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택 3년 만에 컴백…“돈 버는 체육회 만들 터”

베이징 올림픽을 2개월여 앞두고 위기론에 빠진 대한체육회가 지난달 26일 이연택(72)씨를 제36대 체육회장으로 맞았다. 이 회장은 2005년에 이어 3년 만에 체육계 수장직을 재탈환 했다. 올림픽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던 김정길 전 회장이 중도하차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체육계는 풍부한 경험을 갖춘 이 회장을 위기탈출의 선봉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진통 끝에 이연택호가 떴지만 출렁이는 물결이 만만치 않다. 이 회장이 당선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을 대한체육회와 통합하겠다는 소신을 밝힌 탓이다. 정부의 노른자위 공기업인 진흥공단의 체육회 환수를 주장하는 그의 일갈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당초 이 회장의 당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체육회는 95%에 달하는 재정을 국고에서 지원받는다. 때문에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수장으로 선출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승국 한국체육대학 총장과 김정행 대한유도회장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이 회장의 당선이 확정되자 올림픽을 불과 70여일 앞에 둔 비상시국을 감안해 ‘코드’보다 ‘경험’을 중시한 결과라는 분석이 체육계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 회장과 새정부와의 갈등기류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26일 제36대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된 이 회장의 당선 소감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발끈하고 나섰다. 문체부 산하의 국민체육진흥공단을 체육회의 재정 기반으로 되찾아오겠다 공언한 까닭이다.
이 신임 회장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을 체육회의 재정 젖줄로 되찾아 오겠다. 체육회의 재정 자립은 스포츠 선진화의 밑바탕이다”고 밝혔다.
“체육공단 환수는 정치적 협상카드”
공기업 중에서도 ‘노른자위’로 구분되는 공단을 체육회가 접수하겠다는 민감한 주장에 주무부처인 문체부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국무총리 비서실과 청와대 행정수석을 거쳐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과 2002 월드컵 조직위 공동위원장 등을 지낸,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 정부와 정면대결을 선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당선 배경에는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를 경륜과 체육회 재정 독립에 대한 굳은 소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체육 행정의 달인’ 이 회장이 올림픽을 치른 뒤 남은 임기동안 정부와 한바탕 격전을 치를 것이란 추측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1988 서울올림픽 잉여금 3100억원과 체육회 기금 411억원을 바탕으로 89년 출범했다. 현재 경륜과 경정, 스포츠토토 등 알짜배기 수익사업을 운영해 지난해 말 기금이 7500억원에 이를 정도로 탄탄한 재정을 자랑한다.
이 회장은 “공단은 체육계가 땀 흘려 모아 만든 공기업”이라 규정, 공단을 체육회 산하에 둬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회장은 98년부터 2000년까지 제5대 공단 이사장을 지내 공단 설립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과거에는 원래주인(체육회)이 미덥지 못해 정부가 관리했지만 이제 시대와 상황이 달라진 만큼 원래 주인에게 돌려 줘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면 체육회는 예산 중 95%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조직이다. 때문에 독립성이 약하고 산하 경기단체들은 매년 예산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체육회가 보조금에 목매여 정부에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든든한 재정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체육인들의 해묵은 외침이다.
체육계가 이 회장의 손을 들어준 이유도 그가 정부와 적절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기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단을 관리하고 있는 문체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이 회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문체부 측은 이 회장이 체육회의 공단 환수를 들고 나온 이유를 “앞으로 정부와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려는 정치적 협상카드가 아니냐”고 해석하고 있다.
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와 체육계 구조 조정 등 굵직한 현안을 앞두고 이 회장이 민감한 이슈를 건드려 앞으로의 정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한다는 것이 문체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방적 통합 논의 부적절”
환수 대상으로 꼽힌 공단 측 역시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통합될 경우 공단의 기구축소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공단 내부 통신망에는 이 회장 취임과 출근 저지 투쟁까지 거론돼 긴장감이 들끓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각 기관마다 나름의 설립 목적이 있는데 이를 통폐합하는 것은 누구 한사람의 주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다. 체육회가 일방적으로 통합을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차기 회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이 회장의 임기는 겨우 9개월뿐이다. 때문에 체육계에선 이 회장이 문체부와 공단에 맞서 소신 있는 승부수를 던졌다는 응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