허승표(62)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은 이들을 상대할 강력한 대항마로 손꼽히고 있다.
시·도 협회 대표와 연맹 회장 등 대의원들의 표를 선점하기 위해 유력 후보들의 잰걸음이 한창이다.
허승표 ‘판갈이 론’ 팬들에 어필
협회장 선거 출마가 점쳐지는 인물 가운데서도 허승표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이 가장 먼저 세 불리기에 나섰다. 그는 영국 1세대 유학파 출신으로 기존 축구협회와 대립각을 세워왔다는 점에서 축구계 안팎으로 적잖은 지지를 받고 있다.
허 이사장은 공식적인 출마의사를 아직 밝히지 않지만 친정인 축구연구소와 지도자협의회를 발판삼아 대의원들을 꾸준히 접촉하며 표밭을 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를 졸업한 그는 1992년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지내는 등 소문난 축구통이다. 그러나 축구협회 집행부와의 골이 깊어 이들과 연줄이 있는 대다수 대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허 이사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인물은 KBS 축구 해설위원이기도 한 이용수 세종대 교수와 김덕기 축구연구소 사무총장 등이다. 특히 국내 축구해설가 가운데 최고의 실력자로 꼽히는 이용수 교수는 대학축구연맹 회장 선거에 동반 출마해 허 이사장의 ‘판갈이 론’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올림픽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의 부진을 온몸으로 느낀 축구팬들 역시 허 이사장의 출사표에 적잖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16년 간 장기집권 해온 ‘MJ 체제’ 안에서 한국 축구가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세력에 권력이 집중돼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축구팬은 “과거 허 이사장이 협회장직에 도전했을 때 그의 출사표를 실은 언론에 특정 기업이 광고를 모두 끊는 방법으로 복수했다는 말까지 돌았다”며 “이번만큼은 전문 축구인 출신의 참신한 인물이 협회 개혁의 주인공이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축구계의 여권으로 불리는 현 협회 집행부 내에서 조중연 부회장의 출마는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듯하다. 조 부회장은 지난 19일 한 일간지를 통해 “협회장직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듣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말해 출마설에 불을 지폈다.
‘MJ 직계’로 구분되는 조 부회장은 고려대 출신으로 지난 16년 간 사실상 정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다.
그는 또 98프랑스 월드컵 때 차범근 당시 대표팀 감독의 경질을 관철시켰을 만큼 지금껏 국가대표 사령탑 선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도 실무책임자로 이름을 날리며 행정전문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최근 대표팀 성적부진을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어 축구계 안팎의 사퇴요구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불도저식 행정으로 적이 많다는 점도 조 부회장의 부담요소다.
조중연·이회택 ‘회심의 역습’
또 다른 회장후보로 거론됐던 이회택 협회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은 당장 출마 의사를 점치기 어려운 상태다.
지난 7월 전임 이영무 위원장의 후임으로 기술위원장에 선임된 그를 놓고 ‘차기 축구협회장을 맡기기 위한 경력을 만들어 주려는 MJ의 배려’라는 관측도 나왔었다. 최근 정 회장이 “축구인 출신 협회장이 나올 때가 됐다”는 등의 발언을 하면서 은연중 이 위원장을 후계자로 낙점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축구협회 내부에서는 후보 단일화를 통해 표 분산을 막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부회장과 이 위원장 가운데 한명만을 유력 후보로 출마시키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정몽준 회장은 “후임 회장은 특정 정파에 휩쓸리지 않고 축구계 통합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함께 축구인도 회장 후보에 포함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4년간 임기를 수행할 제51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내년 1월 중순 예정된 총회에서 전체 대의원 28명(16개 시·도 7개 연맹, 중앙대의원 5명) 과반수 출석과 출석 대의원 과반 득표로 결정된다. 2인 이상 입후보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득표자 2명이 결선 투표로 회장 당선자를 가린다.
여운형(2대), 신익희(7대), 윤보선(9대), 장택상(12대), 장기영(19, 21, 23대), 최순영(39∼43대), 김우중(45~46대)등 정·재계 실력자들이 두루 거쳐 간 축구협회 수장직을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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