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말’ 무성한 베이징 올림픽
‘뒷말’ 무성한 베이징 올림픽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8-28 10:07
  • 승인 2008.08.28 10:07
  • 호수 748
  • 5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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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편파판정·매너 실종에 선수들만 생고생?
개막식 축하곡 '가창조국'의 실제 가수인 양페이이(7 · 왼쪽)와 대신 무대에서 립싱크를 한 린먀오커(9 · 오른쪽)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슬로건으로 내 건 2008 베이징 올림픽이 가짜 개막식 파문과 잇따른 편파판정 시비에 최악의 올림픽으로 기록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18일 현재 금메달 39개를 휩쓴 중국은 2위 미국(20개)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종합순위 1위를 확정짓는 바람에 더욱 곤경에 처했다. 일부 관중의 몰상식한 응원으로 금메달 향방이 갈린 양궁과 레슬링에서 질 낮은 국민성을 꼬집는 ‘뒷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예상외로 많은 금메달을 따내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한편 ‘과도한 개최국 프리미엄’을 누렸다는 지적에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개최국 텃세가 도를 넘어섰다는 일부 주장에 힘입어 ‘평화의 제전’ 올림픽을 계기로 반중감정이 국제적으로 번질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 올림픽 폐막 뒤에도 중국 당국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다.


금메달 독식 중국 ‘소화불량’

중국은 홈그라운드에서 열린 이번 올림픽에서 지난 2004 아테네 올림픽 때 종합순위 2위로 획득한 금메달 32개를 가뿐히 넘겼을 뿐 아니라 당초 목표인 금메달 36~40개도 일찌감치 달성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중국은 개최국으로서 종합순위 1위를 굳건히 지킬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처럼 중국이 역대 올림픽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성적을 거둔 것은 한국의 메달 텃밭이었던 여자양궁 개인전을 비롯해 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조정 등에서 뜻밖의 결실을 거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선전을 놓고 ‘편파판정과 저질 응원을 등에 업은 억지 쇼’라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추이다린 중국올림픽위원회 부주석 겸 중국대표단 부단장이 지난 17일 중국의 최종 금메달 예상 개수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 목표는 다른 나라와 금메달 경쟁을 벌이는 게 아니다”며 극도로 말을 아낀 이유도 이 같은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홈 텃세, 편파판정과 관련된 논란은 역대 올림픽 마다 지적된 고질적 병폐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그 수위나 횟수가 이전 올림픽을 능가했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14일 열린 남자 유도 100kg급에서 2004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장성호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상대 선수에게 충분히 주의를 줄 수 있는 상황에서 심판의 판정은 끝내 장성호를 외면한 것이다.

장성호의 상대로 나선 몽골 출신의 나이단(24)은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승리를 따냈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작 장성호 본인이 깨끗하게 승복해 사태는 일단락됐다. 나이단은 결국 몽골 올림픽 출전 44년 역사에서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같은 날 펼쳐진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84kg급 경기에서도 편파판정 논란이 불거졌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아브라하미안(스웨덴)이 시상대에서 자신에게 수여된 동메달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경기장을 떠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

금메달은 준결승에서 그에게 판정승을 거둔 안드레마 미구치(이탈리아)의 차지였다. AP통신은 이 사건의 배경에 국제레슬링연맹(FILA)의 내부갈등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내놨다. 보도에 따르면 연맹 내부의 오랜 부패에 반기를 든 개혁 성향의 스웨덴 출신 벨레스벤손 전 FILA 이사와 이에 맞서는 이탈리아 출신 FILA 수석부회장의 다툼 끝에 금메달의 향방이 갈렸다는 것이다.


중국 선수도 질린 ‘저질 응원’

심판의 자의적 판단이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도, 레슬링, 체조 등의 종목 뿐 아니라 양궁, 탁구, 배드민턴 등의 종목에서까지 벌어진 극심한 홈 텃세에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들의 몫이 됐다. 특히 일부 중국 관중들의 ‘악질적인’ 응원은 자국 선수들 사이에서도 기피대상이 돼버렸다.

지난 16일 오후 테니스 여자 단식 준결승이 벌어진 베이징 그린테니스 센터에서 세계랭킹 6위인 디나라 사피나(러시아)와 맞붙은 랭킹 42위 리나(중국)는 2세트 결정적인 순간 어이없는 실수를 범한 뒤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던 관중석을 상대로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렸다.

방송 화면에 잡힌 그의 입 모양으로 볼 때 ‘셧업(shut up)’이라고 외치는 듯 했다. 경기에 지장을 줄 만큼 시끄러운 응원에 대한 짜증 섞인 고함인 셈이었다. 이후 리나는 5:7로 패배, 세트스코어 0:2로 무너져 결승진출의 꿈을 접어야했다.

중국 관영방송 CCTV는 이날 보도를 통해 리나의 패인엔 관중의 시끄러운 응원이 한몫했음을 분명히 했다. CCTV는 소속 올림픽 해설위원의 말을 인용해 “리나가 정상적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요인 때문이다”고 아쉬워했다.

중국 유력 언론인 신화통신 역시 “올림픽 응원, 열정도 좋지만 이성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테니스나 체조 같은 경기는 경기장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 만약 관중의 지나친 응원에 영향을 받아 선수들이 실수를 한다면 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도 했다.

한국은 중국 관중의 ‘응원테러’에 가장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였다. 지난 14일 여자양궁 개인전에 나선 박성현(25)과 중국의 장쥐안쥐안(27)의 결승전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울분을 참지 못했다. 1점 차로 분패한 것이 아쉬워서가 아니었다. 박 선수가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날카롭게 귀청을 찢는 호루라기 소리와 관중들의 야유는 한국인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지난 16일 한국과 중국이 맞붙은 남자탁구 단체전에서 분패한 유승민은 “경기 중 선수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건 예의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하루 전 배드민턴 여자복식 결승전에서 아쉽게 져 은메달을 목에 건 이경원-이효정 조는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를 떨어트리려 중국 특공대가 온 것 같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Made In China, 개막식부터 짝퉁”

베이징 올림픽을 둘러싼 갖가지 파문은 대회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에서부터 불거져 나왔다. ‘사상최대·최고의 공연을 펼쳐 보이겠다’며 자신만만했던 중국은 잇따른 개막식 관련 스캔들에 곤욕을 치렀다.

먼저 개막식에서 화려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불꽃놀이가 실제 화약이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조작’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천사의 목소리’로 추앙받으며 개막식 축하곡을 독창한 9살 어린이의 목소리는 립싱크에 가짜였다.

인형처럼 예쁜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뒤 무대 뒤의 다른 소녀에게 대신 노래를 부르게 한 주최 측의 얄팍한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 수년 전 흥행을 기록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빼다 박은 상황은 황당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의 전통의상을 입고 등장한 56명 어린이들은 모조리 한족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정적으로 개막식 당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과 5세 소녀 리무쯔의 피아노 합주도 실제로 연주한 것이 아니라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개막식 연주 당시 등장한 그랜드 피아노 덮개가 닫혀있다. 그랜드 피아노는 덮개가 덮이면 소리가 밖으로 확산되지 못한다. 개막식 축하곡이 립싱크였던 것처럼 이들의 연주도 가짜가 아니겠는가’란 주장이 퍼지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사는 백모(24)씨는 “역대 올림픽마다 개최국 텃세는 있었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언제보다 심한 것 같다”면서 “중국이 축제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너무 무례한 게 아니냐”며 중국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올림픽 개최국인 중국이 과시용으로 짜여진 가짜 공연으로 개막식을 연출하고 편파판정과 저질응원에 연연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반중감정’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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