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그라운드 퇴출 1년’ 방승환
직격인터뷰‘그라운드 퇴출 1년’ 방승환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6-19 18:30
  • 승인 2008.06.19 18:30
  • 호수 738
  • 5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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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스트라이커’ 굴레 벗고 다시 뛴다

최근 경기 도중 심판을 향한 거친 항의로 6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프로축구선수 조성환(26·포항스틸러스)과 ‘음주파문’으로 대표팀 자격 1년 정지 중징계를 받은 이운재(35·수원삼성)의 조기 사면 논란이 뉴스를 달궜을 때 늘 함께 등장하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지난해 10월 3일 FA컵 준결승에서 심판 판정에 격렬히 항의하다 1년간 그라운드 퇴출이라는 ‘극형’에 처해진 방승환(25·인천유나이티드)이다. 그를 언급한 기자들 속내는 이렇다. 프로선수에게 있어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징계를 당한 방승환에 비해 조성환은 지나치게 처벌 수위가 가볍고, 대표팀에서 필요하다는 이유로 허정무 감독에 의해 조기 사면 가능성이 터져 나온 이운재는 원칙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다는 것. ‘비신사적 행동을 일삼는 선수에 대해 무거운 처벌을 내리겠다’며 뒷북 처방에 나선 프로연맹에 상대적으로 무명인 방승환이 시범타로 찍혔다는 안타까움이 불거진 이유다.

대한축구협회 상벌위원회의 징계 처분이 내려진 지 8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유난히 무더웠던 6월 중순, 인천 구단이 마련해 준 인터뷰실로 들어선 그는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막 운동을 마친 듯 땀기 젖은 모습이다. 1년 간 그라운드를 밟을 수는 없지만 단 하루도 팀훈련과 체력단련을 쉬지 않은 까닭이다.


후배들 다잡는 악역도 자처

“언제라도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몸 상태는 이미 완벽하게 만들었습니다. 적어도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전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는 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까요.”

경기장에서 방승환은 유난히 투지가 강한 선수였다.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탓에 상대 수비수에게 공을 뺏기면 그대로 전력 질주해 다시 빼앗아오기 일쑤다. 그런 방승환에게 1년의 공백은 너무도 가혹했다. 팀에게도 간판 공격수인 그의 부재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지난 5월 한 달 동안 인천팀이 받아든 성적표는 3무 3패. “대통령도 바뀌었는데 방승환에 대한 특별 사면이라도 요청하고 싶다”는 장외룡 감독의 말이 단순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방승환을 힘들게 한 것은 팀 후배들의 흐트러진 마음가짐이었다.

“얼마 전 전기리그를 마무리할 때쯤이었어요. 경기 마치고 선수들이 모여 있는 회복실에 들어갔는데 후배 몇몇이 웃고 있더라고요. 경기에서 졌는데도 말이죠. 그 자리에서 후배들을 모아놓고 혼을 냈죠. 프로선수씩이나 되서 이 상황에 웃고 떠드는 게 말이 되냐고. 난 경기에 죽도록 나가고 싶어도 못 뛰
는데 후배들 타이르는 악역이라도 맡아야할 것 같았어요.”

특히 동국대 직속 후배인 공격수 김선우(25)에게는 대놓고 쓴 소리를 퍼부은 적도 있다. 196cm에 달하는 큰 키에 좋은 신체 조건을 가진 후배가 유난히 몸싸움에서 밀리는 치명적 약점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김)선우는 학교 동문이기기도 하고 오랫동안 지켜본 선배로서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주고 싶어요. 단점을 잘 고쳐 당장 팀에 보탬이 돼 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요.”


이운재 조기사면 논란에 상처받아

축구를 업으로 하는 선수에게 ‘얼마나 경기에 나가고 싶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다만 8개월 전 사건은 방승환에게 많은 것을 빼앗고 또 남겼다. 그는 먼저 전남과의 FA컵 4강전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경기를 뛰다보면 감이 와요. 이길 수 있는 경기와 만만치 않은 경기. 하지만 그날은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어요.”

FA컵 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맞붙은 전남과 인천. 전남 홈에서 펼쳐진 경기는 혈투에 가까웠다. 그중에서도 언론에 의해 ‘그라운드 추태’로 낙인찍힌 방승환의 퇴장 사건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적잖은 논란거리가 됐다. 편파 시비에 휩싸인 심판 판정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다 잊었다’며 너털웃음을 지
었다.

“그때 제가 잘못했다는 건 백번 인정합니다. 지금은 그 심판이나 또 다른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아요. 반성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가슴 속 악감정은 모두 털어내기로 했으니까요.”

출전 수당과 승리 수당을 포함해 1억대에 달하는 수입을 날려버린 만큼 속이 쓰릴 만도 한데, 그는 돈보다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는 일이 좀 더 컸던 모양이다.

“이번 징계로 제가 잃은 건 축구선수로서의 모범적인 이미지 정도겠죠. 절 보는 축구팬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던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습니다. 불같은 성질을 참아내는 자제력과 의지는 확실히 강해졌어요.”

그는 최근 불거진 조성환과 이운재를 둘러싼 징계·복귀 논란에 대해서도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주위 친구들도 많이 물어봐요.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조)성환이는 어려서부터 함께 운동한 동료에요. 그 친구 결혼식도 참석했고 안부 전화도 자주하는 친한 사이죠. 그래서였을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많이 힘들었으니까 친구는 덜 다쳤으면 하는 바람이
요.”

그러나 방승환은 허정무 감독에 의해 제기된 골키퍼 이운재의 조기사면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비록 한바탕 소동으로 없던 일이 됐지만 ‘실력 있고 유명한 선수는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 식의 대표팀 운영 논리에 적잖이 실망했다는 것.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만약 정말 이운재 선배가 조기 사면 됐다면 다른 선수들은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을 겁니다. 저 역시 그 뉴스를 보고 상처를 받았죠. 실력 있는 선수를 데려다 쓰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대표팀에서 먼저 나서 조기사면 운운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봐요.”


“축구가 너무 하고 싶어요”

그라운드를 떠난 8개월 동안 방승환은 혼자 체력 단련을 하고 동료들의 훈련 파트너를 자청했다. 경기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의 고민을 안 팀은 올 초 방승환에게 ‘해외리그로 나가 경기를 뛰라’고 권했지만 거절했다. 동료들에 대한 미련과 외로움 때문이었다.

“한국에, 인천에 꼭 있어야할 것 같았어요. 너무 속상해 방황할 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 팀원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평소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혼자 있는 건 못 참는 성미에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울증까지 앓을 정도여서 만약 외국으로 나갔다면 완전히 망가졌을지 몰라요.”

힘든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방승환은 봉사활동에도 나섰다. 다름 아닌 유치원 어린이와 어린 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것. 지난 4월 인천 계양구에 있는 ‘노틀담 유치원’을 시작으로 7~8곳의 축구교실을 찾았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몸 풀기 체조와 슈팅을 가르친 방승환은 학생들 사이에서 ‘친구 같은 선생님’으로 인기를 끌었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해요. 축구교실이 열리면 아이들과 거의 놀아주는 수준이죠. 다른 사람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한번 다녀오면 굉장히 즐거워요. 시간 나는 대로 자주 찾아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방승환의 마음 속 상처는 거의 아물었다. 이제 명예회복을 위한 최종점검만이 남았을 뿐이다. 팀도 방승환의 복귀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징계 기간의 절반을 넘기면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는 축구협회 규정에 따라 팀이 직접 나선 것. 곧 경기장에 설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축구를 향한 그의 욕심은 좀 더 커졌다.

“그 언제보다도 축구가 하고 싶어요. 경기장에서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올인’해 보는 게 지금의 제 소원입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실력으로 인정받을 자신도 있고요.”

‘축구가 정말 하고 싶다’는 한마디로 인터뷰를 마무리 지은 방승환은 곧 열릴 징계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25살 골잡이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지 자못 궁굼하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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