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 이적, 에이전트가 먼저 제의했다”

발목 부상과 팀 방출설로 시련을 맞은 이천수(26·네덜란드 페예노르트)가 소속 에이전트로부터 무참하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이천수의 네덜란드 방출이 소속팀 페예노르트의 의지가 아닌 소속 에이전트인 IFA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IFA는 이천수에게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는 말도 나와 적잖은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IFA는 이미 지난해 말 조재진의 잉글랜드 리그 진출 시도 때 거듭된 실책으로 악명을 높인바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멤버로 승승장구하던 이천수의 몰락이 선수 개인이 아닌 그의 계약과 관리를 책임진 에이전트의 실책으로 빚어졌다는 주장에 축구계가 들끓고 있다.
이천수를 둘러싼 문제의 소식은 축구 전문 매체 <골닷컴 아시아>의 에디터이자 유명 칼럼니스트인 존 듀어든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듀어든은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등 전 국가대표 감독들과도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전문가다. 네덜란드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도 마당발로 통할 만큼 광범위한 인맥을 자랑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이라고 칭한 이의 말을 빌려 전한 소식은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소속팀 일방적 방출’은 오보?
듀어든에 따르면 IFA는 지난 5월 페예노르트에게 ‘이천수가 뛸 만한 다른 팀을 알아봐 달라’고 제의했다. 이에 수긍한 페예노르트는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그의 이적을 진행했다. IFA가 이런 제안을 한 데는 허트얀 베어벡 감독이 새로 부임하게 되면서 이천수가 팀 내 입지가 좁아진 까닭이 컸다.
그러나 이는 “국내 모 구단으로부터 그런 제의를 받았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페예노르트로부터 이적에 대한 어떤 정식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밝힌 IFA의 입장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듀어든은 칼럼을 통해 “(이천수 이적에 대한)모든 것은 IFA에서 시작한 일이라는데 이제 와 깜짝 놀란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IFA가 이천수에게 상황에 대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라는 소식통의 말도 함께 전했다.
선수의 계약과 관리를 책임지는 에이전트가 정작 당사자인 본인에게 팀 이적과 관계된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듀어든과 소식통에 따르면 페예노르트는 IFA와 이천수가 의견 조율이 끝났다는 가정 아래 네덜란드 에이전트를 통해 이적 절차를 진행했다. 당초 이천수가 페예노르트로부터 일방적인 방출을 통보 받은 것으로 보도한 일부 국내 언론이 ‘오보’를 했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기자들 사이에선 에이전트의 말을 받아 보도한 기사는 오보가 아니라는 의견이 파다하다. 한 기자는 “프로선수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에이전트다”며 “그들이 하는 말은 선수의 입장과 마찬가지라 대부분 언론에 그대로 보도된다”고 말했다.
듀어든에게 소식을 전한 정보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IFA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또 다른 문제의 핵심은 자신의 이적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이천수 본인이 알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지난달 발목 수술을 받은 뒤 재활에 전념하고 있는
이천수는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삼간 채 칩거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천수는 알고 있었나
이천수와 가까운 모 선수는 “가끔 안부연락만 할뿐 실제 얼굴을 본지 꽤 오래됐다”며 “평소 지인들과의 만남을 즐겼던 이천수가 이렇게까지 할 정도면 속이 많이 상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IFA도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IFA 관계자는 관련된 질문에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이적과 관계된 사항은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언론 인터뷰에 나온 것이 전부다”고 말했다.
앞서 듀어든과 소식통에 따르면 페예노르트는 이천수만 원한다면 팀 복귀 일자인 7월 4일에 맞춰 네덜란드로 돌아올 것을 원했다. 그러나 이미 약속한 날짜는 지나버렸다. 게다가 이천수 측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 그의 페예노르트 복귀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재진도 당했다?
이천수가 소속 에이전트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천수가 문제 삼은 부분 역시 에이전트와 선수의 ‘소통 부족’이었다.
그는 지난달 발목 수술을 앞두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에이전트가 자신도 모르는 조건을 계약서에 몰래 넣은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고 밝혔다. 문제의 항목은 한 시즌에 20경기 이상 출장하면 연봉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구단이 에이전트에게 지불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이천수의 경기 출전 여부가 실력이 아닌 돈 문제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폐예노르트가 이천수의 몸값에 에이전트 수당까지 챙겨줄 만큼 여유 있는 팀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천수의 팀 내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IFA의 실책은 이천수 뿐만이 아니다. 지난겨울 뉴캐슬을 시작으로 포츠머스, 플럼 등 내리 3개 팀의 입단 테스트를 겪은 끝에 K리그로 유턴한 조재진(26·전북)은 유럽 무대 진출을 노린 코리안리거를 통틀어 ‘최악의 실패작’으로 기록됐다.
조재진은 일본 J리그 시미즈S펄스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무기로 겨울 내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입단테스트를 받았다. 그러나 조재진은 세 팀 중 어떤 팀의 유니폼도 입지 못했다.
당시 국내 언론엔 연일 조재진의 유럽 진출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이들은 하나 같이 소속 에이전트사인 IFA의 말을 인용했다. IFA가 팀의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언론에 관련 내용을 흘렸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이 같은 과거 전적과 더불어 ‘이천수 이적 파동’에 대한 IFA의 해명이 어떤 식으로든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내가 이천수의 대리인으로 나서도 지금 에이전트보다 훨씬 더 잘할 것 같다”는 듀어든의 일침은 비단 그만의 의견이 아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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